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문두석린 투구
녹피용봉문두정투구- 옆면 공작새 장식
이마가리개 옥장식 엄청큼 - 옆면 공작새장식
용봉문, 벨벳재질, 옥
용봉문, 은입사, 옥, 공작새
용봉문, 벨벳, 옥
용봉문 붉은 융
주칠 가죽에 금입사, 비단
은입사투구
은입사투구2
봉황문두석린 투구
녹피용봉문두정투구- 옆면 공작새 장식
이마가리개 옥장식 엄청큼 - 옆면 공작새장식
용봉문, 벨벳재질, 옥
용봉문, 은입사, 옥, 공작새
용봉문, 벨벳, 옥
용봉문 붉은 융
주칠 가죽에 금입사, 비단
은입사투구
은입사투구2
마지막껀 실전용임? - 시진핑김정은개새끼
밑에 3개는 실전용인듯
투구에 만자를 넣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조선은 억불정책이었다는데 특이하네요. 그냥 고려시대 전통인가??ㅎ
만자나 만자문 넣는것은 종교적인것보단 부귀나 장수 목적인듯
몇백년에 봤으면 좀더 멋졌겠지?
저거쓰고 거리나가면 백성들 까무러질듯
저거 쓰면 전투에 안불편한가
끈으로 조여서 괜찮을듯
근데 누가 용봉 문양 이런거는 왕들이 쓰는거라 일반 군인들은 못쓴다 고증 오류다 이러는걸 봤는데 좀 의아한게 왕이 하사했으면 써도 되는거 아니야 ? 이런 경우에는 그냥 일반인이 제작해서 쓰면 불경죄인지는 모르겠지만 용봉처럼 왕의 상징을 의류, 인테리어, 장신구 등에 민간이 쓰는데 제한이 있음 ?
근데 일반인이 저런걸 만들 여력이 있었을까? 은입사 금입사 옥세공 할려면 재료도 있어야되고 만들려면 어느정도 숙련공이나 장인이 만들어야 하는데 그정도면 역의 의무때문에 관청에서 만들어야되는데 당연히 허가된거 아닐까?
갓 같은 것도 신분에 따라 통제되던 전근대 전제군주정 국가에서 당연히 왕의 상징을 함부로 쓰면 모가지가 날아가지
당상관 이상 무관들은 용이나 봉황문양 투구 많이씀
다른 복식은 그런거같기도한데 갑주는 용이나 봉황 장식이 상당히 많음 갑주 가격이 상당한데 게다가 장식이 최고 사치품들로 되어있으니 민가에선 제작을 못하고 나라에 명령받은 장인 제작 일반 군인 기준이 무슨말인진 모르겠지만 병사말하는거면 두정갑 조차 못입음 글 하단에 있는 사진들은 하급~중급 무관들이 쓴거 같고 정3품 이상부터는 용봉문 투구를 쓴것을 볼 수 있고 용봉문 중에서도 옥장식 달려있는 투구들은 상당한 고위직이거나 왕실투구라고 볼 수 있을듯
조선군 병력들 대다수의 경제력이 천차만별이라 정말 가난한 병사는 지갑조차 입기 힘들었던데 비해 의병들 중에서도 부유한 사람들은 갑사도 아닌데 두정갑 입기도 했음. 케바케임
의병장들 중에는 두정갑이나 환도 유물이 있더라구요
조선시대 갑주들이 몽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는데... 고려 초중반때는 기록이 없기는 하지만 송나라 갑주랑 비슷했을 거라고 하더라
여러 그림이나 장식들만봐도 송나라랑 비슷한점이 많은데 고려 후기로 갈수록 몽골영향을 많이 받았을듯 두정갑, 쇄자갑, 경번갑, 원주, 첨주투구 등 조선 초기랑 유사한 점이 많았을듯
조선의 투구도 아름답지요!!!!!!
예술성이 좋지요
지금보니까 피켈하우베도 생각나는듯
고종 투구가 그렇죠
하켄크로이츠 계속 보이네
하악하악 후욱후욱
존나화려하네..
제작하기가 힘들어 사극에서 보기가 쉽지않죠 만들더라도 형태나 흉내내는정도
밑에서 4번째는 용발톱이 3개인 걸 보면 무관이 썼을 거 같고, 첫번째 두석린 투구도 봉황만 있는 걸 보면 무관이 썼던 거 같음. 나머지 용발톱 5개짜린 대원수급 즉, 왕이 쓰거나 해외 국왕 선물용 같음. 밑에 3개는 실전용 또는 실전+의장용 같음. 붉은색 투구는 금박 장식에 비단 문양도 화려한데 드림에 갑찰을 달아놨다함.
다만 피부에 닿지 않게 안감을 한번 더 덮어서 갑찰이 보이진 않음.
정3품과 원수자 투구들은 삼조룡이 많더라구요 금군별장과 금위영 소속이 적힌 갑주에도 사조룡과 오조룡이 보이기도 합니다 친위군이라 오조룡을 넣었을 수도 있고요 선물로 줬을수도 있구요 그중에서도 커다란 옥장식과 공작날개 달려있는것은 왕이나 왕실투구로 많이 추측들을 하는듯
갑찰은 기본적으로 달리는 거임. 드림에 박힌 징은 장식용이 아님. 갑찰 고정용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