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천1호분과 삼실총
1600년 전 고구려인 생활 생생… 도굴 이후 철조망·시멘트로 폐쇄
도굴된 지 10년 만에 국내에서 수사가 이뤄진 고구려 고분 벽화가 있었던 장천(長川)1호분과 삼실총(三室塚)은 무용총, 각저총과 함께 고구려의 대표적 고분 유적으로 꼽힌다. 5세기 중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장천1호분은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 시내에서 압록강 북동쪽으로 25㎞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기다란(長) 개울(川)이 있는 고을 근처에서 첫 번째로 발견된 고분’이라 해서 ‘장천1호’란 이름이 붙었다. 이 고분은 무덤 주인의 생전 생활 모습이 그려져 있는 ‘앞방’과 관이 놓여 있는 곳인 ‘널방’의 이중 구조로 돼 있다.
이 고분의 최대 특징은 벽면과 천장에 풍부하게 그려진 당시 고구려인의 생활풍속도다.
1600~1700년 전 고구려인의 생활 모습을 그린 생활풍속도(악기 연주, 소풍, 사냥 등 삶의 모습 묘사), 씨름도(장정들이 씨름하는 모습 묘사), 비천상(신선이 하늘을 나는 장면), 예불도(귀족이 예를 갖추고 절하는 그림), 가무관람도(무덤 주인인 부부가 가무를 보는 모습)는 하나같이 고구려 미술의 정수로 꼽히는 걸작들이다. 소풍을 나가고, 사냥을 하고, 절을 하며, 가무를 관람하는 등 5세기 고구려인의 생활이 생생하게 묘사된 이 벽화들은 당시 우리 조상들의 삶을 살필 수 있는 자료다.
장천1호분과 함께 도굴된 삼실총에는 행렬도(무덤 주인 부부의 나들이 모습), 출행도(행차에 나서는 광경), 주작도(상상의 동물인 주작을 그린 것), 청룡도(4신의 하나인 청룡을 묘사), 백호도(전설의 동물인 백호를 묘사), 현무도(북쪽을 수호한다는 상상의 동물) 등이 있었다.
삼실총은 무덤 건축 양식이 특이하다. 고구려 고분은 일반적으로 1개 또는 2개의 방을 갖고 있는데, 삼실총만은 유일하게 3개의 방을 갖고 있다. 그래서 삼실(三室)총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 무덤은 왜 3개의 방을 갖고 있는 것일까. 울산대 전호태 교수는 이에 대해 “3쌍의 부부가 묻힌 무덤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학계는 방이 3개인 이유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지 못했다. 이 고분은 도굴 이후 입구가 폐쇄된 채 쓸쓸하게 방치되고 있다. 이 무덤만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3실 미스터리’ 역시 풀기 힘든 숙제로 남겨졌다.
고구려 예술의 백미로 손꼽히는 이 벽화들은 더 이상 보기 힘들게 됐다. 벽면이 통째로 뜯겨져 나가 허옇게 변색된 장천1호 고분벽화는 이제 사진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과거의 기억이 되고 말았다. 고구려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민족 유산이 조각조각 토막난 채로, 어딘가 있을 시커먼 어둠 속으로 처박혀 버렸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2000년 도굴 이후 장천1호분과 삼실총에 대한 일반인 접근을 차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옥수수 밭으로 둘러싸여 있던 장천1호 고분의 무덤 입구에는 두꺼운 철문을 설치한 뒤 이를 용접해 외부 출입을 차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찬가지로 옥수수밭과 과수원으로 둘러싸여 있던 삼실총 역시 입구에 시멘트를 두껍게 발라 아예 출입 자체를 막아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2년 조선일보는 당시 이들 고구려 고분 내부 벽화를 촬영, 지면에 보도하는 한편 ‘아! 고구려전’을 열었고 전시회는 국민으로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모은 바 있다.
2000년에 조선족들이 벽째로 뜯어서 도굴해갔다고 함
군붕이들도 한번쯤 봤을 위 고구려 벽화도 여기에 포함된거임
도굴이라 쓰고 당에서 파간거 아님?
ㄴ 진지하게 둘 다 가능성 있다
어차피 중국땅에 있는건데 뭣하러 파감. 한국인 장물아비한테 넘어갔다는 설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