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 대간첩용-해역방어 위해서 함포 많이다는 설계를 보여줬고
고속함정때문에 속도도 빠르게 됐음.
1975년 베트남의 공산화는 한국의 자주국방 노력을 더욱 자극했다.
새로운 전력증강계획이 마련됐고, 1980년 초까지 북한과 대등한 군사력을 육성, 확보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았다.
전력증강계획의 주요 내용으로는 1980년대 초까지 방위전력을 확보하고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는 억제전력 기반조성, 방위전력 보강, 전력의 질적 향상, 억제전력의 건설 등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1980년대 말까지 억제전력 확보를 주된 목적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해군 방어해역 내에서 완벽한 해상 통제권을 확보, 유지해 방어해역에 대한 적의 사용 및 침투를 방지하고자 했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작전해역을 확대해 한반도 전 해역에 대한 해상 우세를 장악하는 것을 해군 전략목표의 기본으로 했다.
해상작전에 소요되는 전투함 전력을 살펴보면 톤수 2,800톤 및 1,800톤급으로 30노트 이상의 속력을 내며 대함 및 대공 유도탄을 보유한 다목적 전투함과 750톤급 한국형 경비함이 있다.
소요함정을 개발, 건조하여 전투 경비함의 노후 대체에 대비함과 동시에 자주적인 조함발전에 기여하고자 했고, 함대함 유도탄을 확보해 구축함에 장착시키고 공대함 유도탄을 확보, 헬기에 장착해 해상 공격능력을 보유하고자 했다.
걍 당시에는 대잠에 신경쓸 필요와 여유가 없었음
그나마 90년대 중반에 시작하던 세종급 이후 함정들은 대잠성능 괜찮은 편임.
그래도 00년대에 손 한번은 봤어야했는데
그건 마따
글킨함 그래도 그일로 대잠전력을 중요시하게 된건 그나마 다행
근데 저때에도 북한이 각종 잠수함 잠수정 70척 유지하던 때 아니었음? 필요는 있었는데 기술이나 돈이 없던 듯?
그거보단 대규모 간첩선 침투와 NLL 근방 함포전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음.
본격적으로 잠수함 문제가 터진건 강릉 공비사건 있던 90년대 중후반부터.
그럼 그때는 북괴잠수정오면 걍 두들겨맞았어야할적인가 - 시진핑개새끼
ㅔ
당장 연평해전도 고속정끼리 충각하고 함포싸움 했는데 대잠은 무슨 ㅋㅋ
인천급이 사실 좀 더 일찍 시작했어야 하는 프로젝트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