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독일 점령하의 그리스에서는 각종 다양한 저항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이중에서 가장 잘큰 세력은 그리스 민족 해방 전선(EAM)이였음. 이들의 군대인 그리스 인민 해방군(ELAS)는 1943년 가을부터 다른 저항 단체들과 산발적으로 충돌하였고, 이는 1944년 봄까지 계속됨.
이후 1944년 4월에 연합군중에 자유 그리스군과 영국군이 주축이 되어 아테네근처에 강하, 아테네를 점령한뒤 그리스를 해방시켰는데 문제는 아테네를 제외한 그리스 북쪽지방을 이미 그리스 공산계열이 해방시킨 상태였다는거임.
이런 상황에서 12월, 그리스 공산당이 아테네를 점령하려 하면서 2머전이 끝나기도 전에 그리스에서는 자유주의vs사회주의의 무력충돌이 일어났고, 이는 어떻게든 유야무야넘어감.
하지만 아직 곳곳에서 EAM과 정부의 충돌이 계속해서 일어났고, 이는 1946년까지 계속됨.
그러다가 1946년, EAM이 경찰소를 습격하면서 내전이 시작됨. 소련을 비롯한 인근 공산계열국가인 유고와 불가리아는 공산계열인 EAM과 DSE를 지원하고, 영국군을 비롯한 자유주의 세력은 그리스 정부를 지원하면서 점점 내전은 양측의 대리전이 되어감.
뭐 이렇게 내전이 지속되다가 1949년 영국과 미국의 지원을 빵빵하게 받은 그리스 정부가 승리하면서 그리스 내전의 끝을 알렸고, 이후 1952년에 그리스가 NATO에 가입하면서 NATO는 발칸반도에서 공산권을 압박할 수 있게됨.
결과적으로 15만 8천여명이 죽고 100만여명의 민간피해자가 발생한 이 내전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으며, 냉전의 시작을 알림. 또한 최초의 미소양국간 대리전이라고도 볼 수 있음.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가는것이 그리스내전을 봤으면서 미국은 왜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는지 이해가 안감
이후 1944년 4월에 연합군중에 자유 그리스군과 영국군이 주축이 되어 아테네근처에 강하, 아테네를 점령한뒤 그리스를 해방시켰는데 문제는 아테네를 제외한 그리스 북쪽지방을 이미 그리스 공산계열이 해방시킨 상태였다는거임.
이런 상황에서 12월, 그리스 공산당이 아테네를 점령하려 하면서 2머전이 끝나기도 전에 그리스에서는 자유주의vs사회주의의 무력충돌이 일어났고, 이는 어떻게든 유야무야넘어감.
하지만 아직 곳곳에서 EAM과 정부의 충돌이 계속해서 일어났고, 이는 1946년까지 계속됨.
그러다가 1946년, EAM이 경찰소를 습격하면서 내전이 시작됨. 소련을 비롯한 인근 공산계열국가인 유고와 불가리아는 공산계열인 EAM과 DSE를 지원하고, 영국군을 비롯한 자유주의 세력은 그리스 정부를 지원하면서 점점 내전은 양측의 대리전이 되어감.
뭐 이렇게 내전이 지속되다가 1949년 영국과 미국의 지원을 빵빵하게 받은 그리스 정부가 승리하면서 그리스 내전의 끝을 알렸고, 이후 1952년에 그리스가 NATO에 가입하면서 NATO는 발칸반도에서 공산권을 압박할 수 있게됨.
결과적으로 15만 8천여명이 죽고 100만여명의 민간피해자가 발생한 이 내전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으며, 냉전의 시작을 알림. 또한 최초의 미소양국간 대리전이라고도 볼 수 있음.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가는것이 그리스내전을 봤으면서 미국은 왜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는지 이해가 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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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코쟁이들 동아시아에 별로 관심없자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