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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의 메이지 헌법이 독일 제2제국 헌법보다도 더 전제적인, 애초에 민주주의의 구색을 갖추기 위한 것에 불과하긴 했지만

심지어 그 점을 감안해도 일본 여성들에 대한 취급은 너무했다 할 만큼 심한 것이었다.

일본 여자들은 대놓고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로 취급받아, 경제적, 법률적, 정치적 권리가 사실상 없었다.

소녀들은 6학년 이후에는 여학교에 가야만 했지만, 교과과정이 성별에 따라 차별화되어 여학교 교과서의 수준이 낮았던 데다

애초에 여학교 자체가 별로 없었다.

간통은 여자들에게는 금기이나 남자들에게는 합법이었다.



도조 패거리와 군국주의 잔당들이 일단 표면적으로는 자유선거 결과 새로운 일본국 의회에서 일소된 후,

맥아더는 466개의 의석 중 38명의 여성의원들이 포함되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은 결과였다고 평했다.

사실 이러한 결과에는 여성들의 오해도 상당 부분 작용했는데, 난생 처음으로 참정권을 행사하는 많은 여성들이

자기들은 당연히 남자 후보를 찍을 수 없고 여자 후보를 별개로 선출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했던 것이다.



이혼과 간통에 관한 문제는 새 의회가 제일 먼저 다룬 안건 가운데 하나였다.

보르네오 전선에서 귀환한 일본군 남편이 원주민 현지처와 그 사이에서 낳은 두 아이들을 대놓고 데려왔는데도

부인이 취할 수 있는 아무런 법적 조치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원수를 결정적으로 빡돌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쇼군의 요구는 간단했다. 간통을 저지른 남녀 쌍방을 모두 처벌할 것인가? 아니면 모두 처벌하지 않을 것인가? 양자택일하라.

의원들은 일본사상 사실상 최초로 선거구민들의 여론을 조사하고, 이를 반영해 간통죄를 철폐했다.



계약결혼이 사라졌다. 축첩도 사라졌다. 혼인과 이혼에 관한 법률은 개정되었다.

지방에서는 여성들이 공직에 선출되었고, 머지않아 1만 4천 명의 여자들이 지방공무원이 되었다.

도쿄에서는 2천 명의 여성들이 경찰 제복을 입었다.

중고등학교가 남녀공학으로 변한 뒤, 맥아더는 매일 캐딜락을 타고 GHQ로 출퇴근하는 길목에 있는 동네 운동장에서

반바지를 입은 소녀들이 야구경기를 벌여, 안타를 때리고 높이 솟은 공을 잡으려고 쫓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해하곤 했다.



많은 이들이 평생 동안 마초 남성우월주의자였던 맥아더가 일본에서는 강력한 남녀평등 정책을 폈다는 것에 의아해하곤 한다.

그러나 하나씩 짚어보면, 그의 행동에 의외로 별로 모순은 없었다.

그도 한 어머니의 아들일 뿐더러, 반평생 동안 어머니의 치맛바람에 많은 영향을 받았었다.

또한 나쁜 의미뿐만 아니라 좋은 의미로도 일종의 "귀족" 출신으로서, 맥아더는 여성들이 남자보다는 부족할지라도

그 때문에 여성들을 천대하는 자는 신사라 자처할 자격이 없다고 믿었다.

심지어 그는 여성들을 억압하는 것이 넓은 의미에서 보면 신성모독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주께서 여자에게도 남자와 같은 영혼을 주신 이상,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맥아더 나름의 종교관이었던 것이다.




- "아메리칸 시저 : 맥아더 평전" 2권에서




주인공이 이고깽이 아니라 60대 틀딱이라는 것만 빼면 흔한 이세계물 클리셰 전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