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정조 14년(1790) 규장각 초계문신(抄啓文臣)을 대상으로 한 정조의 친시(親試)에 대한 정약용의 답안지이다. 차상(次上)이라는 붉은 글씨는 정조가 답안을 채점하고 매긴 등수를 말한다.


다산이 제출한 답안지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세상에서 지위가 경상(卿相)에 오른 사람은 대개 위세가 대단하기 마련이어서 문객(門客)들이 모여들게 됩니다. 이 문객들은 모두 그 수레 멍에를 붉게 칠하고 수레 덮개는 푸른 색으로 칠하며, 그의 신발은 구슬로 장식하고 갓끈에는 아름다운 조개껍질로 장식을 하고서, 그 경상의 세력을 의지하고 여택(餘澤)을 입기 위하여 마치 개미처럼 떼지어 모이고 파리같이 웅성거리면서 한 시대를 떠들썩하게 합니다.


그러나 유독 심주(深州) 이 상국(李相國)만은 그렇지 않아서, 성품이 담담하고 소박하여 시끄럽고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위가 삼공(三公)에 이르렀으나 집안이 조용하여 새그물을 칠 만합니다. 그러자 산택(山澤)에서 문객을 널리 구하여 가까스로 초치한 문객이 모두 다섯 사람이었습니다. 곧 집을 지어서 그곳에 머물게 하고, 먹을 것을 보살펴 주어, 서로 우익(羽翼)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공을 비난하면서 말하기를. “천자(天子)가 공을 임용할 때 공에게 말하기를 어진 사람을 얻어 임금을 잘 섬기되 먹던 음식을 뱉고 감던 머리를 움켜잡으며, 동각(東閣)을 열어서 천하의 어진 선비를 맞이하여 왕실에 의표(儀表)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공은 유독 저 다섯 분들과 서로 친하여 그들을 문하에 두고 날마다 그 사이에서 유유자적하니, 공으로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입니다.”하니, 공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다. 내가 이 다섯 분에게서 재상이 사람 천거하는 법을 얻었으므로, 조정에 천거하려 하니 그대는 들어 보아라. 내가 처음 한가하게 있을 때 세 나그네가 나에게 찾아왔는데, 모두 의상(衣裳)이 기이하고 얼굴도 희었다. 그 중 한 나그네가 말하기를 ‘내 성품은 한가한 것을 좋아하여 행동거지를 바삐 한 적이 없는데, 눈을 만나 흰 빛을 잃었다. 그러자 이백(李白)이 나를 업신여겨 흰 구슬 한 쌍으로 나를 사서 비복으로 삼으려고 하였으니, 될 법이나 한 일인가?’ 하였다.


또 다른 나그네가 말하기를 ‘나는 어려서 빈천할 때 제(齊) 나라와 노(魯) 나라에 유람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서리와 눈이 옷에 가득 내렸고, 남을 위해 절구질과 호미질을 해 주다가 절구공이에 잘못 맞아 한쪽 발이 오그라들었다. 늙어서는 경호(鏡湖)에 이르러 자호(自號)를 벽계옹(碧溪翁)이라 하고 우연히 저 소용돌이에서 목욕을 하였는데 자미(子美)가 나의 심성(心性)을 의심하였으니, 또한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였다.


또 다른 나그네가 목을 길게 빼고 오만스럽게 애써 큰소리로 말하기를, ‘나는 본래 선골(仙骨)로서 대대로 청전(靑田 신선이 산다는 곳)에 살고 한가롭게 화표주(華表柱)에 노닐었는데, 이에 장자(莊子)가 망령되이 제물(齊物)을 하고자 하여 나의 다리가 긴 것을 의논하였으니, 슬프지 아니한가? 뒤에 위(衛) 나라에 벼슬하여 지위가 승헌(乘軒)에 이르렀는데, 진(晉) 나라 때에 이르러 불행하게도 육씨(陸氏)와 잘 지낸 탓으로 화정(華亭)의 화(禍)가 있었다. 그 뒤 마침내 종적을 감추고 스스로 숨어 살다가 지금 공에게 의탁하오니 공은 불쌍히 여겨 주소서.’ 하였다. 내가 손을 잡고 웃으며 말하기를, ‘공(公)들은 이곳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하였다.


그들이 여기에 머문 지 1년 남짓 되었을 때 나그네 중에서 맨 나중에 온 자가 또 보고하기를, ‘두 나그네가 뵙고자 합니다.’ 하였다. 그런데 그 두 나그네는 모두 비단 관(冠)에 비단 옷을 입고 금(金)과 벽옥(碧玉)으로 영롱하게 꾸몄다. 그 관향(貫鄕)을 물으니, 하나는 남월(南粤)에 있다 하고, 다른 하나는 서번(西蕃)에 있다고 하였다. 나는 평소에 화려한 것을 싫어하였고, 앞의 세 나그네도 그것을 더럽게 여겼다. 그러나 유별나게 말주변이 좋으므로 하룻밤 묵어갈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고 보니, 한 나그네는 성품이 시기가 많아서 무늬 놓인 비단옷 입은 아녀자를 보면 반드시 쫓아내었다. 또 다른 나그네는 영민하기는 하나 수다스럽게 입놀림만을 숭상하여 말을 조심하는 뜻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물리치려고 하였으나, 앞에 온 세 나그네가 청하기를, ‘상공(相公)은 어찌하여 기량(器量)이 그렇게 작습니까? 대체로 재상이 사람을 택하는 데 있어서는 혹 몸을 깨끗이 하고 행동을 잘 닦은 사람을 택하기도 하고, 혹은 문채가 아름다운 것을 택하기도 하는데, 저 두 나그네가 비단옷만을 입고 자라나서 산야(山野)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괴걸한 모습은 볼 수 없으나, 또한 스스로 재주를 한 가지씩은 가지고 있는데, 어찌 상공의 문하에서 용납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그래서 나는 ‘좋다’고 하고, 아울러 객관에 머물도록 하였다. 다섯 나그네가 둘러앉으니, 각기 다른 정취가 있었다.


나는 그들을 돌아보고 기뻐서 말하기를, ‘지금 천자가 어진이를 목마르게 구하느라 자리에 바르게 앉지 못하고 어진이를 기다리고 있으니, 저 기거동작이 얌전하고 우아하여 망령되이 바쁜 걸음을 걷지 않는 나그네는 한가한 자리에 임용하여 백관(百官)의 법이 되게 할 만하다. 그리고 저 몸소 절구질과 호미질을 하는 등 온갖 풍상[霜雪]을 많이 겪은 나그네는 호부(戶部)에 임용하여 백성들의 숨은 고통을 살피게 할 만하다. 저 자칭 선골(仙骨)이라고 한 나그네는 말이 허황되기는 하나 또한 세상 풍속을 연마시킬 만하다. 맨 나중에 온 두 나그네는 혹은 문원(文苑)에 임용하여 임금의 정사를 보필하게 하고, 혹은 왕명을 출납하는 직책[喉舌職]에 임용하여 왕의 말을 출납케 할 만하다.’ 하였다. 이들은 대체로 재주와 행실이 뛰어나니, 각기 그 적재적소에 맞추어 쓰면 된다. 내가 재상이 되어서 과연 사람을 이와 같이 얻어서 조정에 천거하면 또한 좋지 아니한가?”


그러자 비난하던 자도 ‘좋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각각 아름다운 호(號)를 주어 한객(閑客)ㆍ설객(雪客)ㆍ선객(仙客)이라 하였습니다. 그 나중의 두 나그네는 본래 서쪽 지방과 남쪽 지방에서 왔으므로, 농객(隴客)ㆍ남객(南客)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옵니다. 신(臣)은 삼가 기(記)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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