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전노장 안할트-데사우의 레오폴트 공은 1718년 프로이센군에 머스킷용 나무 꽂을대보다 더 진보한 쇠 꽂을대를 최초로 도입했을 뿐더러,
그보다 더욱 중요한 전술적 의미를 갖는 또다른 군사훈련상의 혁신도 가져왔다.
1730년대 초에 프로이센군에 보조를 맞춘 행진을 도입한 것이다.
프로이센군 병사들은 이제 북소리에 따라 동료들과 박자를 맞추어 행진함으로서 한몸처럼 전진할 수 있게 되었다.
1741년,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의 신호탄이었던 몰비츠 전투에 참전했던 한 오스트리아군 장교가
"무쇠 거푸집에서 찍어낸 듯" 완벽한 일직선을 이루고 전진해오는 프로이센군 전열을 보고
"내 평생 그런 광경은 정말 처음 봤다" 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프로이센군은 당시 전유럽 제일의 규율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프로이센군의 이러한 규율은, 심지어 당시 기준으로도 끔찍하게 잔인할 정도의 체벌로 유지된 것이었다.
프로이센군을 무시무시한 전쟁기계로 재탄생시켜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물려준 안할트-데사우의 레오폴트 공이
이제 보병은 3열이나 4열이 아니라 2열로 정렬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만큼 화력을 강조했음에도
아직 전쟁을 책으로만 배웠던 풋내기 시절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보병이 적에게 돌격해 일대일 백병전을 벌일 수 있는 능력을 더 중시했다.
이는 총검과 근접전의 가치를 강조하던 당대의 군사적 사고 경향을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보병은 방어할 때는 화력에, 공격할 때는 총검에 의지한다.
우리 병사들은 공격에 전력을 쏟아야 하며, 이유없이 공세를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 프리드리히 대왕, '군사 지침' 中]
그러나 대왕이 몇 번 전쟁을 겪어보고 나니, 레오폴트 공이 애써 개량해놓은 무기와 사격교리, 병사들의 사격술을 놔두고
적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미련한 짓임은 금방 분명해졌다.
곧 프리드리히 대왕은 병사들이 총검돌격을 하기 전에 근거리에서 일제 사격을 먼저 하도록 허용했고,
1757년 로이텐 전투에 이르러서는 프로이센군 병사들은 군장에 들고 나간 60발을 전부 소진해버려서
탄약을 재보급받아야 할 정도로 화력에 크게 의존하게 되었다.
- 크리스터 외르겐센 외 저 "근대 전쟁의 탄생",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 에서
저 당시에 60발 발사했으면.... ㄷㄷㄷ
누구보다 빠따질을 혐오했지만 자국 장병들에겐 빠따질을 아끼지 않으신...
팩트) 감자대왕은 군대에 끌려온 개돼지들은 "국민"으로 안 쳤다. 말로 잘 다스려야 하는 국민은 군복무대신 세금내는 상공인들이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국군 2열이 프로이센군에 영향 받은건가? 암튼 실전은 최고의 스승인가 봄
어느정도 였길래 당시 기준으로도 잔인한 체벌이었음?
잘못한 병사가 있으면 동료 병사들한테 회초리를 주고 그사이를 지나가면서 맞았다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