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dcinside.com/board/war/1961647
이 글 보고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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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2군단의 평양 레이스 급발진이 북진 통일 망쳤단 주장이 있었고 내가 거기에 반론을 붙였는데 (아마도) 그때 그 주장하던 아해가 이번엔 핀트를 조금 틀어 얘기하고 있더라? 해서 기왕지사 내 이전 글의 오류도 따질 겸 그 부분을 따지고 가겠음.
대통령의 평양 선제 점령 밀명이 10월 14일? ☞ 아님. 10월 17일임.
10월 17일에는 미 1기병사단이 사리원을 탈환하고 격렬히 저항하던 북한군도 분쇄되면서 평양 레이스는 막바지에 접어들었음. 그런데 머한의 대통령 박사님께서 돌아가는 꼴을 보자니 기계화 비율이 높은 미군 1기병사단이 평양에 먼저 들어갈 것 같았단 말임.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국군이 평양에 먼저 들어가야 한다면서 2군단에게 평양 공략의 밀명을 내렸음.
이건 내가 전에 쓴 글에서도 실수한 부분임. 14일에는 오히려 유엔군과 국군 1개 사단만 평양으로 진격하기로 결정된 상태였음. 이 소식을 접한 8사단은 아니 씨이발! 외쳐야 했고.
물론 혹자는 8사단이 쌍욕 박는 그 순간에도 2군단은 분명 평양 레이스를 하고 있었다, 라고 반론할 거임. 그건 사실임. 평양~원산 8번 국도를 탄 이유가 그거였을테니. 근데 그러한 작전이 최초로 입안된 건 14일도 더 전인 게 문제였걸랑?
거두절미하고 결론부터 말하면 2군단은 북진 시작할 때부터 군단이고 육본이고 미 8군이고 싹 사이좋게 대가리에 좆박은 상태였다고 봐도 할 말이 없음. 38선 넘어갈 때(10월 8일)부터 상황 전개 보면...
2군단이 10월 5일부터 8일까지 차례로 38선 중동부전선 돌파. 적 저항은 금새 분쇄됨. ☞ 육본, "진격 순조롭네? 그럼 빅픽쳐 굴려본다!"
☞ 육본 작명 211호 하달(10월 8일): 2군단은 원산으로 진격해서 거기서 국군 1군단에게 임무 넘기고 원산을 경비하며 대기하다가, 명령이 떨어지면 함흥, 흥남으로 진격하기로 했음. 사실상 1군단과 임무 교대하란 얘기. 대신 1군단이 서쪽으로 진격해 미 1군단과 합류할 계획....
말인 즉, 2군단은 중동부전선에서 원산 방향(동쪽)으로 진격로를 틀고 1군단은 평양 방향(서쪽)으로 진격로를 틀어버리겠단... 아니 이건 초월 공격인 거냐 교차 공격인 거냐?
당연히 이렇게 군단을 교체해버리면 서로 혼란에 미쳐 날 뛸 게 분명했으니 육본은 그날 20시에 다시 수정 작명을 하달함.
☞ 육본 작명 212호: 임무 교대 취소. 2군단은 원산 '경유'해서 양덕-장림리-강동 축선(평양 동쪽)을 따라, 즉 서쪽으로 공격하여 적 격멸하고 미 1군단과 합류하되 교통 요충지 등에 병력 잔류시켜 놔라.
이 작전명령에선 왜 원산에서 평양으로 횡단공격이 나오는지 알 수 있음. 언급된 축선은 평양~원산을 연결하는 8번 국도임. 도로 태워서 신속하게 공격을 펼친다는 구상으로 읽을 수 있음. 단 이때는 평양을 공격하는 대신 남북으로 달려들(남쪽의 잔당과 북쪽의 잔존한) 적을 차단할 생각이었음. 대신 박정인 장군처럼 고향(원산)을 지척에 두고 졸지에 서쪽으로 가게 된 비극도 있다만... 어쨌든.
근데 이게 또 바뀜. 10월 10일 원산이 1군단에 의해 탈환되자 미 8군과 협의해서 수정된 작전명령이 하달됨. 사흘 동안 내용이 왔다갔다 했는데 이번엔 무슨 씽크빅이 나올꼬... 보면,
☞ 육본 작명 212호(수정)(10월 10일): 평양 쪽으로 공격하면서 적 격멸시켜라. 필요시 1군단 작전지역 통과해도 된다.
드디어 평양을 직접 언급하는 작전명령이 등장함. 아마 2군단은 쾌재를 불렀을 거임. 6사단은 원산을 경유해서 8번 국도를 타면 되고, 38선을 넘어 철원과 평강을 지나 북진하던 8사단은 철원 서북방으로 나아가 이천-신계로 평양까지 가면 됐거든.
그럼 7사단은?
그 사이에 2군단 예하에서 빠져서 육본 예비로 전환, 평강 잔적 소탕하러 감. 7사단의 북진? 당시엔 그딴 거 없다.
....였으면 좋겠는데 14일에 또 계획이 바뀜. 몇 번째 이 지랄이 반복되는지...
☞ 10월 14일 결정 : 평양에는 유엔군, 국군 1개 사단만 들어가기로 했으니 8사단은 평양 못감. 그리고 국군 7사단은 다시 2군단에 배속.
이에 따라 7, 8사단은 그대로 북진하게 되었고 6사단만 8번 국도 타고 가면 되겠지만... 8사단은 사단 지침을 바꾸더니 곡산-양덕-성천-강동 선으로 동북쪽에서 평양을 공격하기로 함. 이 루트가 어디냐고?
바로 6사단이 탄 8번 국도.... 아니 이성가 장군님? 거기서 왜 끼어드셔요?
링크한 글에서도 언급된 6사단과 8사단의 충돌은 바로 이 배경에서 비롯되었음. 대통령이 밀명을 내려서? 육본이 그러라고 해서? 혹 박정인 장군 증언대로 2군단 사령부가 뜬금없이 양덕 먼저 따가는 놈이 8번 국도 쓰라고 바람 잡았을 수도 있는데 일단 6.25전쟁사에서는 이성가 장군이 8번 국도에 끼어든 것으로 서술하고 있음. 8사단의 목표는 평양을 따는 게 아니라 평양 공격에 참가하는 정도일 뿐이고. 참고로 세부적인 걸 알 수 있을 2군단 작전명령서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임. (어쩌면 청천강에서 싹 날렸을 수도 있고) 단 8사단 작전명령서가 남아있으니 나중에 시간 나면 올리겠음.
여하간에 서로 꼬이고 또 꼬일 즈음 또 또 또 작전명령이 새로 내려옴. 양덕을 점령하기 전인 10월 17일, 대통령 밀명에 의해 작성된 육본 작명 218호였음.
☞ 육본 작명 218호: 2군단 싹 다 평양으로 가라! 아 근데 6사단은 북진해라.
2군단 전체가 육본 작명 218호에 의해 평양 레이스에 날뛰었다는 혹자의 주장과 달리 상황을 복기해보면 일단 애써 원산을 경유, 동서를 횡단한 6사단은 최종적으로 평양 공격에서 탈락했음. 육본 작명 218호는 성천을 거쳐 안주를 공격하라고 했기 때문.
그리고 8번 국도에 6사단 따라 탄 8사단은 평양 공격에 참가할 수는 있었으나 이미 배배 꼬인 진격 상황에서 평양에 갈 수는 없었음. 기여라고는 평양을 동북방에서 포위한 역할? 이건 하기에 따라 중요성이 있었다고 보는데 후술할테니 생략.
그러니 2군단이 평양에 던져 넣을 부대라곤 국군 1사단이 지나간 율리란 곳까지 어찌저찌 따라 북진한 7사단 8연대 뿐이었음. 결국 평양에 진입한 건 2군단 중 그들 뿐이었고.
정리하면 2군단이 대통령 밀명 받아서 평양 레이스 끼는 바람에 중부전선 빵꾸냈다고 하기엔 2군단의 북진 작전은 이미 좆됐고, if 돌린다고 해서 중공군 개입 차단은 어불성설임.
혹 처음부터 중부전선만 밀고 올라가는 if를 제기할 수 있는데 일단 예전에 내가 쓴 글에서 지적했듯 당시 미 10군단의 원산상륙작전 덕분에 미 8군까지 보급이 간당간당해진 상황에서 국군 2군단 혼자 한만국경까지 쾌진격한다는 건 어렵고, 설사 그렇게 한들 38선 경비도 4개 사단이 하다가 뚫린 걸 3개 사단으로(이것도 넉넉하게 봐줘서 그렇지 북진작전 중 상당기간 2군단은 7사단을 뺏긴 상태라 2개 사단으로만 작전한 거라 봐야 함) 한만국경 통제하며 각지에서 이뤄질 중공군 도강을 저지하는 건 불가능함. 각개격파나 안 당하면 기적이지.
당시에 난맥이던 작전지휘는 군에서 발간한 6.25전쟁사에서 지적하는데 (이전 버전들보다 점잖게 따지는 느낌의 이 공간사에서)돌려 까긴 해도 요약하면 무지성 플레이임. 작전통제 및 단계화를 고려하지 않고 목표도 수시로 변경되었으며 적 차단 및 격멸을 통한 전과확대가 아닌 지역확보 개념으로 싸웠다고 지적하고 있음. 미 10군단의 문제도 지적하고 있으나 원산상륙작전 문제를 언급한 것이니 2군단은 혹평을 받은 셈. 다만 앞서 논했듯이 2군단도 상급 지휘부의 괴상한 작전지도에 휘말린 셈이니 2군단을 트롤이라고 까려면 그 작전명령를 보고도 ㅇㅋ싸인 준 미 8군도 너네 뭐했냐? 소리가 안 나올 수 없음. 아 근데 얘네도 사리원 걸고 평양 입성빵 걸다가 1개 사단 유휴전투력으로 만들었고 지들도 도로 먼저 쓰겠다고 총질했지 참...
그리고 그 2군단 트롤링 글 쓴 애는 자꾸 한만국경 조기 선점을 논하는데 6.25전쟁사의 평가는 북진작전이 추격을 하느라 놓친 게 크다고 지적함. 말인 즉, 신속하게 진격했어야 됐고(통한 결의 등 절차적 정당성 대기하다 시간 끈 것을 지적), 적이 후퇴하기 전에 전선 고착 및 퇴로를 막아 적군을 끝장냈어야 하는데 추격 부대가 포위 부대보다 먼저 치고 나가니 결국 밀어내기 싸움한 것밖에 더 되지 않냐는 것. 그러면서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의 전투력 배치도 6:5인데 서부전선에 주공 모았어야 했다고 주장함. 예비대가 많을 수록 던질 수도 많으니까. 물론 이것도 미 10군단이 유휴전투력이 됐으니 걍 사이좋게 좆박은 상황이겠고... 미 1군단도 사단 하나 유휴전투력 만든 상황이었지만...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2군단도 걍 미 8군에 넣고 조기에 평양 북방 기동 때려박았어야 한다고 봄. 8사단이 좀 더 일찍 평양 동북방을 공략했으면 그 역할을 노려봤을 수도 있지 않았나 싶다.
이 글 보고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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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2군단의 평양 레이스 급발진이 북진 통일 망쳤단 주장이 있었고 내가 거기에 반론을 붙였는데 (아마도) 그때 그 주장하던 아해가 이번엔 핀트를 조금 틀어 얘기하고 있더라? 해서 기왕지사 내 이전 글의 오류도 따질 겸 그 부분을 따지고 가겠음.
대통령의 평양 선제 점령 밀명이 10월 14일? ☞ 아님. 10월 17일임.
10월 17일에는 미 1기병사단이 사리원을 탈환하고 격렬히 저항하던 북한군도 분쇄되면서 평양 레이스는 막바지에 접어들었음. 그런데 머한의 대통령 박사님께서 돌아가는 꼴을 보자니 기계화 비율이 높은 미군 1기병사단이 평양에 먼저 들어갈 것 같았단 말임.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국군이 평양에 먼저 들어가야 한다면서 2군단에게 평양 공략의 밀명을 내렸음.
이건 내가 전에 쓴 글에서도 실수한 부분임. 14일에는 오히려 유엔군과 국군 1개 사단만 평양으로 진격하기로 결정된 상태였음. 이 소식을 접한 8사단은 아니 씨이발! 외쳐야 했고.
물론 혹자는 8사단이 쌍욕 박는 그 순간에도 2군단은 분명 평양 레이스를 하고 있었다, 라고 반론할 거임. 그건 사실임. 평양~원산 8번 국도를 탄 이유가 그거였을테니. 근데 그러한 작전이 최초로 입안된 건 14일도 더 전인 게 문제였걸랑?
거두절미하고 결론부터 말하면 2군단은 북진 시작할 때부터 군단이고 육본이고 미 8군이고 싹 사이좋게 대가리에 좆박은 상태였다고 봐도 할 말이 없음. 38선 넘어갈 때(10월 8일)부터 상황 전개 보면...
2군단이 10월 5일부터 8일까지 차례로 38선 중동부전선 돌파. 적 저항은 금새 분쇄됨. ☞ 육본, "진격 순조롭네? 그럼 빅픽쳐 굴려본다!"
☞ 육본 작명 211호 하달(10월 8일): 2군단은 원산으로 진격해서 거기서 국군 1군단에게 임무 넘기고 원산을 경비하며 대기하다가, 명령이 떨어지면 함흥, 흥남으로 진격하기로 했음. 사실상 1군단과 임무 교대하란 얘기. 대신 1군단이 서쪽으로 진격해 미 1군단과 합류할 계획....
말인 즉, 2군단은 중동부전선에서 원산 방향(동쪽)으로 진격로를 틀고 1군단은 평양 방향(서쪽)으로 진격로를 틀어버리겠단... 아니 이건 초월 공격인 거냐 교차 공격인 거냐?
당연히 이렇게 군단을 교체해버리면 서로 혼란에 미쳐 날 뛸 게 분명했으니 육본은 그날 20시에 다시 수정 작명을 하달함.
☞ 육본 작명 212호: 임무 교대 취소. 2군단은 원산 '경유'해서 양덕-장림리-강동 축선(평양 동쪽)을 따라, 즉 서쪽으로 공격하여 적 격멸하고 미 1군단과 합류하되 교통 요충지 등에 병력 잔류시켜 놔라.
이 작전명령에선 왜 원산에서 평양으로 횡단공격이 나오는지 알 수 있음. 언급된 축선은 평양~원산을 연결하는 8번 국도임. 도로 태워서 신속하게 공격을 펼친다는 구상으로 읽을 수 있음. 단 이때는 평양을 공격하는 대신 남북으로 달려들(남쪽의 잔당과 북쪽의 잔존한) 적을 차단할 생각이었음. 대신 박정인 장군처럼 고향(원산)을 지척에 두고 졸지에 서쪽으로 가게 된 비극도 있다만... 어쨌든.
근데 이게 또 바뀜. 10월 10일 원산이 1군단에 의해 탈환되자 미 8군과 협의해서 수정된 작전명령이 하달됨. 사흘 동안 내용이 왔다갔다 했는데 이번엔 무슨 씽크빅이 나올꼬... 보면,
☞ 육본 작명 212호(수정)(10월 10일): 평양 쪽으로 공격하면서 적 격멸시켜라. 필요시 1군단 작전지역 통과해도 된다.
드디어 평양을 직접 언급하는 작전명령이 등장함. 아마 2군단은 쾌재를 불렀을 거임. 6사단은 원산을 경유해서 8번 국도를 타면 되고, 38선을 넘어 철원과 평강을 지나 북진하던 8사단은 철원 서북방으로 나아가 이천-신계로 평양까지 가면 됐거든.
그럼 7사단은?
그 사이에 2군단 예하에서 빠져서 육본 예비로 전환, 평강 잔적 소탕하러 감. 7사단의 북진? 당시엔 그딴 거 없다.
....였으면 좋겠는데 14일에 또 계획이 바뀜. 몇 번째 이 지랄이 반복되는지...
☞ 10월 14일 결정 : 평양에는 유엔군, 국군 1개 사단만 들어가기로 했으니 8사단은 평양 못감. 그리고 국군 7사단은 다시 2군단에 배속.
이에 따라 7, 8사단은 그대로 북진하게 되었고 6사단만 8번 국도 타고 가면 되겠지만... 8사단은 사단 지침을 바꾸더니 곡산-양덕-성천-강동 선으로 동북쪽에서 평양을 공격하기로 함. 이 루트가 어디냐고?
바로 6사단이 탄 8번 국도.... 아니 이성가 장군님? 거기서 왜 끼어드셔요?
링크한 글에서도 언급된 6사단과 8사단의 충돌은 바로 이 배경에서 비롯되었음. 대통령이 밀명을 내려서? 육본이 그러라고 해서? 혹 박정인 장군 증언대로 2군단 사령부가 뜬금없이 양덕 먼저 따가는 놈이 8번 국도 쓰라고 바람 잡았을 수도 있는데 일단 6.25전쟁사에서는 이성가 장군이 8번 국도에 끼어든 것으로 서술하고 있음. 8사단의 목표는 평양을 따는 게 아니라 평양 공격에 참가하는 정도일 뿐이고. 참고로 세부적인 걸 알 수 있을 2군단 작전명령서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임. (어쩌면 청천강에서 싹 날렸을 수도 있고) 단 8사단 작전명령서가 남아있으니 나중에 시간 나면 올리겠음.
여하간에 서로 꼬이고 또 꼬일 즈음 또 또 또 작전명령이 새로 내려옴. 양덕을 점령하기 전인 10월 17일, 대통령 밀명에 의해 작성된 육본 작명 218호였음.
☞ 육본 작명 218호: 2군단 싹 다 평양으로 가라! 아 근데 6사단은 북진해라.
2군단 전체가 육본 작명 218호에 의해 평양 레이스에 날뛰었다는 혹자의 주장과 달리 상황을 복기해보면 일단 애써 원산을 경유, 동서를 횡단한 6사단은 최종적으로 평양 공격에서 탈락했음. 육본 작명 218호는 성천을 거쳐 안주를 공격하라고 했기 때문.
그리고 8번 국도에 6사단 따라 탄 8사단은 평양 공격에 참가할 수는 있었으나 이미 배배 꼬인 진격 상황에서 평양에 갈 수는 없었음. 기여라고는 평양을 동북방에서 포위한 역할? 이건 하기에 따라 중요성이 있었다고 보는데 후술할테니 생략.
그러니 2군단이 평양에 던져 넣을 부대라곤 국군 1사단이 지나간 율리란 곳까지 어찌저찌 따라 북진한 7사단 8연대 뿐이었음. 결국 평양에 진입한 건 2군단 중 그들 뿐이었고.
정리하면 2군단이 대통령 밀명 받아서 평양 레이스 끼는 바람에 중부전선 빵꾸냈다고 하기엔 2군단의 북진 작전은 이미 좆됐고, if 돌린다고 해서 중공군 개입 차단은 어불성설임.
혹 처음부터 중부전선만 밀고 올라가는 if를 제기할 수 있는데 일단 예전에 내가 쓴 글에서 지적했듯 당시 미 10군단의 원산상륙작전 덕분에 미 8군까지 보급이 간당간당해진 상황에서 국군 2군단 혼자 한만국경까지 쾌진격한다는 건 어렵고, 설사 그렇게 한들 38선 경비도 4개 사단이 하다가 뚫린 걸 3개 사단으로(이것도 넉넉하게 봐줘서 그렇지 북진작전 중 상당기간 2군단은 7사단을 뺏긴 상태라 2개 사단으로만 작전한 거라 봐야 함) 한만국경 통제하며 각지에서 이뤄질 중공군 도강을 저지하는 건 불가능함. 각개격파나 안 당하면 기적이지.
당시에 난맥이던 작전지휘는 군에서 발간한 6.25전쟁사에서 지적하는데 (이전 버전들보다 점잖게 따지는 느낌의 이 공간사에서)돌려 까긴 해도 요약하면 무지성 플레이임. 작전통제 및 단계화를 고려하지 않고 목표도 수시로 변경되었으며 적 차단 및 격멸을 통한 전과확대가 아닌 지역확보 개념으로 싸웠다고 지적하고 있음. 미 10군단의 문제도 지적하고 있으나 원산상륙작전 문제를 언급한 것이니 2군단은 혹평을 받은 셈. 다만 앞서 논했듯이 2군단도 상급 지휘부의 괴상한 작전지도에 휘말린 셈이니 2군단을 트롤이라고 까려면 그 작전명령를 보고도 ㅇㅋ싸인 준 미 8군도 너네 뭐했냐? 소리가 안 나올 수 없음. 아 근데 얘네도 사리원 걸고 평양 입성빵 걸다가 1개 사단 유휴전투력으로 만들었고 지들도 도로 먼저 쓰겠다고 총질했지 참...
그리고 그 2군단 트롤링 글 쓴 애는 자꾸 한만국경 조기 선점을 논하는데 6.25전쟁사의 평가는 북진작전이 추격을 하느라 놓친 게 크다고 지적함. 말인 즉, 신속하게 진격했어야 됐고(통한 결의 등 절차적 정당성 대기하다 시간 끈 것을 지적), 적이 후퇴하기 전에 전선 고착 및 퇴로를 막아 적군을 끝장냈어야 하는데 추격 부대가 포위 부대보다 먼저 치고 나가니 결국 밀어내기 싸움한 것밖에 더 되지 않냐는 것. 그러면서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의 전투력 배치도 6:5인데 서부전선에 주공 모았어야 했다고 주장함. 예비대가 많을 수록 던질 수도 많으니까. 물론 이것도 미 10군단이 유휴전투력이 됐으니 걍 사이좋게 좆박은 상황이겠고... 미 1군단도 사단 하나 유휴전투력 만든 상황이었지만...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2군단도 걍 미 8군에 넣고 조기에 평양 북방 기동 때려박았어야 한다고 봄. 8사단이 좀 더 일찍 평양 동북방을 공략했으면 그 역할을 노려봤을 수도 있지 않았나 싶다.
개추 - 시진핑김정은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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