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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사료에의 접근성 부족과 냉전의 영향으로 영미권 학자들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독일 측 사료들 위주로 독소전쟁을 연구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독소전 연구의 편향성을 가져왔다.[72]

주요한 사료로 쓰인 에리히 폰 만슈타인의 회고록 <잃어버린 승리>나 하인츠 구데리안의 <기계화부대장>, 프리드리히 폰 멜렌틴의 <기갑 전투>는 회고록의 특성상 자신의 실수나 병크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 안 하고 공적만 늘어 놓은지라 신중한 교차검증이 필요했으나, 소련 측 자료가 거의 입수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를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거기에다가 미 육군에서 독소전쟁에 관해 편찬 책임자를 맡은 전 독일군 총참모장 프란츠 할더[73]는 오로지 독일의 입장에서 서술하였다.

또한 수 많은 독일 국방군 출신 장성들이 서방 NATO 군대에 편입되었으며, 이는 소련군이 진지하게 NATO군과의 전쟁이 벌어질 경우 바르샤바 조약기구 군대와 함께 움직이며 전선을 하나하나 격파해나감과 동시에 전례 없는 거대 규모로 편성된 공수부대로 서유럽의 전략적 능력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전략을 구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전략을 짜는 동안, NATO 군대는 1980년대 초까지 강력한 신화적 영향력을 쌓아놓은 독일군 출신 장성들의 또 다른 국방군이 되어 전쟁 연습을 해야했다.

단적으로 1981년 백악관 국가안보실이 주도로 주체한 워게임에서는 2차 대전 당시 독일 내로 진주한 소련군이 움직인 방식으로 가상적군의 움직임을 짜놓았고, 그러한 상황에서 NATO군은 냉전 때에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군대를 막는 역할이 아니라 독일 출신 장성들의 정신승리용 장난감처럼 굴려졌다. 만슈타인이 2차 대전 당시 시도했으나 실패한 기동 방어 전술을 행했고 이를 통해서 소련군을 물리친단 계획이었으나 현실적으로 서유럽은 기동방어가 완벽히 들어먹힐 정도로 넓지 않았고 도리어 이를 사용했을 시에 소련군은 방어진을 돌파해 방어군들을 포위섬멸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를 계획한 서독군 기갑부대 지휘관 헤르만 발크(1893~1982)는 "만약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되는 것이지?"라는 동료 지휘관의 물음에 "러시아인들은 그렇게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라도 단언했다. 결국 독일군 출신 장성들은 자신들의 패배가 경험이 쌓인 소련군 장성들의 능동적이고 과감한 전략전술과 압도적인 공업 역량에 의해 패배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히틀러를 비롯한 전략적 식견이 전무한 독일 나치당 고위 인사들의 군에 대한 영향력과 소련군 '이반'들의 피와 살로 이뤄진 공세로 인해 패배했다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이러한 인물들이 개입하는 상황에서 독소전쟁사 해석은 철저히 정신승리에 가까운 형식으로 이뤄져있었고, 가장 큰 적인 소련군이 어찌 움직이고 이들을 어찌 요격하여 최종적으로 승리할지는 결국 NATO군의 진지한 전략이 아닌 독일군 장성들의 대체역사 시나리오에 불과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1950년대 독일군에 의해 만들어진 저작들은 소련군의 작전 자료 부재라는 결점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독일 집단군, 야전군, 군단, 사단 소속의 독일군들은 수요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의 수적 우위와 끝없는 포격 하에 행해지는 인해전술, 그리고 전쟁 말기에는 무수한 소련군 기갑 부대와 대적했다고 주장했다. 소련군 규모에 대한 부정확한 서술에는 적 부대 각각의 작전술 적 역할에 대한 고려가 전무하여 독일 저작들이 소련군에 대해 공통적으로 말하는, 상상력 없이 단순한 정면 공격밖에 모르지만 막대한 물량을 가진 소련군이 뛰어난 능력과 기교 넘치는 기동을 구사하는 독일군을 이겼다는 주장을 깔아 놓았다. 소련군의 '스팀롤러'는 동유럽에 그들의 시체와 부상자를 끝없이 쌓았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독일 자료들이 전해 준 소련군에 대한 심리적 인상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더 나아가 작전들에 대한 이러한 개관은 소련군의 규모를 제대로 알지 못하게 해 독자들에게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독일군이 항상 압도적인 수의 소련군과 대치했다고 믿게 했다. 이런 회고록들과 팸플릿들은 독일의 원 사료들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도 그랬고 지금까지 소련군에 대한 작전 자료의 부재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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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냉전시기에 나치독일군 장성들 빨던거보면 신빙성이 없진 않아보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