http://gall.dcinside.com/war/161712
어제 이 글을 올렸는데 써보고 나니까 그냥 저것만 올릴 게 아니라 좀 더 큰 맥락을 잡고 써 보고 싶어서 글 올림. 각설하고 일본군 하면 아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가 칼일 텐데
한 번 그 주제에 대해서 써 보려고 함.
일단 군도는 주로 조장(상사에 대응)이상의 부사관이나 사관이
소지했는데 휴대가 가능한 병사들도 있었고, 이들을
대도본분병(帯刀本分兵)이라고 함.
어제 이 글을 올렸는데 써보고 나니까 그냥 저것만 올릴 게 아니라 좀 더 큰 맥락을 잡고 써 보고 싶어서 글 올림. 각설하고 일본군 하면 아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가 칼일 텐데
한 번 그 주제에 대해서 써 보려고 함.
일단 군도는 주로 조장(상사에 대응)이상의 부사관이나 사관이
소지했는데 휴대가 가능한 병사들도 있었고, 이들을
대도본분병(帯刀本分兵)이라고 함.
아마 군갤러들이라면 1853년의 흑선내항으로 인한 일본의 개항에 대해서 기본적인 개념과 내용 정도는 알고 있을 거임.
미국과의 조우로 시작한 서구 문물의 본격적인 수용과 정착이 진행되면서 탈아입구의 분위기가 짙은 아래 유신 후의 육해군은 각각 프랑스와 영국으로의 유학을 통해서 유럽 군머를 충실하게 배낌.
미국과의 조우로 시작한 서구 문물의 본격적인 수용과 정착이 진행되면서 탈아입구의 분위기가 짙은 아래 유신 후의 육해군은 각각 프랑스와 영국으로의 유학을 통해서 유럽 군머를 충실하게 배낌.
이 과정에서 일본도를 구시대의 유물로 간주해서 배격하고
군도라는 무기 체계를 유럽의 것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세이버(사브르) 외장을 한 군도를 제식으로 채용.
1875년 8식 군도의 생산과 제정으로 시작되어서 1934년까지
제식으로 쓰인 이런 부류의 군도를 구군도(旧軍刀)라고 통칭함.
(참고로 구군도의 시초 모델인 8식 군도는 미군 m1850 야전참모도를 매우 흡사하게 모방한 외장.)
군도라는 무기 체계를 유럽의 것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세이버(사브르) 외장을 한 군도를 제식으로 채용.
1875년 8식 군도의 생산과 제정으로 시작되어서 1934년까지
제식으로 쓰인 이런 부류의 군도를 구군도(旧軍刀)라고 통칭함.
(참고로 구군도의 시초 모델인 8식 군도는 미군 m1850 야전참모도를 매우 흡사하게 모방한 외장.)
8식 군도에 이어 명치 19년인 1880년 채용된 19식 세이버.
8식과의 차이점이라고는 손잡이 뒷면에 덧대는 금속 보강물인
백플레이트(backplate, 혹은 배금背金)의 유무 뿐으로서
구조상 거의 같은 군도로, 기병.보병.포병의 장교용 군도였음.
이후로도 여러 모델들이 생산이 되고 제식 모델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물건이 나왔는데
8식과의 차이점이라고는 손잡이 뒷면에 덧대는 금속 보강물인
백플레이트(backplate, 혹은 배금背金)의 유무 뿐으로서
구조상 거의 같은 군도로, 기병.보병.포병의 장교용 군도였음.
이후로도 여러 모델들이 생산이 되고 제식 모델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물건이 나왔는데
(육군 기병용)
(육군 보병용)
(해군용)
군도의 손잡이를 길게 늘린 일명 양손세이버라는 물건으로,
위에서 말했듯 제식은 아니었음. 이게 왜 생기게 됬느냐에 대한
이유는 간단한데 당시 장교들이 무사 출신이 수두룩이었는데
양손으로 휘두르는 일본도를 밥 먹듯 휘둘러 온 양반들한테
니들 이제 이거 써라 하고 주니까 당연히 적응을 못하지.
군도의 손잡이를 길게 늘린 일명 양손세이버라는 물건으로,
위에서 말했듯 제식은 아니었음. 이게 왜 생기게 됬느냐에 대한
이유는 간단한데 당시 장교들이 무사 출신이 수두룩이었는데
양손으로 휘두르는 일본도를 밥 먹듯 휘둘러 온 양반들한테
니들 이제 이거 써라 하고 주니까 당연히 적응을 못하지.
그래서 본인들 임의대로 편하게 개조해서 일본도처럼 양손용으로 개조한 물건. 이게 요게 제식이 아니다 보니까 같은 모델의 양손세이버 개조품이더라도 서로 다른 모양인 게 있고 그랬음.
또 특이한 점은 일본도 칼날을 쓰는 경우가 많아서 손잡이도
일본도의 방식대로 어피로 감는다던지, 일본도 부품을 썼다던지
했다는 것. 개중에는 칼집을 가오리나 상어 가죽으로 코팅한 물건도 있다고 함.
육군용은 꽤나 유용하게 쓰였는데 해군용은 해군육전대 빼고는 대부분 예장용이었고, 해군육전대에서마저도 자루 끝에서 물이 새어들어와 도신이 녹슬거나 손잡이를 감은 어피가 바닷물 때문에 느슨해진다는 등 여러 문제가 있었고 그래서 육군의 철제 칼집을 쓰기도 했음.
또 특이한 점은 일본도 칼날을 쓰는 경우가 많아서 손잡이도
일본도의 방식대로 어피로 감는다던지, 일본도 부품을 썼다던지
했다는 것. 개중에는 칼집을 가오리나 상어 가죽으로 코팅한 물건도 있다고 함.
육군용은 꽤나 유용하게 쓰였는데 해군용은 해군육전대 빼고는 대부분 예장용이었고, 해군육전대에서마저도 자루 끝에서 물이 새어들어와 도신이 녹슬거나 손잡이를 감은 어피가 바닷물 때문에 느슨해진다는 등 여러 문제가 있었고 그래서 육군의 철제 칼집을 쓰기도 했음.
(만주사변 때 출동한 해군육전대원들. 좌측 두 명의 군도에는
칼집의 패용 고리가 두 개인데, 육군용임.)
또 장교용으로 19식과 완전히 똑같으나 날을 세우지 않은 지휘용의 지휘도가 있었고, 전투에 임할 때는 실전용 군도를
가지고 가야 하는데 이 두 개를 합친 겸용도라는 것도 있었음.
육군용의 경우 계급에 따라 부품의 외형이 달랐었는데
이 부분은 넘어가기로 하고.
칼집의 패용 고리가 두 개인데, 육군용임.)
또 장교용으로 19식과 완전히 똑같으나 날을 세우지 않은 지휘용의 지휘도가 있었고, 전투에 임할 때는 실전용 군도를
가지고 가야 하는데 이 두 개를 합친 겸용도라는 것도 있었음.
육군용의 경우 계급에 따라 부품의 외형이 달랐었는데
이 부분은 넘어가기로 하고.
32식 군도.
을은 헌병.치중병용이고 갑은 기병용임.
을은 헌병.치중병용이고 갑은 기병용임.
이전의 구군도들과는 굉장히 차별되는 물건이었는데
목제 손잡이를 철제 백플레이트로 보강하는 구조였고,
장교용과 달리 옆에 핀을 박고 후방에서는 전용 너트로 조이는 2중 고정을 해서 내구성이 꽤 좋았음. 그 외에도 기병용의 갑에는
미끄럼 방지용으로 검지를 거는 가죽 고리가 핸드가드의 뒤에 붙어 있는 등 구조적인 면에서 괜찮은 물건으로 평가받는 군도임.
32식 군도는 소화 7년인 1932년에 을형의 손잡이와 칼등 등이 일본도 형식으로 개조되고 마침내 1934년 일본도 외장으로 회귀한 신군도로 교체됨.
목제 손잡이를 철제 백플레이트로 보강하는 구조였고,
장교용과 달리 옆에 핀을 박고 후방에서는 전용 너트로 조이는 2중 고정을 해서 내구성이 꽤 좋았음. 그 외에도 기병용의 갑에는
미끄럼 방지용으로 검지를 거는 가죽 고리가 핸드가드의 뒤에 붙어 있는 등 구조적인 면에서 괜찮은 물건으로 평가받는 군도임.
32식 군도는 소화 7년인 1932년에 을형의 손잡이와 칼등 등이 일본도 형식으로 개조되고 마침내 1934년 일본도 외장으로 회귀한 신군도로 교체됨.
당시에는 어느정도 열강 반열에 올라서다 보니까 이전만큼
서구화에 목맬 필요가 없어졌고, 서방 열강들의 일본의 확장정책에 대한 간섭 뭐 이런 것들로 해서 민족주의 열풍이 강하게 불었음.
그런 이유로 을형 32식 군도의 손잡이가 일본도 걸로 바뀌고
34년도 2월 14일에 육군복제중개정령이 효력을 발하면서
일본도 형식의 신군도(新軍刀)로 교체됨.
근데 이게 사실 모양만 바뀐 거지 그 외의 차이는 없었음.
순전히 상징적인 의미 때문에 실행된 교체라는 것.
순전히 상징적인 의미 때문에 실행된 교체라는 것.
전통 방식 일본도가 지적받는 문제라고 하면 도신을 이루는
강재에 대한 문제점이 대표적인데, 근대에 들어서 군도를
생산하면서부터는 이런 도강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음. 일본도 날을 그냥 빼다박은 경우도 심심찮았지만.
강재에 대한 문제점이 대표적인데, 근대에 들어서 군도를
생산하면서부터는 이런 도강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음. 일본도 날을 그냥 빼다박은 경우도 심심찮았지만.
(상:시작형, 하:양산형)
(시작형의 경우 날끝이 양날인데 이를 킷사키모로하즈쿠리,
영어로는 펄스 엣지라고 함.)
무라타 소총을 개발한 육군 소장 무라타 츠네요시 남작은
동경포병공창재창(東京砲兵工廠在庫)에 있던 독일산의 강괴들로
프로토타입 도신을 만들어냈는데 이게 성능이 까리했음.
이거 되겠다 싶어서 미야모토 카네노리 등 당대 도검 장인들과의
협업으로 스웨덴강과 일본강의 비율을 6:4로 1500도에서 녹여 합친 후 기름 열처리를 한 도신을 만들어냈는데, 성능을 시험해 보니 돼지 머리뼈를 가볍게 자르면서도 날에는 손상이 없었기에
그 해인 1891년 군용으로 지정.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이라 그닥 비싸지도 않아서 많이 사용됬다고 함.
이것 말고도 전함 미카사의 파손된 포신을 녹여서 주조한
미카사도, 남만주철도공사에서 생산한 만철도, 스테인리스로 주조한 스테인리스도 등 여러 도신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공업도 또는 실용군도라고 함. 스테인리스도의 경우 바닷물이나 해풍에 의한 도신의 손상을 막기 위해 해군용 군도에 주로 사용.
(시작형의 경우 날끝이 양날인데 이를 킷사키모로하즈쿠리,
영어로는 펄스 엣지라고 함.)
무라타 소총을 개발한 육군 소장 무라타 츠네요시 남작은
동경포병공창재창(東京砲兵工廠在庫)에 있던 독일산의 강괴들로
프로토타입 도신을 만들어냈는데 이게 성능이 까리했음.
이거 되겠다 싶어서 미야모토 카네노리 등 당대 도검 장인들과의
협업으로 스웨덴강과 일본강의 비율을 6:4로 1500도에서 녹여 합친 후 기름 열처리를 한 도신을 만들어냈는데, 성능을 시험해 보니 돼지 머리뼈를 가볍게 자르면서도 날에는 손상이 없었기에
그 해인 1891년 군용으로 지정.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이라 그닥 비싸지도 않아서 많이 사용됬다고 함.
이것 말고도 전함 미카사의 파손된 포신을 녹여서 주조한
미카사도, 남만주철도공사에서 생산한 만철도, 스테인리스로 주조한 스테인리스도 등 여러 도신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공업도 또는 실용군도라고 함. 스테인리스도의 경우 바닷물이나 해풍에 의한 도신의 손상을 막기 위해 해군용 군도에 주로 사용.
그러니까 양손세이버는 독립적인 도검 종류가 아니라 그냥 니뽕도에 서양식 핸드가드만 달은거구만.. 신기하네..
혹시 양손세이버의 형태가 니뽄도와 비교해서 가지는 장점이 있나요?
ㄴ군도수리반의 군무원인 나루세 칸지의 말로는 일본도 형식의 신군도와 비교했을 때 황동제 보강판이 많이 붙은 구군도의 손잡이가 내구성이 비교적 좋았다고 함.
아하
중일전쟁이 격화되면서 군도 사용비율이 높아진거 아님?? 오장이하 일반병들도 들고다녔다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