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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전시경제의 경이로운 생산력?"

미어샤이머에 따르면, 경제력이 군사력의 원천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경제력이 군사력으로 직결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경제력의 군사력으로의 전환에는 그 효율성이라는 변수가 개입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경쟁하는 강대국들간에는 전환의 효율성에 차이가 존재했고, 이것이 세력균형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 중요사례는 나치 독일과 소련간의 결사적 투쟁이었다고 한다.

미어샤이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40년, 독일이 유럽의 부의 36%를 가지고 있었고, 소련은 28%를 가지고 있었다. 1940년 봄, 독일은 벨기에,덴마크,프랑스,네덜란드,노르웨이를 정복했고, 즉시 그 경제들을 착취하기 시작했으며, 소련과의 부의 격차를 늘렸다. 1941년 6월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했을 때, 6개월만에 독일은 모스크바 서쪽의 모든 소련 영토를 장악했다. 이렇게 1941년말, 소련은 영토를 상실, 철도망의 41%, 전력생산 능력의 42%, 철광석의 71%, 석탄의 63%, 조강 crude steel 능력의 58%를 상실했다. 1942년 봄, 나치 군수산업은 석유가 풍부한 코카서스 지역까지 손에 넣었다. 이렇게 소련은 1940년-1942년 동안 국가 소득의 40%를 상실했다. 1942년, 독일은 경제력에서 소련에 비해 3:1로 앞서는 것으로 보였다.

독일이 잠재력에서 크게 앞서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 전시경제는 전쟁동안 독일 전시경제 보다 더 많이 생산했고, 이것이 붉은 군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의 세력 균형의 재편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전쟁동안 소련은 독일 보다 2.2배 많은 탱크를 생산했고, 항공기를 1.3배 더 많이 만들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소련이 전쟁 초반부터 독일보다 더 많이 생산해냈다는 점에 있다. 즉 독일이 소련 영토를 가장 많이 점령하고, 독일에 대한 연합국의 폭격이 독일 전시경제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던 시기 조차도 더 많이 생산했다는 것이다. 가령, 소련은 1942년에 탱크를 24,446대 만들었다. 독일이 9200대 만들 동안 말이다. 1942년 대포 생산도 127,000대 12000으로 소련이 앞섰다.

이같은 무기 생산의 불균형이 결국 지상군의 균형에서 소련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독일이 1941년 6월 소련을 침공했을때, 소련은 사단 보유수에서 211:199로 근소하게 앞서있었다. 하지만 1945년 1월, 소련의 473개 사단이 독일군 276개 사단을 상대하고 있었고, 평균적으로 볼때 소련군 사단이 무기와 장비상으로 독일 사단 보다 더 잘 무장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소련은 어떻게 더 부유한 나치 독일 보다 더 많은 무기를 생산해낼 수 있었는가? 이에 대한 가능한 답변중 하나는 소련이 독일 제3제국 보다 더 많은 가용 자원을 군사 부문에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보면, 1942년 독일이 소련보다 국방비를 더 많이 지출했고, 63% 대 61%였다. 1943년에는 70 : 61이었다. 물론 전쟁 말기에 연합국의 전략 폭격으로 독일의 전시 생산이 타격을 입었지만, 소련은 전략 폭격이 개시되기 전부터 독일 보다 더 많은 무기를 생산했다. 또한 소련의 전시경제는 미국의 무기대여 Lend-Lease 계획의 지원을 받았지만, 일부 연구에 따르면 이는 소련 생산량의 단지 일부만을 올렸을 뿐이라 한다. (4%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소련이 독일보다 더 많은 무기를 생산할 수 있었던 주된 원인은 소련이 전체전을 위해 경제를 더욱 효율적으로 재편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소련 경제는 무기 대량 생산에서 독일 경제 보다 더 잘 조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