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이 죽인 사람들이 워낙 많고 비인도적이었지만 이게 한편으로 도움이 되기도 했음. 스탈린을 옹호하는건 아니니까 걱정 ㄴㄴ


20세기 초 러시아 제국은 급격한 산업화와 공업화를 경험했음.(러시아 공업력이 세계 순위권까지 오름) 그러나 러시아 지주들과 기득권층은 여전히 강했고 강력한 산업화 드라이브를 거는데 제동이 걸리기 마련임. 당장 공장 지을 땅도 없고 노동자로 동원할 인력도 없는데?


소비에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공산당 주도의 토지개혁 정책은 기존 지주들과 농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게 되었고 이들이 반발심에 경작을 안하게 되니까 이제 막 내전이 끝난 소련에 기근까지 찾아오게 되었고 결국 소련 공산당은 어쩔 수 없이 농민들의 소유와 생산을 허용할 수 밖에 없었음. 그게 신경제정책의 한부분이고.


문제는 신경제정책 하에 아예 네프만이라는 신흥 부유층이 생겨나버렸고 이들은 혁명 이전 러시아 지주 계층과 다를 바 없는 부를 누리며 살아갔고 소련 인민들의 빈부격차가 더 나빠지게 되었음. 이는 소련 국가 설립 의도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양상이었고 소련 인민들은 공산당을 향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음. 게다가 농경지가 여전히 많다보니 당장 산업화를 할 역량이 안되었음.


이 때 등장한게 이오시프 스탈린. 시장경제파의 지지를 받고 서기장이 되었음에도 급격한 계획경제 정책을 펼쳐버렸는데 이 때 수 많은 네프만과 지주들을 숙청하거나 굴라그로 보내버리고 토지들을 국가로 몰수해버리고 거기다가 공장들을 지으며 급격한 공업화 정책을 실시함. 네프만이라는 신흥 부유층이 몰락해버린 사실에 소련 인민들은 열광했고 소련의 경제력도 독일과 일본의 근대화를 능가하는 수준으로 급격히 성장하면서 1930년대에 소련은 순식간에 세계 2위 공업 대국으로 떡상해버림. 


집단농장에 귀속된 농민들은 이러한 국가주도의 급진적인 토지개혁 정책에 불만을 품고 태업을 일삼았고 그 결과물로 우크라이나 대기근이 터진거임. 근데 스탈린의 공업화 정책은 이 때에도 빛을 발해 대량의 트랙터들을 응용한 기계화 농업으로 이를 극복해버렸음.


그리고 독소전쟁이 터지고 스탈린이 추진한 무지막지한 공업 역량 덕에 소련군은 독일군을 능가하는 물량들을 뽑아냈고(랜드리스 지원도 있었지만) 그 덕에 전쟁에서 이겼던거임. 즉 스탈린의 대숙청은 이러한 순기능도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