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이새끼들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중국어문화학과에 재학 중인 왕수영(한국인임)은 지쳤단 듯이 표정을 찡그리며 동기들에 대해 투덜거렸다.
천안문 광장에 왔으니 탱크맨 재현을 하고 오겠다는 톡만 남기고 사라진 동기들 때문에 그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점점 짙어져갔다.
나와 내 동기들은 중국의 역사를 탐방한다는 명분 하에 중국으로 여행을 떠났으며, 오늘은 자금성을 구경하려던 계획이였으나…..
자금성을 구경하던 도중 친구들이 자금성 근처에 있는 천안문 광장을 보자 미친 듯이 ‘나는 베이징의 천안문을 사랑해’ 노래를 부르면서 달려나갔기 때문에 나는 벤치에 앉아 그들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였다.
‘아오 ㅅㅂ 몰라 애들이 알아서 찾아오겠지….난 배 째고 있으련다’
나는 친구들과 어떻게 다시 만날지 걱정하다가 결국 기다리다 지쳐 체념해버렸다.
‘에휴 또라이 새끼들 어제 밤새도록 술 먹었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기운이 나냐….’
어제 한숨도 못 자고 술을 먹어서 그런지, 벤치에 기대고 있으니 눈이 스르륵 감겨왔다.
그렇게 나는 천안문 광장 앞 벤치에 기대서 잠에 들어버렸다…..
“000…000!...왕수잉!!”
누군가가 내 이름과 비슷한 이름을 부르면서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나는 ‘아 친구새끼들이 나 찾아서 깨웠나보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눈을 떴다.
근데 눈을 떠보니 내 동기들은 온데간데 없고 흰 셔츠에 검은 슬랙스를 입은 처음 보는 남자가 나를 흔들며 깨우고 있었다.
그 남자는 나에게 말했다.
“왕수잉! 아무리 피곤하다고 해도 우리 대학생들을 잘 대변해주신 후야오방(胡耀邦) 선생님의 장례식에서 자고 있으면 되겠냐??”
나는 그 말을 듣자 왜 이 남자는 교수님께서 중국 현대사를 가르치며 나왔던 인물의 이름을 언급하는지 의아했으나, 내 의구심은 단번에 풀려버렸다.
주변을 보니 후야오방의 영정 사진이 걸려 있었고, 옆엔 덩샤오핑과 양상쿤의 모습이 보였고 내 주변애는 후야오방의 죽음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선단 위에는 천안문 사태 당시 학생들을 옹호한 걸로 알려진 ‘자오쯔앙’(趙修業) 공산당 총서기가 참담한 표정으로 추도문을 낭독하고 있었다.
"동지 여러분. 오늘 우리는 침통한 심정으로, 오랜 시련을 겪은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전사,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이자 정치가, 우리 군의 걸출한 공직자로서 장기간 당의 중요한 영도 직무를 담당한 탁월한 영도자인 후야오방 동지를 추모하는 바입니다."
나는 전공 서적에서나 보던 인물들이 내 앞에 있다는 것에 경악해서 굳어버렸지만, 나를 깨운 남자는 내가 아직 잠이 들 깨서 비몽사몽한 걸로 이해한 것 같다.
“너가 후야오방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고 지금까지 단식하느라 피곤한 건 이해하는데, 적어도 선생님 보내드릴 때에는 정신 차리고 있어야지…”
나는 내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어서 그 남자에게 물었다.
“아…미안… 근데 오늘이 며칠이지??”
“에구…이제 날짜 개념도 없구나…오늘은 4월 22일이잖아”
“년도는?”
“음? 년도까지 헷갈린다니…올해는 1989년이잖아”
그 말을 듣자 내 예감은 확신이 되었다.
‘시발? 지금 내가 천안문 사건의 원인 중 하나인 후야오방의 장례식을 체험하고 있다고???’
나는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도 나를 깨운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 남자를 보면 볼수록 어디선가 많이 본 적 있는 체형과 패션이었다.
내가 혼란스러워 하는 사이, 내 또래로 보이는 다른 남자애가 날 깨운 사람에게 말했다.
“야 왕웨이린, 넌 무슨 일이 있어도 후야오방 선생님의 뜻을 이어나갈꺼라고 결심했다고 한 거 진짜야?
그러자 그 남자가 답했다.
“응… 나는 후야오방 선생님의 뜻을 이어서 중국의 민주화를 위해 내 한 몸 다 바치기로 마음 먹었어.”
난 그들의 대화를 듣자 흰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고 탱크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서 있었던 한 사나이가 떠올랐다…
‘이 사람 설마 ‘탱크맨’이야..???’
릴레이 연재 함 해보자 ㄱㄱ
부풀어오른 탱크맨의 성기는 마치 백두산을 보는 것과 같았고, 나는 참을 수 없어 그의 바지를 내렸다. 나는 탱크맨의 음경을 쓰다듬기 시작하였고, 어느새 탱크맨의 팬티는 쿠퍼액으로 적셔졌다. (이렇게 하는거 맞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