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의 평화로운(?) 대치수준이던 지상과 달리 공중에서 프랑스와 독일간의 교전은 치열했다.






첫번째 교전은 1939년 9월8일 시작됐다. 전쟁초 독일의 대에이스이자 후일 전투기 총감이 되었던 베르너 묄더스가 JG-53 그루페1소속으로 Groupe de Chasse II / 4 Hawk75와 교전을 벌여 서부전선 최초의 격추를 달성했다. 격추기 조종사였던 Sgt Queginer는 낙하산으로 탈출했다.


(묄더스는 11월22일 서부전선 최초의 영국공군 허리케인 격추기록도 획득하게된다.)


하지만 격추 직후 Hawk75에게 맹렬한 기총소사를 당하여 엔진손상을 입게되었고, 습지에 동체착륙을 시도했으나 뒤집히면서 허리부상을 당하게 되어 며칠간 임무에서 열외되는 수모를 겪게된다.


(그는 이후에도 1940년 D.520 (조종사 René Pomier Layrargues)과의 교전에서 격추당해 일시적으로 포로가 되었었고, 영국항공전에서 아돌프 말란에게 격추당하기도 하였다.)


이날 Groupe de Chasse II / 4 Hawk75는 총 2대의 BF 109를 격추한다.



묄더스의 격추를 보듯이 포니워 항공전의 독일과 프랑스간의 교전은 팽팽했고, Hawk75는 BF 109에 비해서 성능상 열세였지만 절대 만만한 상대는 아니였다.


1939년 11월 6일의 교전은 특히 독일공군에게 그들의 붐앤줌(BnZ)전술에 대해 조종사들에게 혹독한 채찍질을 가해야 된다는 사실을 각인한 교전이었다.









이날 굴욕의 주인공들은 폴란드 공중전 당시 7기의 적기를 격추하여 1위의 에이스를 달성한 Hannes Gentzen의 JGr102(Jagdegruppe 102) BF 109D 27기였다.


그들은 27기의 BF 109D로 라인란트 상공을 초계비행중이었는데, Gentzen은 자신들의 비행대대보다 저고도로 비행중이던 Potez 63정찰기와 이를 호위하던 Hawk75를 9기를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고도의 이점을 이용하여 강하공격을 실시하였고 간단하게 그들을 유린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상대를 잘못만났다.









Hawk75 조종사들은 이미 9월과 10월 항공전 동안 BF 109를 상대한 Groupe de Chasse II / 5 (GC II/5) 라파예트 예하 조종사들이었던 것이다.










특히 André-Armand Legran상사는 9월 20일 JG53 BF-109E를 격추한 경력을 가진 프랑스 최고의 조종사중 하나였다.



교전결과는 확실했다. 독일은 참혹한 참패를 당한것이다.



















JGr102는 4기의 BF 109D를 손실하며, 2명의 비행중대장을 포함해 4명이 전사하였고, 4기의 BF 109D는 심각한 기체손상으로 불시착하여 완전손실되었다.


그들은 그러한 손실로 GC II/5 Hawk 75 9기 중 단 1기만을 격추할 수 있었다. (프랑스 인명손실 없음)


이 승리는 당연히 프랑스 언론을 통해 프랑스 공군의 대승리로 선전되었고, 베를린 당국은 즉시 Gentzen을 소환하여 해당 항공전에 대한 혹독한 면책을 하게된다.






3대1의 숫적 우세와 고공 선제 공격을 갖춘 상황에서 비행대대 전력의 4분의 1을 잃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Gentzen의 증언을 통해 그들은 몇가지 원인을 도출하게 된다.



첫째 , 강하공격 이전에 이미 프랑스 전투기들은 Jgr102의 위치를 파악한 상태였기에 기습의 이점을 살리지 못했다.


둘째, BF 109D가 상승력에서는 우위였으나 최고 속도면에서 320mph정도였기에 Hawk75의 311mph보다 다소 빨랐으나, 선회와 롤속도 면에서 호크에 비해 훨씬 열등했다. 수평기동면에서는 BF 109D가 열세였던 것이다.


셋째, 가장 중요한 요소로 Gentzen와 JGr102 비행대원들은 유리한 고도를 이용한 BnZ 공격을 하지않았다. 대신 폴란드전의 전과로 인한 지나친 자신감으로 선회전을 스스로 자청하여 고도의 잇점을 깡그리 뭉그러뜨렸다.



이 이면에는 당시 묄더스와 1, 2위의 격추 수를 다투던 비행대장 Gentzen의 성급함이 깔려 있었다. Gentzen는 비행대 지휘관으로 적기의 성능 분석도 없이 무모한 전법을 사용하여 휘하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 넣은 것이다.



루프트바페의 결정은 단호했다. Hannes Gentzen의 JGr102는 BF 109비행대에서 BF 110 비행대(ZG-2 예하)로 전환되었고, Gentzen는 사실상 좌천당했다. BF 109D는 빠르게 BF 109E로 교체되었고, BnZ 전법은 각 비행단에 혹독하게 강조되었다.











Groupe de Chasse II / 5는 1939년부터 40년 프랑스전까지 47.5대의 격추와 추청격추 23기를 달성하였다.




격추기종


BF 109 - 24기, BF 110 - 3기, Hs 126 6기, Do 215 - 1기, Do 17 - 6기,He 111 - 7.5기


조종사 손실은 전사 2명, 부상 7명이었다.











Hannes Gentzen은 BF 110으로 기체 전환 후 10기의 추가 격추기록을 갱신하여 총 17기의 격추수를 가지게 된다.


이중에는 1940년 4월 격추한 자신을 불명예로 몰아넣은(?) Hawk75 1기도 포함된다.



하지만 1940년 5월 26일 벨기에 Neufchateau 비행장에 대한 영국공군 블렌하임의 기습공격으로 긴급출격 중 고도 상승을 하지 못하고 비행장 인근 나무에 꼬리날개가 격돌하여 승무원과 함께 전사하게 된다.
















1939년 11월 6일 공중전의 주인공들 GC II/5 Hawk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