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 자체의 전근대적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고
형식적으로야 완전했지만 그건 형식적으로였지, 실상 당대에도 그 제도의 약점같은 건 예견되었지만 대응은 역부족이었고
무엇보다 제도가 흔들리고 시대가 변화하면 이를 수정해야했지만 조선은 수정보단 고수를 택했고 그것이 망국의 원인이 되었지
글고 세도정치 시기라고 해도 조선이 체제를 보완하기 위해 개입을 안했냐? 그건 또 아니라서
결국 근본적인 체제의 개혁, 전면적인 변화는 갑오개혁에 이르러서야 되었다는 것 자체가 조선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뭐 긍정적으로보자면 소농사회로의 이행, 그리고 이를 통한 지역적 시장경제의 발전(비록 전국적 시장통합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리고 소농, 소민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 대표적으로 환곡이라던지(조선전기와 후기의 환곡은 엄연히 다르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같이 보아야지 어느 한 면을 보고 이게 팩트다라고 주장하는 건 좀 아니지 싶습니다.
역사이야기1. 조선후기 지방재정과 중앙재정은 개별적으로 돌아갔다. 전자는 동전을 중시했고, 후자는 동전보단 현물과 동전의 분배를 중시했다
역사이야기2. 조선후기 중앙재정의 특징 중에 하나는 동전의 현송이었고, 이는 조선말까지 지속된다
역사이야기3. 조선후기 중앙재정에서 동전의 운송은 생산조건과 운송조건에 의해 결정되었다.
역사이야기4. 환곡제를 보완하기 위해 상평과 사창이 제시되었으나 둘 다 환곡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즉 당의 령도가 필요했단 거죠.
ㄴ 어... 음... 아니에요
결국 필요했던건 민중세력이 자신들의 힘응 자각하는 혁명이었다! 조선판 대혁명! 왕의 목을 저잣거리에 걸고!
ㄴ 갑오농민전쟁! 으어어어어어
역시 다산 센세의 꿈이었던 주체농업 사회주의만이 길이다
사실 동학도 2차 동학?은 일종의 복고주의적 성격(뒤에 대원군이 있었응게ㅋ)이 있긴 했지만 일종의 대혁명으로 기능할 수도 있었을텐데 청일 개입 ㅅㄱ
사회주의보다는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형식주의를 타파하고 자동화된 체계, 입헌주의적 행정, 전국적 시장통합과 시장경제 창달로 나아가야... 으흠 ㅡ,ㅡ
동학은 복고적인 성격이 있긴 한데 그 이전의 민란은 관찰사를 모욕하고 옷벗기고 이정도 선에서 끝냈지 진짜로 씹창내진 않았음. 왕의 사도로 파견된 관리에 손댄걸 근세태동이라 칭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민족사관뽕을 한사발은 해야하겠지만
근세태동ㅋㅋㅋㅋ 차라리 갑오개혁이 한 100년 일찍 일어났다면 모르겠어요
애초에 정조가 외척들을 중앙정계로 끼어들게 했고 순조가 외척들 전횡을 통제를 못한시점에서 망하기 시작했지 뭐 별수 있나
정조는 지가 살아있을때나 잘돌아가는 정치체제를 만들어 놔서. 왜 고평가 받는지는 좀 의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