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골은 어머니 잔 마리 드골을 평생 깊이 사랑했지만, 어머니에게는 무척 마음고생을 시킨 아들이기도 했다.
어릴 적에 드골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되지 않으면 팔을 마구 휘저으며 크게 울곤 했다.
뿐만 아니라, 장난감 병정놀이를 했다 하면 자기가 프랑스 왕이 되고 동생 피에르에게 억지로 독일 카이저를 시켜서 늘 울리곤 했다.
1차 대전 당시, 지옥 같은 베르됭의 혈전에 뛰어든 드골은 참호에서 독일군과 격투를 벌이던 중 수류탄이 코앞에서 터져 혼절하고 포로로 잡혔다.
멀찌감치서 그걸 보고 드골이 분명히 죽었을 거라 판단한 연대장이 보낸 전사 통지서는,
6주 후에 드골이 자기가 무사하다는 편지를 보낼 때까지 어머니를 살아도 산 게 아닌 지경으로 만들었다.
드골이 포로 수용소에서 지내는 동안, 춥고 습기찬 감옥에서 지내는 아들을 걱정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내던 어머니가 피부 보호제를 소포로 보냈다.
탈출할 생각에 혈안이 되어 있던 드골은 황달에 걸린 척하려고 그걸 먹어치우고는, 군의관 회진 때 아이고 사람살려 드골죽네 하고 난리를 쳤다.
1차 대전 후 폴란드군 고문으로 파견된 드골은, 통장 잔고가 바닥나 입고 있는 옷가지말곤 남은 게 없었다.
결국 드골은 나이값도 못하고 칠칠맞게시리 엄마 나 용돈 좀...하고 생활비 좀 부쳐달라고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야 했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을 때, 하필 마리 드골의 건강이 병에 걸려 악화되어만 갔다.
어머니 곁에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드골은 그럴 수 없었다.
이대로는 대가리가 돌이 된 꼰머 장군들 때문에 조국이 파멸의 운명을 맞을 게 불보듯 뻔히 보였고, 어떻게든 그걸 막아보려고 뛰어다녀야 했으니까.
결국 드골은 엄마는 아직 괜찮으실 거야, 다 좋아지실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프랑스는 처참하기 그지없는 패배를 당했고, 페탱의 비시 정부는 나치의 발밑에 엎드려 개가 되려 했다.
끝까지 싸우려면 영국으로 탈출해야 했지만, 그 혼란 속에서 다 죽어가는 환자를 영국으로 모시고 갈 방법이 있을 리 만무했다.
영국으로 탈출 중에 펭퐁에 잠시 들른 드골은 임종을 앞둔 어머니와 잠깐 만났고, 그대로 모자는 영원히 이별하게 되었다.
1940년 7월 16일, 결국 마리 드골은 숨을 거두었다.
비시 정부가 드골에게 탈영 및 외환이라는 죄목을 씌워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했기에,
드골은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기는커녕 장례식에도 갈 수 없었다.
드골이 평생 동안 저지른 불효 중 가장 크고 무거운 불효였다.
- 마이클 e 해스큐 저 "드골"에서
"나무가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이 모시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시지 않는구나"
-《한시외전(韓詩外傳)》
폴란드놈들은 월급도 안주나 - 시진핑김정은개새끼
드골 진짜 불쌍하네..
앗아아..
동생한테 카이저역할 씨불놈이네 이거ㅋㅋ
독일 카이저가 어때서ㅠㅠ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