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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테레지아의 많은 배려에도 불구하고 합스부르크령에서 의무교육의 전면적 시행은 이뤄지지 못했다.

당시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학교로 보내는 동안 그만큼 일손이 줄어든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다.

또한 이들은 자녀들의 등록금을 마련하거나 교복값을 낼 경제적 여력도 거의 없었다.


또한 교사들이나, 교사 역할을 대행해야 하는 주임 신부들이 교육, 시험, 검열 등의 업무를 전담해야 했는데

7년 전쟁으로 재정이 걸레짝이 된 제국정부는 그에 대한 보상을 제공할 경제적 능력이 없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예수회 교단의 재산을 교육개혁자금으로 활용해보려 했지만, 어려움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교사들의 처우가 실질적으론 개선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양국 화해차원에서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빌려온

오스트리아의 새 교육개혁 담당자, 저명한 교육자 펠비거의 건의에 따라 교사들의 사회적 위신을 올리기 위해

교사들의 부업 종사를 전면 금지시켰고, 이는 교사들의 강한 불만을 유발하였다.




-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 에서




??? : 아프니까 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