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ㅅㅌㅊ더라 관심있으면 츄라이
소련 공군(방공부대 제외)의 최초 파견은 1950년 2월로, 당시 파견된 제29전투항공연대가 9월부로 실전 배치.



1950년 11월에 제151전투항공사단이 실전 배치, 제64항공군단(게오르기 로보프 중장) 예하 28, 50사단 등에 압록강 교량/제방 방공임무가 하달. 소련기들은 원산-평양 한계선 남방 진출이 금지됨.



1951년 4월, 여태까지 La-11에서 미그-15기로 단기 기종전환훈련을 받고 급파된 소련 공군을 보강하기 위해서, 모스크바 방공군구의 제324전투항공사단(제196연대, 제176근위연대 ; 사단장 이반 코제두프 대좌)이 제151사단과 교대. 만주의 안산 기지에서 북한 공군(제1항공사단 2비행연대) 교련역을 잠시 수행한 후 전선 배치.



톈진 기지에 소련 공군 제303항공사단(쿠마니스키 대좌)이 주둔. 제324사단이 전선 배치된 후 후방 교련역을 담당. (야크-17 제트훈련기 배치)



1951년 6월, 안산 기지에서 303사단이 북한 공군에 미그기 인계작업을 시작. 같은 달 안퉁(단둥) 기지에 제324사단이 재전개.



1951년 11월 7일, 북한군 미그기 연대(제2비행연대)가 압록강 남변의 의주 기지에 전개. 당시 북한 내 유일하게 기능하는 비행장.



1951년 12월, 북한군 비행연대 단둥으로 철수. 당시 단둥 기지에는 안산에서 재배치된 소련 324사단, 중공 2사단, 북한 1사단 2연대 등 3개 국적 부대의 미그기 도합 170여기가 주둔. 이중 소련은 미그-15bis를 운용. 공산군은 24기 규모의 연대 대형을 선호.



전체적으로 소련 공군은 (순환배치 고려해서) 2+개 항공사단을 만주 변경 전투공역에 항시 전개함. (고사포병단 등 방공부대 제외함) 이는 한국전쟁의 공산군 항공전력 과반이 넘는 규모.



파병 1진은 10개월 간의 전투로 소련 참전인원 중 2할 가량 사상. 파병 2진, 즉 코제두프 사단의 후속으로 파견온 비정예 사단들(97, 190사단)의 경우 4개월 내에 거진 전멸.



1952년 1월부터 1953년 7월 정전까지 단둥 기지의 평균 손실기수는 1일 1기 가량. 북한 제1항공사단장 강대용(특간 1기)의 오지휘로 2연대 미그기 다수 상실(1952년 1월 25일 하루 교전에 3대대장 박순군 소좌를 포함 5+기 손실). 이에 더해 북한 제11항공사단장 김달현 대좌 등 다수의 조종인력이 내부검열로 숙군되며 질적 하락이 가속.



1952년 4월, 미 공군이 만주 접근금지공역 조치를 해제. 안퉁 기지 상공에 대기하다가 이착륙하는 미그기를 상공 기습하는 전술을 채택. 공산 공군은 고도 우위를 상실함에 따라 손실 급증, 교환비가 심각하게 치우침. 한국전쟁 기간의 미그기 격추수 중 8할이 해당 기간에 벌어졌으리라 추정. 미그-15bis의 경우 이륙 직후 도그파이트에 들어가면 외부연료탱크를 떨궜고, 이로 인해 작전시간이 35분 미만으로 제약됨.



1952년 6월, 단둥의 공산 공군은 만주 북부로 철수. 8-9월 기간 동안 공산군 미그기 63기 손실. 동일 기간에 미 5공군의 F-86F 손실 기체수는 6기.



1952년 7월부터 미군은 F-84 전폭기를 미끼로 내세운 주간 신의주 폭격작전을 개시. 공산 공군을 끌어내어 소진시키려는 목적.



1952년 여름, 계속된 삽질로 큰 피해를 초래한 강대용 1사단장 보직해임 및 불명예 전역. 이활이 북 공군 지휘를 인수. 1사단 정치위원 장학봉 대좌가 임시로 지휘 연계. (소련군 출신으로 소련파 숙청 시 추방, 소련 붕괴 이후 한국전쟁이 남침이었음을 시인하는 소련파 군관 양심선언을 주도)



1953년 5월, 미군의 심리전으로 (공산군에겐 공군지원이 부재하다는 내용의 삐라 대량살포) 공산공군 소티수 증가. 세이버 1기 격추 전과를 올리고 56기 파괴. 6월엔 그마저도 전과를 못 올리고 미그기 75기 파괴.



1953년 6월 10일, 금화의 국군 2군단을 상대로 공산군이 공세를 전개함에 따라 수반된 항공전 진행. 북한 공군 등은 미 대통령이 '아데나우어'(아이젠하워를 의미)로 교체되었는데, 그가 '상륙전의 달인'이라면서 원산 상륙을 우려, 정예부대를 동해안 방공에 전개.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보면 미그 앨리에서 서방권이 받은 쇼크만큼이나, 52-53년에 밑천까지 탈탈 털리면서 동구권이 받은 쇼크도 만만찮게 컸던 듯.



주요 출처는 <A MiG-15 to Freedom> (노금석, Osterholm 공저)이고, 소련 공군의 6.25 참전에 대해선 국내 논문도 꽤 있고 해외 저서도 많은 편임. 세계최초로 제트기끼리 대판 붙은 공중전이다 보니 아무래도 이러쿵저러쿵할 거리가 많아서...


1950년에 반짝했다가 순식간에 썰려나간 당시 북한 공군 조직에 대해 더 관심 있으시면 <History written by our blood and tears(피와 눈물로써 씨여진 우리들의 력사)> (장학봉 등 공저)랑 <한국전쟁 이전 북한 공군 간부의 구성과 정치연합체제의 구축> (김성호 저)도 흥미롭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