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느낀점 1.

훈련소에서 느꼈다 - 땅과 하늘은 군인의 친구입니다.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성장기인 청소년때나 성숙한 사회인이 되면 더이상 주변을 살펴보지 않습니다. 잠을 채우지 못하고 깨지는듯한 알람소리에 맞춰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답답한 교통의 숲을 지나 일상의 시동을 겁니다. 누군가는 학업을, 누군가는 회사일을, 또 누군가는 땡볕 아래에서 땀 흘리며 작업하지요.

매일, 매일을요. 변화없이 진행됩니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일상은 조금씩 변화합니다. 하지만 그 변화는 둔중합니다.

느린 변화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찢어져 버려지는 지난달 달력처럼.


어느순간부터 더이상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일부러 그랬다기 보다는 짓눌러오는 일상의 무료함이 타성이 되어 그랬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은 핸드폰을 응시했고, 요금을 계산할때는 앞사람의 신발 밑창을 응시했으며, 버스가 가는 동안은 다시 핸드폰을 응시했습니다.

나는 매일 몸은 움직이지만 사고는 정지해버렸구나.

어느날 깨달았습니다.


그랬던 저도 군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입대 당시의 느낌은 솔직히 그저 그랬습니다.

막연한 두려움도 있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입대하는구나, 그렇구나...'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습니다. 한마디로 현실감이 없었지요. 이런 감각은 사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을때에도 계속 잔재해 있었습니다.

피복을 지급받고, 제식훈련을 받고, 사격을 하고... 몸은 힘들었지만 여전히 이전과 같았습니다.

앞사람의 밑창을 보고 같은 동작을 하고 다시 나를 본다. 익숙한 일이었습니다.

군대도 역시 사람 사는곳이려니. 이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런 감각이 끝났던 것은 마지막 행군 때였습니다.

정확히는 '훈련소에서' 마지막 행군때일려나요. 이전 짧은 거리 행군과는 다른 (15,30?KM) 40KM 행군이었습니다. 운동 한번 안했던 몸이라서 12시간 행군은 많이 힘들었습니다.

평지를 걸을때는 군장의 어깨끈이 살을 벨 것 처럼 파고드는 것 같았고, 경사로를 오르면 다리가 아팠습니다.

대열에서 농담 몇마디 건네던 주위 사람들도 점차 조용해졌습니다. 침묵. 모두가 입을 다물고 앞사람의 밑창만을 바라보고 기계적으로 발을 내딛었습니다. 해도 우리의 침묵에 동조하는 것처럼 점차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사위가 적막해지고 우리는 계속 걸었습니다.

반환점을 돌은걸보니 이제 행군도 막바지였습니다. 

얼마지나지 않아 호루라기 소리와(호루라기를 불었는지는 애매하네요.) 함께 휴식시간이라고 외치는 조교와 교관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리는 통제에 따라 공터에 드러누워 휴식을 취했습니다.

군장의 어깨끈을 빼어내도 됐지만, 그럴 여력도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대화를 하고 누군가는 잠을 잤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않고 그저 하늘을 봤습니다. 하늘은 여느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평소의 석양과 같이, 붉고 부드러운 빛무리 아래에 구름들이 널지막히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것들은 유유히 바람에 실려 어딘지모를 곳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아름다웠던지요. 일상에 존재하고 있던 석양은 그렇게 아름다웠던 것이었습니다.


하늘에서 구름을 옮기던 바람이 저에게 다가왔을때, 저는 이전과는 다른 기분을 맛보았습니다.

단순히 말하자면 해방감이랄까요. 그랬습니다. 그때의 저는 자유롭다고 말하자면 뭔가 자아도취적인 말인것 같아 부끄럽지만, 진실된 표현으로 그때의 가슴속에 울렁거리던 기분은 분명 자유였습니다.

그것은 아이러니한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여전히 행군의 대열 아래 오와 열을 맞춰 군장에 등을 기대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뿐이었으니까요. 여전히 훈련은 진행중이었고 저는 대열을 지켜야 했으며 약속된 시간만큼만 휴식 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땀에 젖은 상태로 앉으니 엉덩이는 축축했고 군장에 결속된 수통은 허리를 짓눌러 아련히 아파왔습니다. 심지어 평소 질색하던 다리 많이 달린 작은 벌레도 몇몇 제 손등을 타고 올라 왔습니다. 하지만 괜찮았습니다. 그런 사소한 모든것들을 뒤로할 만큼, 석양이 아름다웠습니다.

모든게 제한되는 군대라는 조직 안에서 간단히 고개를 올리는것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다는 놀라움.

일상에서 외면했던 풍경에 대한 아쉬움. 어떤 화가도 완벽히 재현해 낼 수 없는 것을 한가로이 감상하고 있다는 얄팍한 감정까지.

그때의 감동은 어떻게도 표현할 수가 없네요.


그렇지만 그런 감동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서글픔이 몰려왔습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석양은, 일상에서 보아오던 석양과는 다르다는것 알았기 때문입니다.

일어서서 살짝 시선을 돌려 바라보는 일상의 하늘과, 온몸을 땅에 맡기고 풀린 눈으로 본 하늘은 다른 것일테니까요. 또한 다 큰 어른이라도 소로든 대로든 어디에서나 누워버릴 수 있는 군대와 달리 일상에서 나는 이렇게 똑바르게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이런 의문도 곧 서글픔으로 치환돼 저를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감동을 잊지 않게 지금 실컷 감상해두자, 그렇게 생각한 저는 포근히 감싸오는 땅에 몸을 맡기고, 두 눈은 하늘을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쉽게 잊지 않게.

그때의 땅과 하늘은 군인의 친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