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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4월 초 - 무엇으로도 멈출 수 없는 복수의 화신과 같은 붉은군대가

어설프게 저항을 시도하는 모든 것들을 전차 무한궤도로 짓뭉개며 오데르-나이세 강을 이제 목전에 두었다.

공포 속에서 베를린 시민들은 큰 의미는 없는 방어준비에 내몰렸다.

국민돌격대 대원들은 연합군 공군의 극딜로 온 거리를 뒤덮은 벽돌조각을 긁어모아 바리케이트를 쳤고

부녀자들은 권총사격 훈련을 받는 한편, 수돗물이 끊길 것에 대비해 주전자로 물을 끓여 물통에 모았다.

전국노동봉사단의 십대 청소년들은 한꺼번에 현역으로 입대당했는데, 전선으로 내몰리기 전에 "죽음에 익숙해져야 한다" 는 이유로

탈영병들과, 탈영병 누명을 쓴 병사들이 그라이프코만도에게 교수형당하는 끔찍한 광경을 억지로 보아야만 했다.



4월 14일, 히틀러는 동부전선의 독일군 장병들에게 총통 일일명령을 하달했다.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자는 무조건 독일민족에 대한 반역자로 간주될 것이라는 협박이야 별로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이번 명령에서 히틀러는 1683년 오스만제국이 빈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유럽 신성동맹군에게 대패했던 역사를 상기시키며

"이번에는 볼셰비키들이 그 옛날 튀르크족의 운명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라고 허풍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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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히틀러는 2세기 반 전에 빈을 구원했던 주력군이 폴란드 윙드 후사르들이었다는 사실은 애써 무시했거니와,

애초에 그 빈에는 붉은군대의 적기가 꽃힌 지가 이미 사흘 전이라는 현실에서도 눈을 돌리고 있었다.

괴벨스는 "베를린은 여전히 독일이고, 빈은 다시 독일이 되리라!" 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놓았지만

이제는 독일인들이 얼마나 지치고 절망했는지, 천재 선전성장관의 악마의 혓바닥도 더는 먹히지 않는 눈치였다.




- 앤터니 비버 저 "제2차 세계대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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