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 – 아프가니스탄의 수도가 탈레반에게 함락당하던 날. 20년 가까이 이어져 오던 전쟁의 마지막 선고가 떨어지던 그 날, 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다가올 전투에 대비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하루 전, 북부 최대의 도시이자 반탈레반 전선기지로 이름 높았던 마자르 이 샤리프가 적의 손에 넘어갔다. 별다른 전투조차 없이. 바로 그 전에는 옛 왕들의 겨울 별장이자 동방으로의 관문으로 불렸던 잘랄라바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 참이었다.
안개 서린 산맥 위로 해가 떠오르며 도시에는 8월 15일의 여명이 밝아왔다. 갑작스레 카불은 섬이나 다름없는 처지에 처해있었다. - 셀 수 없이 많은 미국의 원조금으로 쌓아 올려진 정부 최후의 요새이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보금자리. 그럼에도 아직 섬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남아있었다.
“모두가 탈레반에 맞서 싸울 각오를 굳히고 있었어요.” 한 아프간 보안부 장교의 말이었다. 그는 전날 휘하 장교들에게 새로운 군복을 분배하느라 밤을 지새웠다고 했다. “보안군 장병들은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허나 그만의 바람이었을까. 아침이 되어 도시 외곽을 방어하는 검무소를 지원하기 위해 준비하던 그를 상관이 막아세웠다. “그렇게 말했죠. ‘일단은 놔 둬.’” 장교는 기억을 되살렸다. “‘아직은 며칠 정도 남아있잖아.’라고 했죠.”
그러나 카불에게는 그 며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고작 수 시간 뒤, 머리를 길게 기른 탈레반 전사들이 검문소를 공격했다. 대통령은 대통령궁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미국과 그를 따르던 관료들에게 일언반구없이 도주해버렸다. 그렇게 수많은 근대사의 굴곡을 경험한 국가는 다시 한번 혼란과 파괴가 어우러진 치욕스런 시대의 종막을 맞이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굴러떨어진 것은 미국의 시대였다.
미국의 고위 관료들조차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주말이었고 그들 대부분은 휴일을 만끽하러 떠나있던 참이었다. 모두가 서방을 지지하는 정부가 최소 몇 주간은 버티리라 예상하고 있던 참이었다. 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 관점에서는 몇 개월 혹은 앞으로 수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으리라 여겨졌다. 아프가니스탄의 너무나도 빠른 추락은 정부의 모두를 충격에 빠트렸다. 심지어는 탈레반마저도 충격을 받은 모양새였다.
이제 극단주의자들의 폭력적인 내란시도로부터 국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던 아프간, 미국 양국의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관점에 동의하고 있다. : 8월 중순의 한 평범한 일요일이었던 그 날, 운명적이었던 몇몇 결정들만 바로잡히었더라도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보좌관들에게서 나온 부정확한 정보들로 인해 성급히 도주길에 올랐던 대통령의 결정이 가장 무거운 분기였다. 그러나 그 후에도 탈레반에 대항해 카불을 수호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은 아직 남아있었다. 이번에는 미국이 그 기회로부터 고개를 돌려버렸다. 대신 그들은 카불 공항을 통해 자국민들을 피신시키는 데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다.
미국이 치른 가장 긴 전쟁. 카불 함락에 대한 이 이야기는 스무 명이 넘는 미국과 아프간 관료들 및 탈레반 지휘관과 도시 주민들의 증언으로 쓰여질 수 있었다.
함락 전야.
워싱턴과 카불 양쪽에서, 함락 전까지의 수 주간은 안일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미국은 군대를 불러들이고 있었고 기회를 놓치지 않은 탈레반은 급격하게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양국 정부는 거의 500만에 달하는 시민들이 거주하는 도시,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의 영향력이 전국으로 뻗어나가는 중심기지였던 카불이 함락되기까지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민감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익명을 요구한 아프가니스탄과 미국 관료들에 따르면,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 또한 그런 믿음에 매달리고 있었다.
전직 아프가니스탄 관리에 따르면, 전문관료이자 상당히 변덕스러운 성향의 교수 출신이던 가니는 미군이 떠나도 정부군이 충분히 탈레반을 저지할 수 있으리라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정부가 반년이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으리라 내다보았고, 전국의 낙후된 농촌들과 지방 중심도시들이 탈레반의 맹렬한 공격에 시달리고 있었음에도 그의 이런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19세기에 지어진 카불의 대통령궁 아르그에서 그는 “지금 그쪽에서 싸우고 있으니 이쪽에서는 싸우지 말도록 해.”라고 말하곤 하며 전쟁을 지휘했다.
그러나 일선 현장의 현실은 달랐다. 아프간 정부군은 사실상 전혀 싸우고 있지 않았다.
6월 말과 7월 초, 이란과 타지키스탄으로 통하는 주요 국경지대가 탈레반에게 넘어갔다. 도처에서 정부군은 싸우기도 전에 허물어지고 있었다. 가니의 국방보좌관이었던 함둘라 모히브는 정부군이 금방 해당 지역들을 탈환할 수 있을 것이라 큰소리를 치고 다녔다. 서구에서 교육받은 관료이기는 했지만, 그는 군사와 국방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이였다.
그러나 정작 무너진 지방 도시들로 인해 정부의 세수가 곤두박질치고 있었음에도 이를 반전시킬 무언가는 시도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정부 관료들의 절박한 외침조차도 모히브는 외면했다.
탈레반의 위협을 과소평가하는 가니의 태도는 미 관리들, 특히 미 중부 사령부의 지휘관이었던 케네스 "프랭크" 매켄지 해병대장과 로스 윌슨 대사를 당황케 했다.
7월 카불에서 열린 가니와의 만남에서 두 사람은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에게 "국가를 방어하기 위해 많은 이들의 지지를 살 수 있는 현실적이고도 실행 가능한 계획"이 필요하다 간언했다. 이들은 34개나 되는 아프간의 지방 중심도시들 전체를 방어하겠다는 허황된 계획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고 아프간 정부를 설득하려 노력했다.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방어가능한 지역에 모든 노력을 집중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카불 방위를 위해 핵심적인 지역들이 있었어요."
가니는 언뜻 그 아이디어에 동의하는 듯도 했지만, 그 이상 계획을 뒷받침할 만한 실질적인 노력은 전무했다고 관계자는 전한다.
이 관계자는 “조언도 하고 분명 옳은 말들도 많이 오갔습니다. 하지만 결국 언제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라고 말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아무런 계획도 없었어요.”
마침내 산사태가 시작되었을 때에도 정부의 상황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8월 6일, 멀리 남서쪽에 위치한 자라니가 함락되었다. 이어서 거의 스무 개나 되는 지방의 주도시들이 9일 간에 걸쳐 도미노처럼 무너져내렸다. - 대통령은 갑작스럽게도 혼란에 빠져버린 것만 같았다.
“가니는 정보화 경제에 대해 논의하고 싶어했습니다.” 공무원들의 봉급제도 개혁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 당장 직면하고 있던 심각한 위협과는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들이었죠."
카불 함락 하루 전이었던 토요일 오후까지도 가니는 긴급 대피계획이나 고위 관료들의 안전보장 대책에 대해 일말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궁의 정원에서 한 보좌관과 마주한 그는 특유의 부드러운 어조로 국가 경제를 부흥시킬 구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밤 대국민담화가 예정되어있었지만, 그는 공식회견장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인들 또한 미몽에 빠져있기는 마찬가지였다.
6월까지만 해도 미 정보부의 요원들은 아프간 정부가 최소 6개월 이상은 버티리라 분석하고 있었다. 8월이 될 때까지도 가을이 다 가기 전까지는 탈레반이 카불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으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분명 미국 관료들은 가니에게 시급한 대책을 재촉하고 있긴 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들조차 당면한 위협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8월의 워싱턴 특유의 관료주의적인 나태한 리듬이 모두를 지배하고 있었다.
카불 함락 이틀 전인 금요일 오후, 백악관은 제각기 휴가 준비를 서두르는 관료들로 가득했다. 이제 시작된지도 얼마 되지 않은 바이든 대통령 임기 내의 첫 휴가철이었다. 그날 이른 아침, 바이든 대통령은 막 캠프 데이비드에 도착한 참이었고 국무차관 안토니 블린컨은 이미 햄프턴에 있었다.
토요일이 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마자르 이 샤리프의 함락. 1990년대부터 탈레반과의 치열한 투쟁으로 유명했던 도시가 무너지자, 미국 관료들은 그제서야 허둥지둥 대책 마련에 나섰다. 누가 더 빠른지 서로 경주라도 벌일 기세로 펜타곤과 국무부가 일에 착수했다.
인터뷰를 제공한 미 관리에 따르면, 이날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바이든 대통령과 그의 최고 안보 보좌관들과의 화상 회의에서 모든 미 대사관 직원을 카불 공항으로 즉시 재배치할 것을 촉구했다고 한다.
???: 저희도 몰랐죠. 이렇게까지 씹창일 줄.
요약:
1. 막장에 다다를 때까지도 아프간 정부는 마비상태였다.
2. 가니는 첩자를 넘어서 씹트롤 막장새끼였다.
3. 가니가 귀 기울이는 핵심참모들은 병신이었다.
4. 미국도 다 병신이었다. 가니나 이새끼들이나.
5. 백악관은 휴가다녀오게써용~ 오홍홍~
6. 위에서부터 계획이니 뭐니 아무것도 없으니, 안 그래도 부족한 병력의 정부군은 전국의 34개 주도에 넓~게 흩어져 그대로 고로시 당했다.
7. 공항 빤쓰런이 막장이었던 이유는 빤쓰런 계획 자체가 함락 바로 전 날 짜진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느그 다 뭐했노 병신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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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을 지방도시에 다 흩어놔서 전부 무너진 거구나.;
안그래도 겨우 3~6만 사이 밖에 안되는 병력을 전국 34개 도시에 다 흩어놨는데 갸들이 싸우겠나 빤쓰런 치지. - dc App
보면 영국 쪽 언론들이 이런 거에서는 먼저 미국이 아프간 군대와 국민들에게 책임 떠넘긴다고 비판 기사 나온 다음에 미국 언론에서 다시 미국 실태 비판하는 기사 나오더라
공항 계획 개씹날림 쪽대본 ㅅㅂㅋㅋ
그나저나 3~6만의 병력을 주요 도시 거점에 수천 단위로 주둔시킨 거도 아니고 전국 각지에 흩뿌렸다고?? 저딴 식으로 하면 미군도 총 몇방 쏘고 도주하겠다
간단하게 봐도 저따위였으면 최소 인구 수만의 지역 주도마다 수비병이 1천 수준 정도였다는 소린데 무신 방어전이 되겠노;; - dc App
솔직히 그냥 모든 주도가 아니라 주요 거점도시 몇 개만 선정해서 거기다 수천 씩 박는 식으로만 했어도 더 오래 버쳤을 거 같다 아니 저러면 최악의 경우에는 도시 하나당 수백명 따리만 되는 경우도 나오는데 탈레반이 바보도 아니고 이 정도면 각개격파 씹가능 아닌가??
그러게. 군 운용이 졸라 한심하네.
미친 수도방위군조차 엿바꿔 먹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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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뭔 개소리야! - dc App
가니는 참 좀 안정적인 국가에서 대통령 해먹었으면 평타는 쳤을텐데
아니시발 보병하나 양성하는게 이렇게 어려운 일 이었나... ㅠ
정보화 경제? 1세계 국가에서도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소리 나올 마당에 지금 지가 어딨는지 모르는건가? 걍 자폐증 좆병신새낀데? - dc App
놀랍게도 미국은 이라크를 통치할 때 카드리더기는 커녕 시중의 돈도 없는데 경제정책이랍시고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을 밀어붙인 적이 있다 아프간 정부라는 놈들이 사실상 미국에서 화이트칼라질이나 하던 유학파들인 거 감안하면 본토에서 현실인식 착실히 배워 온 거
ㄹㅇ ㅋㅋ
막장이 따로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