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머왕 아버지 밀덕왕 프리드리히가 관방학 만들고 전국에 경찰서 초등학교 세우고 그 바탕으로 전국민 징병하는병영국가세우고
감자머왕이 7년전쟁에서 오스트리아랑 싸우는 동안 오스트리아도 프로이센 본받아서 관방학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오히려 동양이 낫다 싶은면도 있었는데
이때부터 차이 확 벌어지기 시작함
결국 서양은 고만고만한 나라들끼리 서로 경쟁하던게 원동력이 되었고 동양은 중화질서에 순응하면서 살던게 독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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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종교가 예술에 엄청나게 좋은 영향을 준 케이스라고 생각함 특히 건축보면 기술에도 꽤 좋은 영향을 줬고
유럽은 다방면으로 발전을 꾀할 요인이 있었는데 중화권은 체제가 너무 안정적이었지
그렇게 치면 인도도 발전했지 - dc App
동아시아의 체제 안정만 따지면 쪽본이 왜 기회 잡고 떡상했는지 분석을 못해요 결국 외부의 충격을 지도층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했느냐의 문제지
이미 조쪽짱 셋 다 서양 문명과의 교류를 직간접적으로 해왔고, 정세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만큼 단순히 현재에만 안주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매우 큽니다
나는 행정 측면에서만 이야기 한거임 님 이야기는 기술 측면에 가까운거고 교류가 있다고 행정체계까지 바꾸는거는 쉽지 않은거지
일본은 봉건제가 남아있어서 서양과 교류하던 번에서 엎어버리고 근대화 성공했고. 조선은 중앙집권이라 집권층이 손 놓으니까 병신된거고. 중국도 뭐
단순히 번들 혼자서 쇼한 것도 아니고 에도 일본은 이미 중앙집권제로 전환한 상황이라 차라리 세조나 인조가 일으킨 쿠데타에 더 가깝습니다
일본 중앙집권을 조선이랑 비교하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막부가 참 요상한 모델이라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서양의 그것과는 일치하지 않고, 오히려 율령제(평안시대)의 군사독재 버전이라 조선에 유사하게 보는게 더 맞아 떨어지지요
조선만큼 강한 중앙집권은 아닌거 같아요. 결국 막부 엎은 번들은 구석에서 중앙세력 감시 덜 당하고 서양이랑 교류한 곳들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서양과의 교류는 막부가 독점하던 상황, 이에 시대변화를 인지하고 공무합체파를 밀다가 장주 살마가 쿠데타 일으킨건데 이건 중국에서도 신해혁명 당시 비슷하게 일어난거니 조선같이 이례적으로 강한 중앙집권은 아니나 평균은 넘습니다
그 약간의 지방통제력 차이가 불러온거지. 조선은 지방세력이 어떻게 뭘 한다는게 성립자체가 안된거고 일본은 그 가능성이 남아있던게 잭팟 터진거고
그것과는 관계가 없다는게 학계 중론이고, 애당초 흥선대원군부터 갑신정변, 대한제국까지 기회 자체는 여럿 있었는데 그냥 지도층이 나태해 빠져서 실패한겁니다
일본 중앙 막부세력도 나태한건 비슷하지 않았나? 엎은 지방세력이 중앙 막부랑 얼마나 인연이 있었다고... 그걸 인조나 세조랑 비교하는건 무리라 생각함. 굳이 비교하자면 왕건이랑 이성계에 더 가까운거같은데
이성계가 더 그럴싸하다면 그런 비유로 볼 수도 있겠지요. 다만 중앙 막부가 나태한 것처럼 보여도 선제적 개혁 여론을 조성하고 공무합체파(이를 위해 덕천가와 천황가 사이에 혼인이 성립)를 위해 정치 퍼포먼스를 정력적으로 한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조쪽짱이 서양 문명과의 교류 정도와 그 중요성 인식 정도도 달랐던 것도 있었을거 같음. 조선이 일본 막부나 지방세력만큼 서양 문명을 알았다고?? 글쎄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