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전에 썼던 글은 좀 두서없었음. 정리해서 써보려고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은1968년 10월 30부터 12월 28일까지 북한 민족보위부(현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124군 120명이 울진, 삼척에서 해방구 건설 및, 고정간첩 근거지 확보를 위해 지랄발광하면서 날뛰었던 사건임.

댓글보니까 1996년 9월에 있던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이랑 햇갈려 하던 거 같은데, 강원도에서 일어난 것만 같지. 둘은 완전 다른 사건임 ㅋㅋ 

10월 30일부터 무장공비들은 2개조 30명이 경북 울진구 북면 나곡리로 1차 침투

11월 1일엔 울진군 북면 고포 해안으로 2개조 30명이 2차 침투하고, 11월 2일 마지막 3차 침투에선 4개조 60명이 삼척 원덕면 월촌리 고포 해안으로 고무보트를 타고 들어왔음.


근데 문제는 3차 침투였음. 

당시 울진군 북면 고포 해안 상륙지 근방에는 제5관구 1군단 38사단 115연대 1대대 1중대 제3초소가 있었는데 이곳은 3차 침투가 일어난 곳에서 고작 1km정도 떨어진 곳이었음. 

군대 다녀온 갤럼들도 알겠지만 엔간한 초소는 대부분 두 명이서 근무를 스는 게 원칙임.(가끔 1명씩 스는 초소가 있긴 한데, 대부분 부대 외곽이 아니라 내부 초소더라..) 

이 초소를 담당하는 근무인원은 간부 중사 1명, 분대장 하사 1명 + 병사4명으로 총6명이었는데 당시 상황이 개판이었음.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1.분대장이었던 김남출 하사와 중사는 분대 왕고였던 병장이 곧 전역한다고 병사 3명을 데리고 이웃 마을로 술먹으로 출타 중이었음.

2.나머지 두 명인 김복수 일병(19)과 문무림 일병(22)가 초소로 복초로 들어갔어야 정상이었겠지만, 김복수 일병은 2개월 차인 고참이라고 문무림 일병 혼자 초소근무를 보내버리고 내무실에서 처잤음.


여하튼 이런 씹가라 상황이었으니 시작부터 꼬였음

21시 20분에 고무보트 4대가 초소 전방 해상 200m앞에서 지나갔음. 여기서 무전이라도 때렸으면 좋았으려만 문무림 일병은 고무보트마다 수십명 씩 타고 있는 걸 보고 공포에 질려버려서 초소에서 도주해버림.


20분 후 21시 40분에 60명은 초소가 전방 10미터 앞에 있다는 걸 알고 침묵보행으로 지나갔지만 텅 비어있는 초소에서 뭔 반응이 있을리가 없었고, 후에 국군에 체포된 침투조 김익풍 중위는 국군 규율이 개판이라고 비웃었다고 함.


한편 문무림 일병은 내무실에서 처자던 김복수 일병을 깨워서 이웃 마을에서 술처먹고 있던 김남출 하사에게 달려갔음. 근데 이 문무림 일병이 정신이 나갔는지 김남출 하사에게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사태파악은 더더욱 늦어짐.

술처먹다 초소로 달려온 김남출 하사와 나머지 분대원들은 22시 20분에야 제3초소로 달려왔지만, 40분 뒤에 와봤자 뭐가 있었겠음. 아무 흔적도 없었음.

김남출 하사는 술 처먹고 정신이 이상해졌는지, 바다로 81밀리 박격로 조명탄 세 발, 고폭탄 여덟 발을 갈긴 다음, 소대장 이석훈 소위에게 유선전화로 "무장공비를 태운 괴선박을 발견해 격퇴했다."허위보고를 함. 그런데 무장공비들은 이미 야산 2개를 넘고 4km 이상 떨어져있었음.

김익풍 중위는 박격포 소리를 듣고 "그냥 우리 배탈 때 갈기지, 그럼 바로 작전취소되고 집에 가는 건데 씨발."이러면서 투덜거렸다고 함.

  

한편 이석훈 소위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중대장에게 보고했고, 중대장은 "근데 갈기긴 갈겼는데 전과는 없잖아?"라고 상부에서 욕먹을까봐 걍 짬처리 해버리기로 하고 보고 묵살 후 술먹고 잠에 들어버림.


그리고 22시 45분 쯤 38사단 보안부대 감청반은 제3초소와 소대장의 통화를 감청했는데, 함정으로 괴한들이 침투 했느니 안했느니란 두서없는 말을 듣곤 보고서를 작성 후 보안반장 책상에 올려둠.

그리고 다음날 11월 3일 출근한 보안반장은 오전 9시에 이 보고서를 읽었고, 1.21사건 때문에 예민했던 보안부대는 즉각 수사관들을 헬기에 태워서 3초소로 처들어감.

보안부대원들이 근무자들 조인트 까고 싸다귀 날리고, 흔적을 찾으려고 지랄발광했지만 당연히 아무것도 찾지 못했음.


결국 국군과 경찰에게 최초로 공비발견 신고가 들어온 건 고수동에서 공비들이 정치강습과 주민살해를 벌이고 떠난 뒤인 11월 3일 오후 2시 30분이었음, 그리고 그들이 고수동에 진입한 건 그날 오후 4시였음. 그리고 곧바로 제5관구는 을종비상이 발령되었음.


그후 어떻게 됐냐고? 문무림 일병, 김남출 하사는 사형, 김복수 일병은 징역 10년, 소대장 중대장은 징역 20년, 10년씩 먹었고. 대대장은 무죄, 그리고 같이 술먹던 중사랑 병사 2명은 무죄가 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