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철도의 제작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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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탄소함유량 0.5%의 강철괴 내부에 공간을 파서 탄소함유량 0.06% 연강을 삽입.

2.가열해서 철봉 모양으로 쭉 늘림.

3.그라인더로 모양을 대강 잡아줌.

4.줄로 갈아서 보충.

5.전기로를 활용해서 열처리.

6.하바키라는 부품을 만듦. 하바키는 도신의 시작 부분에 달린 부품인데, 칼집이랑 맞물려서 칼이 칼집에서 안 빠지게 함.

7.연마하면서 날을 세움. 사진의 사람들은 다 장인들.

8.츠바(코등이)와 손잡이 만들기

9.최종 검사, 출고



각 공업도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아무튼 군도의 도신들은 이런
철저한 과정을 거쳐서 양산됨. 근데 전쟁 말기로 가면 점점 도강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했음. 당연히 자원 수급 문제.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기가 차츰 버거워지니까 제식에서 물러난 구군도나 아니면 집안에 가보로 내려오는 검 같은 것도 사용할 수 있게 암묵적으로 허락함. 이걸 이종군도라고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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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로 95식 부사관도라는 모델의 시기에 따른 변화.
비단 도강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점점 품질이 낮아져 가는 걸 볼 수 있음. 그런데도 이렇게 하향을 거듭하면서도 끝까지 군도를 생산한 걸 보면 일본군이 얼마나 백병전에 집착하다시피 했는지 알 수 있음.

그러면 왜 이렇게 일본군은 백병전을 좋아했을까?

사실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고 첫번째 글에서 말했듯 유럽식 군제의 영향을 받았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백병전이 크고 비중 있게 중시하지는 않았고 화력 강화에 더 관심이 있었음. 물론 백병전을 아예 버린 건 아니라서 유럽 교관을 초청해서 계속 군용검술을 정비하고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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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의 서남전쟁에서 관군과 맞섰던 사쓰마군은
발도 돌격으로 자주 관군 병사들의 기세를 꺾어 밀어붙였었음.

사쓰마 번의 시현류(示現流) 검술에 대해 잠시 설명하자면
첫번째의 참격을 중요시 하는 검술로, 이게 워낙 강력해서
신선조의 2대 국장인 콘도 이사미는 사쓰마의 첫 칼은 막지 말고 피할 것을 말했는데, 사쓰마군의 칼을 막은 자신의 칼이 그대로 밀려나면서 이마에 찍혀버리기 때문이라고...

아무튼 밥만 먹고 저것만 연습한 놈들이 총격이 좀 멎었다 싶으면
괴상한 고함 지르면서 검 들고 우르르 달려오니까 숙련도가 떨어지는 관군 병사들의 대오는 흐트러지고 추풍낙엽처럼 당하기 일쑤였음.

관군은 경시청 휘하로 발도대(拔刀隊)를 편성해서 대응함. 발도대 대원들은 무진전쟁 참전 경력이 있거나 하는 등 검술에 일가견이 있었기 때문에 사쓰마군의 발도 돌격을 막아낼 수 있었음.

이후 같은 해에 경찰에서는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경찰 검술인
경시류(警視流)를 만들었고 무사 출신자들은 군보다 경찰에 많이 모여듦.

정부군에게 있어서는 이게 정부군에게 패닉을 줘서 우리도 검술을 지금보다 더 비중 있게 교육하고 훈련해야 하지 않냐? 라는 논란을 일으키긴 했지만 결국은 일시적인 영향에 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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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병전의 비중이 커지게 된 것은 러일전쟁이 계기였음.
당시 일본이 성공적으로 근대화를 이룩했다고는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 강국에 비해서는 아직 여러모로 후달리던 시기.
포탄이나 탄환도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데 생산 능력이 따라주질 않았음. 이런 문제는 여순 공방전에서 특히 크게 대두되는데
오사카 포병공창에서는 하루에 900발을 만들었는데 이것도 부족했었음. 거기에다가 러시아군이 우라 돌격 할 적마다 피해가 컸고.

이런 요인들 때문에 군 내에서는 더 이상 화력중심의 서구식 전술로 전쟁에서 승리해내기 힘들다. 러시아군이 돌격해오던 것처럼 전쟁을 최종적으로 승리로 이끄는 것은 백병돌격이다.
이러한 주장이 힘을 얻었음.


1909년의 보병 교본인 「보병조전」에서는 이렇게 말함.


[최근의 전쟁(러일전쟁)에서 무형전력 즉 군인정신의 중요성이 입증되어 이것으로 적을 이기는 것이 증명되었다. 보병은 전투의 중심이며, 승리를 위해서는 공격정신을 고취해야 한다. 이것의 결정체가 총검돌격이다. 사격만으로 적을 격퇴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며, 최후에는 역시 백병전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사격은 백병전을 위해 적에게 접근하기 위한 수단이며, 특히 백병전은 일본 전통의 묘기(妙技)이다.]


또한 「육군각종병과 모범군인교전 전술」의 제 7편인
검술/체조교범의 제1장 「검술의 기반지식은 무엇인가」의 첫 번째 항목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음.


[1.근대전과 검술의 관계여하

근대에 있어서 과학병기의 눈부신 발달은 옛날의 일기토와 같은 개인적전술을 기계적집단전술로 일변시켜, 그에 의해 일시 검술 등은 경시되는 풍조가 있었으나, 유럽전쟁의 말기즈음에 이르러 다시 중시되기에 이르렀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공격병기의 놀라운 발달은 오히려 전선의 고착을 유발하여 주간에 양쪽이 거리를 두고 엎드려 사격하게 되었으며 쉽게 적에게 육박하는 일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야간이 되면 과연 공격병기도 위력을 줄어드는지라 적과 아군 모두 참호에서 뛰어나와 서로 적진지를 탈취하려 한다. 그리하여 야간의 백병전이 되면 대포나 소총으로는 너무 늦으므로 서로 도검으로 싸우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다시 검술의 중요성이 재확인됨에 이르른 것이다. 

그리하여 황군에서도 군의 기계화에 즈음하여 더더욱 검술의 연마에 임하며 우리나라 전통의 무덕을 함양하고 체력을 단련하여 건강한 기력과 담력을 양성하여 드디어 국군만의 독특한 위력이 된 것이다. 만주사변은 특히나 이번 사변에 있어서 수많은 혁혁한 위훈을 발휘한 것은 실로 검술연마의 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즉 옛 무사들의 무용을 잇는 적병 수십명을 베어버린 수훈담이나, 혹은 단신으로 적전차 격파등의 근대과학전에는 볼 수 없는 기적을 낳은 것이다. 이것은 바로 크게 진보한 기계화전쟁에 있어서도, 최후의 승리를 결정하는 비결은 백병전에 있으며, 따라서 백병전의 요결은 무도의 통달에 의한 강건한 기백과 담력의 양성에 의한 것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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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에서인지 육군 항공대의 파일럿조차 군도를 패용하고서 출동하기에 이르렀음. 그나마 실용성을 중시하는 해항에서는 권총
을 가지고 다녔지만.



아무튼 의외로 백병전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케이스도 있었는데
중일전쟁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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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중국도 근대화를 이루긴 했으나 공업능력의 한계로
화력이 딸리는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음. 그래서 참호전과 근접전 위주로 전쟁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과정에서
허베이 성의 29군을 시작으로 백병전을 위해 항일대도(抗日大刀)를 장비하게 됨. 원래는 그냥 대도인데 이때의 것을 특별히 이르는 명칭.

아무튼 중국전선에서 계속 백병전이 벌어지니까 태평양전쟁 개전 후에 이게 미군과의 전투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던 게 큰 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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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과의 도검전투가 아예 안 벌어진 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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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941 커틀러스라는 물건으로, 이걸로 일본군과 백병전을 벌이기도 했음. 6.25때는 해병대 공병 부사관이 이걸로 인민군을 베었다고.

근데 뭐 아무튼 백병전을 벌여도 그걸 지원할 화력이 뒷받침이 되야 하는데 일본군은....




*패도(佩刀) 문화가 자리잡았던 당시 일본은 문관들도 문관도라고 통칭되는 도검을 특별한 경우마다 예식용으로 패용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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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황실 소유 임야를 관리하는 제실임야국의 주임관 단검. 

2.훗날 농림성과 상공성으로 분할되어 농림수산성과 경제산업성
으로 발전하게 되는 농상무성의 판임관 휘하 관료용 단검.

3.조선총독부 판임관 장검

4.대만총독부 판임관 장검

5.대만총독부 판임관 단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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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제 외교관용 정검(스몰소드)인데, 정확히 어떤 급의 외교관이 사용한 건지는 모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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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것은 경찰도라는 명칭으로 또 따로 분류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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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경부용의 경찰단검

2.교통순경용의 경찰단검

3.순사용 사베루(세이버)

4.경찰소방대원용 경찰단검





*해군에는 해군단검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문관도와 마찬가지로 거의 액세서리 같은 의미였음. 도장구의 재질이 황동제인 것은
견습소위, 사관후보생, 병조장이 썼고 철제인 것은 1등~3등 병조가 착용. 소위부터는 장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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