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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http://www.combinedfleet.com/guadoil1.htm



사례1: ‘포격’


1942년 10월 13~14일 밤, 헨더슨 비행장은 공고급 전함 공고와 하루나에게 함포 포격을 당했다. 이 포격은 태평양 전쟁의 숱한 포격들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것 중 하나였으며, 철저해협에서 일본군이 수행한 가장 성공적인 해군 작전이었다. 다음날 헨더슨 비행장은 말 그대로 초토화되어 있었다. 항공기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귀중한 항공유 재고 또한 상당수가 연기로 변해버렸다. 


많은 미국인들은 이때를 전 전투에서 가장 위태로웠던 시기로 기억한다. 헨더슨 비행장이 일시적으로 마비된 그날 아침, 미해병대는 일본 증원병력 상륙을 그저 무력하게 지켜보는 것 외에는 거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절박한 수색 끝에 예비 비행장에서 몇 대의 항공기를 띄울 수 있을 만한 양의 연료를 찾아내긴 했으나, 이제 헨더슨 비행장이 과달카날 주변 해역을 지배 할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나간 것처럼 보였다. 과달카날은 완전히 고립된 것처럼 보였고, 이러한 상황은 미군 장병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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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전과를 얻기 위해 일본군이 치러야 했던 대가는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여기선 병참, 그중에서도 예비 연료유의 측면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일본 해군은 이 작전을 위해 2척의 전함(공고와 하루나)과 1척의 경순양함(이스즈), 9척의 구축함을 라바울로부터 내려 보냈다. 라바울에서 과달카날까지의 거리는 직선으로 대략 650마일 정도다. 여기서 우린 지리적 요인과 대잠 회피기동에 필요한 거리 등을 모두 포함시켜서, 라바울에서 과달카날까지 편도로 대략 800마일의 이동거리가 필요하다고 가정하겠다.


일본 해군은 보통 솔로몬 제도의 좁은 해로(슬롯Slot)를 순항속도(16노트로 가정)로 통과했고, 이후 야음을 틈타 최고 속도로 과달카날에 근접, 임무를 수행한 후 신속히 철수했다. 따라서 과달카날로 향하는 일본 해군은 통상 650마일을 16노트의 순항 속도로 통과했고, 전투해역인 나머지 150마일은 늦은 오후에 25노트의 속도로 돌진해 통과했다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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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약 1시간 동안 포격 또는 해전이 뒤따랐고 아침까지 헨더슨 비행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위해 유사한 돌진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공습이나 잠수함을 피하기 위한 회피기동, 슬롯을 내려오다 마주하는 유사한 전투행위에 소모될 1시간여까지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본격적인 계산에 앞서 각 함선들의 대략적 기본 연료소모량은 다음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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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선 계산을 위해 함선들이 25노트로 기동할 경우, 연료소모량은 3배 증가한다고 가정하며, 일반적인 전투 작전에서 순양함 이상급 함선의 연료 소모량은 5배, 구축함의 연료 소모량은 10배 증가한다고 가정했다. 물론 어디까지 대략적인 수치이나 주장의 요점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한 수준이라고 판단한다. 이런 가정들에 의하면 ‘포격’ 작전을 위해 일본 해군이 소비한 연료량은 다음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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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간의 일개 작전에서 무려 4000톤이 넘는 연료유가 소모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당시 일본 해군의 총 월간 연료소모량 305,000톤의 1.4%에 달하는 수치다. 물론 1.4%는 별것 아닌 작은 수치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 30,5000톤의 연료를 전 일본 해군이 나눠 써야 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연합함대와 기타 소부대는 물론, 잠수함부대와 훈련부대, 정기초계를 수행하는 정찰선, 선단을 호위하는 호위함들까지 모두가 연료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사례2: 포격 ‘개’


이번에는 실제 일어난 적 없는 대체역사를 가정해보도록 하겠다. 야마모토가 결단을 내렸고, 이번에야말로 헨더슨 비행장을 완전히 끝장내기 위해 야마토를 트럭에서 과달카날로 내려 보내겠다 선포한다. 사실 야마모토는 실제로 최소 한번 이런 종류의 작전을 제안한 바 있다. 대본영이 이를 기각했는데, 연료가 그 이유였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해군기지(따라서 해군 전체 상황의 중대한 지표)였던 구레의 연료유 비축량이 65,000톤까지 감소했던 것이다. 당시 일본 해군의 연료 소모량은 하루에만 10,000톤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 사례는 과달카날 전역에서 연료유의 중요성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며, 일본 해군이 실제로 적어도 한번은 연료 제약으로 인해 주력함을 투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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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하는 점은, 만약 야마모토가 정말 야마토를 투입하기로 결정한 경우, 그녀의 자매함 무사시는 물론 여러 순양함, 구축함으로 이루어진 일개 전대 또한 작전에 함께 동원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여기선 작전을 위해 야마토와 무사시, 4척의 묘코급 중순양함과 나가라급 경순양함 한척, 그리고 9척의 구축함으로 이루어진 전대가 동원되었다고 가정하겠다. 충분한 수상교전 능력을 갖춘 해안포격 특무부대다. 각 함급이 순항속도에서 소모하는 대략적인 연료의 양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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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에서 과달카날까지의 거리는 1400마일로 라바울에서의 거리보다 훨씬 멀었다. 다시 여기에 회피기동 등에 필요한 거리를 모두 포함시켜서, 트럭에서 과달카날까지 편도로 대략 1750마일의 이동거리가 필요하다고 가정하겠다. 따라서 야마토 전대는 1600여 마일을 순항 속도로 항해한 뒤 나머지 전투해역 150마일을 25노트의 속도로 주파하고, 비행장에 포격을 가한 후 다시 150마일을 돌파해 전투해역을 빠져나간 뒤 트럭까지 순항해야 한다. 여기서 다시금 공습과 기타 전투행위로 인한 총 2시간여의 고속 기동 시간을 추가해 계산해보면, 이 임무로 인해 발생하는 연료소모량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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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 작전은 일본 해군의 총 월간 연료소모량 중 무려 5.1%를 소모시켰다.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물론 비행장은 포격에 취약하지만 동시에 입은 피해를 수복할 수도 있기 때문에 단 한 번의 포격으로 이를 완전히 파괴한다는 발상은 환상에 가깝다. 따라서 비행장에 대한 반복적인 포격이 필요했는데, 이것이 일본군의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단발적인 몇 번의 포격으론 결정적인 성과를 낼 수 없었다.


과달카날 전역은 비단 포격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장기적인 소모전 양상을 보였다. 우가키 제독은 여기에 대해 이런 기록을 남겼다. ‘분통이 터진다. 우리는 격추시키고 또 격추시키지만 그들은 그저 더 많은 병력을 보낸다.’ 비행장에 대한 한 번의 공격은 비행장을 완전히 끝장내지 못할 가능성이 컸고, 일본 해군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비행장을 아예 파괴하거나 무력화시키기 위해선 지속적인 포격작전이 필요했다. 육군이 비행장을 점령하거나 포격으로 비행장이 아예 전멸할 때까지는 거의 수주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결국 단발적인 한 번의 포격작전은 승리를 결정짓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일본 해군은 수주에 걸쳐 주력함들을 과달카날로 보낼 수 있을 만한 충분한 양의 연료유를 갖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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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3: 도쿄 급행열차


과달카날 섬의 일본 육군은 점차 보급난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역 중반쯤 되면, 이들을 먹여 살리고 보충할 보급수단이라곤 도쿄 급행열차의 해군 구축함들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이 열차를 유지하는 데 들어간 대가는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도쿄 급행열차는 통상적으로 4~6척의 수송 구축함과 2척의 호위 구축함으로 구성되었다. 각 ‘수송’ 구축함은 150~200명의 병사 혹은 55갤런 드럼통 200개 분량의 보급품을 운반할 수 있었다. 앞서 가정한 항해양상에 따르면, 각 구축함이 과달카날을 다녀오기 위해 소모하는 총 연료소모량은 172톤 정도였다. 


따라서 ‘통상적’인 도쿄 급행은 매번 대략 1,374톤의 연료유를 소모했다. 타사파롱가 곶으로 1명의 병사, 혹은 1개의 드럼통을 운반하기 위해 거의 1.5톤의 연료를 태운 셈이다. 쌀 몇 백 파운드, 또는 반쯤 굶주린 경보병 한명을 위해 소모되는 1.5톤의 기름은 어떤 기준으로 봐도 유감스러운 교환이다.


이러한 작전이 3~4일마다 한 번씩 있었다. 그렇다면 어느 한 달 6번의 급행이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각 급행열차는 6척의 ‘수송’선과 2척의 호위, 총 8척의 구축함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달간의 급행은 모두 합쳐 약 7000명의 보병이나 드럼통을 과달카날에 보냈고, 그 대가로 8,250톤의 연료를 소모했다. 일본 해군 총 월간 연료소모량 중 2.7%가 연대 하나(4000명)와 그들의 군량(3000여개의 드럼통)을 보내기 위해 소모되었다.


성과에 비해 치른 대가가 너무 컸다. 구축함들에게 중화기나 중장비를 수송할 능력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헨더슨 비행장 주변에 단단히 들어앉은 미군을 몰아내기 위해선, 그러한 장비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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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4: 도쿄 급행열차 ‘극단’


그러나 실제 1942년 11월, 과달카날의 일본군이 필요로 한 보급품의 양은 상기한 가정량조차 훨씬 초과했다. 17군 참모들은 과달카날의 보급 필요량을 충족하기 위해선 구축함 5척분의 보급품이 매일 과달카날에 도착해야 한다고 계산했다. 


5척의 수송 구축함마다 호위가 2척씩 붙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일 1,200톤의 연료가 소모되는 꼴이었고 한 달이면 무려 36,000톤에 달하는 연료가 공중으로 사라졌다. 여기서 수송되는 보급품에 중장비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기억해야 한다.


17군 참모들은 중장비 보급을 위해 800척의 구축함과 20척의 수상기모함이 과달카날을 한 번씩 왕복해야 한다고 계산했다. 이 경우 구축함 한 함종만 해도 137,000톤 이상의 연료가 필요했다.  중순양함보다도 연비가 나쁜 수상기 모함까지 포함하면 이 작전을 위한 총 연료 필요량은 150,000톤에 달했으며, 이는 일본 해군 총 월간 연료소모량의 50%에 육박하는 수치였다. 


17군의 계획을 받아본 야마모토는 그 비현실성에 경악했고 과달카날에 주둔한 육군 부대 수준에서는 절대 감당할 수 없는 계획이라는 말을 남겼다. 도쿄 급행열차는 분명 장기간 지속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작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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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사실 과달카날에서 일본이 마주한 난관의 해결책이 되어줄 수 있는 선박은 전함이 아니었고, 도쿄 급행열차의 날렵한 구축함들도 아니었다. 수수한 화물선이야말로 진정한 일본군의 구원자였다. 12,000톤의 최대적재량을 가진 적당한 크기의 화물선 한척은 100톤의 연료만으로도 대대 규모의 병사들과 그들을 먹여 살릴 충분한 양의 보급품을 수송할 수 있었다. 17군이 필요로 하는 보급품은 화물선 50척분의 수송량으로 충족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사실 같은 양의 연료로 수송할 수 있는 보급품 양을 비교해보면, 화물선은 구축함보다 무려 30배나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느릿느릿한 화물선을 이용하기 위해선 조건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우선 미국의 제공권을 무력화시켜야 했다. 과달카날의 일본군은 모순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다. 화물선이 수송해주는 보급품과 중화기 없이는 헨더슨 비행장을 점령할 수 없었다. 그러나 비행장이 미군 손에 있는 한, 화물선은 과달카날 해역을 안심하고 통과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과달카날을 유지해야한다는 군사적 요구와 결합되면서 훨씬 더 불길한 전략적 상황을 초래했다. 일본은 석유 재고 면에서 심각하게 불리한 핸디캡을 안고 전쟁을 시작했다. 훨씬 더 크고 강력한 적수를 상대로 승리하기 위해 일본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싸워야 했다. 실제로 일본 해군의 교리는 그들의 열등함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기름을 퍼먹다시피 하는 값비싼 주력함의 수적 부족을 정신력과 훈련, 강력히 무장한 하위함 전력으로 보완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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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달카날의 미국 제공권은 이러한 해군 교리를 근본부터 부정해버렸다. 헨더슨 비행장은 일본 해군이 원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연료를 소모하도록 강요했다. 불충분한 양의 인력과 보급품을 지옥도로 전달하기 위해 함대 구축함들이 동원되어야 했다. 최전방으로 나선 귀중하고 취약한 구축함들은 자연스럽게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었다.


결국 일본군은 과달카날 전역 내내 비효율적인 싸움을 강요받았다. 반면 보급 상황이 더 양호했던 상대방은 크고 효율적인 상선들을 동원하며 모든 이점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미국 전역 사령관 홀시 제독은 지휘하의 모든 함선을 해역에 투입할 만한 충분한 여유가 있었고, 실제로 한 치의 주저도 없이 귀중한 전함을 과달카날에 배치했다.


반면 일본 해군의 그러한 결단은 부족한 연료 비축량으로 인해 지지받지 못했다. 결국 일본은 보유 전함들의 탐욕스러운 연료 필요량을 지탱할 수 없었고, 때문에 그 전함들은 과달카날에서 헨더슨 비행장이나 미국 해군에 대한 지속적인 작전을 펼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의 쓰라린 아이러니를 연합함대의 병참가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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