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이항복이 지은 백사집에 수록되어 있는
"臨陂才人朴春被擄而爲將後欲投歸本國
(임피 재인 박춘이 포로가 되어 장군이 된 뒤에 본국으로 투항하려 하다)"
이라는 기록입니다.
박춘은 재인(才人,광대)출신으로 박세동의 아들로 전라도 임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592년 금산전투에서 고경명의 의병이 왜군에 패할때 왜군의 포로가 되었죠
그리고 5년후인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는 이때 천명의 군대를 이끄는 왜군 장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고바야카와 다카가게의 휘하였던듯 합니다)
정유재란이 벌어지자 그는 상관에게 전라도로 향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그 청이 받아들여져 부하 1000명과 전라도로 진군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고향으로 가고 싶어서였죠
그렇게 박춘이 자신의 고향을 찾아갔을때
집과 고향은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박춘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편지 한장을 써서 자신의 집에다가 놓아두고 갔습니다
나는 이 집에 살던 박모이다
왜적이 나에게 1000명의 군대를 주고 선봉을 삼았는데
나는 이때 본국(조선)으로 투항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포로로 잡혀있던 조선인들을 내 부대에 넣어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내 부대의 2/3을 조선인들로 채웠다.
그리고 조선인출신의 병사들과 비밀리에 약속하기를
본국(조선)의 군대와 만나면 즉시 항복하기로 약조하였다.
하지만 여러날을 배회하였으나
한번도 본국의 군대를 만나지 못하여
계획을 이루지 못하고 통곡하며 돌아가노라
박춘이 조선군을 찾아 배회하고 있을때
전라도 옥야 출신의 재인(광대) 임세붕의 딸이 포로가 되어 박춘앞에 끌려와 있었습니다.
임세붕의 딸은 공포에 떨고 있었는데
저녁이 되고 왜병들이 각자 잠자리로 흩어지자
그들을 지휘하던 왜장이 임세붕의 딸 근처에서 2~3명의 왜병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가 전라도 옥야구나.."
갑작스럽게 왜장이 조선말로 이야기 하기 시작하자 임세붕의 딸은 깜짝 놀랐습니다
"마당(麻堂), 기운(氣運), 세붕(世鵬) 모두 무사할까?"
자신의 아버지 이름이 왜장의 입에서 나오자 임세붕의 딸은 더욱 놀랐죠
게다가 그가 말한 마당과 기운도 전라도에서 유명하던 재인(광대)들로 아버지의 친구들이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재인(才人)
그리고 그 왜장은 임세붕의 딸을 보더니 와서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냐?"
"저는 옥야의 재인 임세붕의 딸입니다"
그러자 그 왜장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너희 부모님은 잘 계시니?"
"아버지는 권율원수의 휘하에서 싸우고 계시고
어머님은 저와 같이 숨었다가 왜병들에게 잡혀 살해당했으며
저는 이렇게 잡혀왔습니다"
그러자 그 왜장은 탄식하며 슬퍼했습니다.
며칠후 왜군이 퇴각하게 되자
왜장은 임세붕의 딸을 불러 말에 태우고
왜병하나를 호위로 붙여준 다음
조선군이 있는 곳에 다다를 때까지 그녀를 경호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임세붕의 딸에게는 편지 두통을 주면서
한통은 자신의 부모님에게 한통은 임세붕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죠
결국 풀려난 임세붕의 딸은 이후 조선군을 만나게 되었고
아버지에게 왜장의 편지를 전했는데
내용은 박춘이 자신의 집에 남긴 편지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박춘의 아버지에게도 편지를 전했는데
박춘의 아버지는 아들이 왜장이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화가 미칠것을 두려워하여 입을 다물었고
이웃들도 박춘의 이야기를 입에 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조선인으로 이루어진 왜군부대가 투항한 기록이 없는것을 보아
박춘과 조선인 왜군부대는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후 이야기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후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모두 죽었을지도
혹은 평안히 여생을 보냈을지도
그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臨陂才人朴春被擄而爲將後欲投歸本國
(임피 재인 박춘이 포로가 되어 장군이 된 뒤에 본국으로 투항하려 하다)"
이라는 기록입니다.
박춘은 재인(才人,광대)출신으로 박세동의 아들로 전라도 임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592년 금산전투에서 고경명의 의병이 왜군에 패할때 왜군의 포로가 되었죠
그리고 5년후인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는 이때 천명의 군대를 이끄는 왜군 장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고바야카와 다카가게의 휘하였던듯 합니다)
정유재란이 벌어지자 그는 상관에게 전라도로 향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그 청이 받아들여져 부하 1000명과 전라도로 진군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고향으로 가고 싶어서였죠
그렇게 박춘이 자신의 고향을 찾아갔을때
집과 고향은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박춘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편지 한장을 써서 자신의 집에다가 놓아두고 갔습니다
나는 이 집에 살던 박모이다
왜적이 나에게 1000명의 군대를 주고 선봉을 삼았는데
나는 이때 본국(조선)으로 투항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포로로 잡혀있던 조선인들을 내 부대에 넣어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내 부대의 2/3을 조선인들로 채웠다.
그리고 조선인출신의 병사들과 비밀리에 약속하기를
본국(조선)의 군대와 만나면 즉시 항복하기로 약조하였다.
하지만 여러날을 배회하였으나
한번도 본국의 군대를 만나지 못하여
계획을 이루지 못하고 통곡하며 돌아가노라
박춘이 조선군을 찾아 배회하고 있을때
전라도 옥야 출신의 재인(광대) 임세붕의 딸이 포로가 되어 박춘앞에 끌려와 있었습니다.
임세붕의 딸은 공포에 떨고 있었는데
저녁이 되고 왜병들이 각자 잠자리로 흩어지자
그들을 지휘하던 왜장이 임세붕의 딸 근처에서 2~3명의 왜병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가 전라도 옥야구나.."
갑작스럽게 왜장이 조선말로 이야기 하기 시작하자 임세붕의 딸은 깜짝 놀랐습니다
"마당(麻堂), 기운(氣運), 세붕(世鵬) 모두 무사할까?"
자신의 아버지 이름이 왜장의 입에서 나오자 임세붕의 딸은 더욱 놀랐죠
게다가 그가 말한 마당과 기운도 전라도에서 유명하던 재인(광대)들로 아버지의 친구들이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재인(才人)
그리고 그 왜장은 임세붕의 딸을 보더니 와서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냐?"
"저는 옥야의 재인 임세붕의 딸입니다"
그러자 그 왜장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너희 부모님은 잘 계시니?"
"아버지는 권율원수의 휘하에서 싸우고 계시고
어머님은 저와 같이 숨었다가 왜병들에게 잡혀 살해당했으며
저는 이렇게 잡혀왔습니다"
그러자 그 왜장은 탄식하며 슬퍼했습니다.
며칠후 왜군이 퇴각하게 되자
왜장은 임세붕의 딸을 불러 말에 태우고
왜병하나를 호위로 붙여준 다음
조선군이 있는 곳에 다다를 때까지 그녀를 경호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임세붕의 딸에게는 편지 두통을 주면서
한통은 자신의 부모님에게 한통은 임세붕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죠
결국 풀려난 임세붕의 딸은 이후 조선군을 만나게 되었고
아버지에게 왜장의 편지를 전했는데
내용은 박춘이 자신의 집에 남긴 편지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박춘의 아버지에게도 편지를 전했는데
박춘의 아버지는 아들이 왜장이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화가 미칠것을 두려워하여 입을 다물었고
이웃들도 박춘의 이야기를 입에 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조선인으로 이루어진 왜군부대가 투항한 기록이 없는것을 보아
박춘과 조선인 왜군부대는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후 이야기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후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모두 죽었을지도
혹은 평안히 여생을 보냈을지도
그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정보탭으로 바꿔
zzz
항왜라고 일본도 조선에 투항하는데 조선이라고 없을리가 없지
의외로 많아서 '순왜'라는 이름이 따로 있었음 ㅇㅇ
포로출신 외국인이 7년만에 1000명 지휘관 될 정도면 존나 능력자인가본데
대령급인가?
저시절 군대규모 감안하면 지금 장성급아니냐
슬프네
슬프네.. - dc App
포로인데도 천부장급 지휘관 될 정도면 저 사람 심정은 슬플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무력 쎈놈이 신분 상관없이 출세할길이 더 열려있었던 당시의 일본 생활이 더 적성에 맞고 출세길도 열려있었을듯 하다...
는 당시엔 조선도 공을 세우면 정충신 같이 노비 출신도 고위 관직에 오르는게 가능했음.
좀 소설 같은 인생이네. 천민 출신이 적국의 장군이된다라..
그러고보니 필리핀이나 자카르타에서도 조선출신 왜구? 일본계 무력집단 인력이 있었다는 이야기듣고 기분이 묘해진적 있음 선교사가 카톨릭 세례주거나 죽이기전 개종 시키면서 고향 물어보는데 적혀있는 '대구'나 '솽주'이름 보면 진짜 기분 그렇더라
그러고보니 왜장장수 출신이면서 조선에 투항하고 조선 장교자리까지 승진한 일본인 이야기도 있지 않았나. 가토 뭐시기 하는 이름이었던거 같던데
대표적으로 김충선이 있긴함
전국시대 석고제 기준으로 1만석당 대략 250-500명의 군사를 끌어냈으니 1000명이면 2-4만석급 다이묘가 통솔하는 군대라는거지.. 저 양반은 웬만한 사무라이보다 출세한거네....
걍 설화같은데 뭐
이글 또 실베가서 야갤새끼들 개지랄하겠네
칼부림 스토리 같다
이거 영화로 만들어도 될듯
역시 전라도네 이중 통수 시도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