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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 거울의 방 창가에서, 붉은 제복 차림의 사나이들 한 무리가 잔뜩 긴장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역사상 가장 처절했던 전쟁의 영영 지울 수 없는 흉터로,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승리의 순간에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토록 소중한 것을 이루게 해준 이들이 마땅히 평화조약이 체결되는 자리에 참석해야 한다는 클레망소 수상의 강경한 요구 덕분이었다.


"그들에게는 마땅히 그 정도의 권리는 있소!"


3년 전, 현세에 아가리를 벌린 지옥 - 베르됭 전투가 그들의 얼굴가죽을 뜯어삼켰을 때,

그 때까지만 해도 전쟁의 결과는 한 치도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1919년 6월 28일 지금, 독일은 대전쟁에서 패했음을 엄숙히 자인했다.

일찌기 독일 제2제국의 출범을 베르사유에서 외쳤던 지 반세기도 못 되어,

이제 태양왕의 거울들은 호엔촐레른 왕조의 영광이 아닌 완전한 몰락을 비추고 있었다.

태양이 어느 때보다 강렬히 빛나며 베르사유를 비추는 가운데, 어느 기자는 이렇게 썼다.


"일찌기 베르사유의 정원이 이렇게까지 아름답게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후 2시 - 연합국 외교관들과 초대된 귀빈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거대한 회랑을 가득 메웠다.

원래는 남자들만 조인식에 참가할 예정이었지만, 역대 대통령들보다 여권에 관심이 많은 미국 대통령 윌슨의 주장으로

미합중국 영부인과 영애 및 프랑스 귀부인들도 참석하게 되었다. 

단조로운 프록코트들과 검은 모닝코트들 속에서, 아랍 헤자즈 왕조 대표단의 차림새가 때아닌 오리엔탈리즘 판타지를 더해주었다.



시시각각 관객들의 물결이 더욱 서둘러 밀려들었다.

가브리엘 퓌오와 루크놀, 두 젊은 장교들이 필사적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귀빈들에게 제발 앉아 계시라고 소리쳤다.

그 유럽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후세들의 상상과는 달리 장중한 엄숙함이라곤 약에 쓰려 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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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25분, 프랑스 공화국 수상 "호랑이" 클레망소가 마차에서 내렸다.

사람들이 미처 환호와 갈채를 보내기도 전에 그는 이미 성큼성큼 걸어 지나쳤다.

그는 네모난 깃이 달린 두툼한 검정색 프록코트 차림에 회색 장갑을 끼고 있었다.

모르닥 장군과 비서관 조르주 망델이 그의 걸음에 발맞추어 따라갔다.



웅성거리는 속삭임이 이어지는 가운데 "승리의 아버지" 가 회랑으로 들어왔다.

그는 아무도 개의치 않고, 가장 먼저 상이용사들에게 직접 다가갔다.

그의 눈이 유난히 빛났다.

그는 한 명 한 명씩 손을 잡아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고맙네, 젊은이들, 자네들 덕분에 우리가 오늘 여기 있게 된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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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식의 진행자, 윌리엄 마틴이 클레망소를 그의 자리로 안내했다.

호랑이 클레망소의 오른쪽에는 윌슨이, 왼쪽에는 대영제국 수상 로이드 조지가 앉았다.



천장에 걸린 르브룅 프랑스 대통령의 프레스코화는 태양왕의 영광이 프랑스에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그림 속에서 메마른 나무에 앉은 앙상한 독일 제2제국 독수리가 절망적으로 울부짖으며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림에 새겨진 라신과 부알로의 글이 프랑스군의 영광을 찬양했다.


"국왕께서 땅과 바다를 든든하게 지켜주시도다.

적들의 앞에서 라인 강을 건너

왕은 13일도 채 안 되어 마스트리히트를 정복하셨도다.

두 번째로 정복된 프랑슈콩테..."


일찌기 거울의 방의 306개의 거울들은 16세의 매력적인 광채를 발하던 마리 아투아네트의 금발머리를 비추었었다.

그곳에서 프랭클린이 아메리카의 독립을 승인하는 조약에 서명했었다.

그곳에서 1789년에 "삼부회 신사들"이 행진했다.

1805년 1월 3일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황이 그곳을 방문해, 비오 7세가 십자가를 앞세우고 창가 테라스에서 모인 군중들을 축복했다.

그곳에서 나폴레옹 3세가 빅토리아 왕비를 맞았다.

또, 그곳에서 독일 제2제국이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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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는 그곳에서 클레망소가 승리를 거두었다.

회랑 끝 오른쪽에서 장교 한 사람이 신호를 보내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서서히 열리는 문에 고정되었다.

바타이유 살롱의 문가에서 검은 옷을 입은 다섯 남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신정부 외무장관, 헤르만 뮐러를 비롯한 베를린의 대표단이었다.

차가운 침묵 속에서 패자들은 창문 옆, 바로 얼굴이 일그러진 상이용사들 앞에 마련된 그들의 자리에 앉았다.

클레망소는 단호한, 그러나 평소보다 차분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자, 시작하겠습니다."


호랑이 클레망소는 조약의 형식에 대해 간략하게 몇 마디 이야기했다.

두 명의 창백해진 독일인들이 먼저 양피지가 놓인 작은 테이블로 다가와, 한 마디 말도 없이 서명했다.

그 다음에는 윌슨 대통령이 활짝 웃으면서 서명했다.

장장 30여 분 동안 서명 행렬이 계속된 끝에, 누군가가 불렀다.


"협상 의장님."


마침내 클레망소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프랑스 제3공화국을 대표해 서명했다.


호랑이가 조약이 맺어졌음을 선포한 때는 4시였다. 마침내 평화가 유럽에 찾아왔다.

그러자 햇빛이 넘실대는 공원의 대형 분수에서 물이 솟구쳐올랐다. 루이 14세의 분수였다. 축포가 의기양양하게 울려퍼졌다.


베르사유의 역사는 그렇게 절정에 달했다.




- 알랭 드코 저 "화려함의 역사, 베르사유" 에서





크...클레망소 영감님은 진짜 불뽕 지대로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