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초반까지 미군의 기갑 상황은 좀 많이 혼란스러웠음.


미군에서 야심차게 진행했던 전차 사업들은 죄다 폐기되어버렸고,


영국군이나 소련군이 MBT 개념을 완전히 적립하거나 혹은 실질적으로 운용을 하는 동안,


미군은 제 2차 세계대전기에 겪은 티거 쇼크와 그 직후의 IS-3 쇼크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중전차/중형전차/경전차 개념에 푹 빠져있었고.


이 때문에 미군은 중전차/중형전차/경전차를 따로 따로 연구/개발/생산하고 있었음.



결국 설계 문제로 M47 패튼까지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5인 승무원 체제가 유지됐고,


"중형전차"용 90mm 주포의 경우 구경으로 83mm 정도 밖에 안 되는 20파운더에 화력에서 밀리는 충격적인 결과까지 나옴.


그럼에도 "암! 중형전차는 90mm를 써야지!"라는 미군 수뇌부의 판단으로 중형전차의 주포 구경은 90mm에 묶여 있었음.


더불어 부족한 기갑 화력은


그대신

백이십

밀리주

를단

귀여운

백삼

전차


로 해결보려는 상황까지 옴.



뭐, 이쯤 되면 이 시기의 웬만한 나라들은 전차 생산에 큰 문제가 생겼겠지만, 그건 미국에는 해당이 안 되는 내용이었음.


이 삽질을 하면서도 M47과 M48은 엄청난 숫자를 생산해 동맹국들에 뿌려댈 수 있었음.


특히 M48의 경우 전후 중형전차들 중 가장 성공한 시리즈라 평가 받았고, 12000대라는 엄청난 생산 댓수를 기록함.




하지만 분명 미군의 전차 체계에 문제가 있던 건 확실했고,


M47, M103의 실패와 M48의 고질적 문제점들을 본 미군 수뇌부도 이를 인지함.


그리고 이 모든 걸 뒤집은 게 M60A1이었고.


말 그대로 미국 전차 기술과 개념의 대혁신을 이뤄낸 전차가 M60A1이었음.



다만 미제 주포에는 문제가 있었고 이 때문에 M60 계열에는, 미군 입장에서는 속이 쓰렸지만, 영국제 주포 기술을 이용하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