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어떤 친구가 고구려는 중국에 대한 조공칭신을 거부했다는 말을 써놨는데 사실일거 같음?



二十三年, 夏六月, 王遣使入魏朝貢, 且請國諱. 世祖嘉其誠欵, 使録帝系及諱以與之, 遣貟外散騎

侍郎李敖, 拜王為都督遼海諸軍事·征東将軍·領護東夷中郎将·遼東郡開國公·髙句麗王


23(435) 여름 6월에 왕이 사신을 위()나라에 들여보내 조공하고, 또 그 나라 (황제들)의 휘(

이름)를 청하였다. 세조(世祖)가 그 정성을 아름답게 여겨서 황제 계보와 휘를 기록하여 넘겨주게

하고, 원외산기시랑(員外散騎侍郞) 이오(李敖)를 보내어 왕에게 벼슬을 내려 도독요해제군사(

督遼海諸軍事) 정동장군(征東將軍) 영호동이중랑장(領護東夷中郞將) 요동군개국공(遼東郡開國

) 고구려왕(髙句麗王)으로 삼았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장수왕 23



고구려 최전성기인 장수왕대에도 고구려는 중국(북위)에 조공했고 역대 황제들의 이름을 알려달

라고 청한바 있음 북위 세조는 이를 가상히 여겨 장수왕을 都督遼海諸軍事·征東将軍·領護東夷中

郎将·遼東郡開國公·髙句麗王으로 책봉함



秋九月, 師還, 死者十八九. 王亦恐懼, 遣使謝罪, 上表稱, ‘遼東糞土臣某.’帝於是罷兵, 待之如初.


가을 9월에 수나라 군대가 돌아갔는데 죽은 자가 10명 중 8~9명이었다. 왕 역시 두려워하여 사신

을 보내어 사죄하고 표를 올려 요동 더러운 땅(糞土)의 신하 모()’라고 칭하였다. 황제가 이에

병력을 파하고 처음과 같이 대하였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양왕 9



영양왕은 수나라와 전쟁을 벌인 군주임 영양왕 9년 수나라는 대군을 일으켜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이기지 못하고 대부분의 병력을 잃고 퇴각함 영양왕은 사신을 보내어 수나라 황제에게 사죄하고

요동의 분토(糞土)에 사는 신하로 자신을 칭함 糞은 '똥분'자로서 곧 분토는 똥같이 더러운땅이라

뜻임 즉 똥같은 더러운 땅에 사는 신하로 자칭한거임


물론 고구려가 끝까지 안한게 하나 있는데 그건 친조(親朝)임

친조란 임금이 타국의 궁궐에 들어가 그 나라 임금에게 조회한다는 뜻으로 수양제가 고구려에 강요

했지만 고구려는 이를 거부함 하지만 우리나라 왕들은 (원간섭기를 제외하고는) 중국에 가서 친조

한 사례가 없음 사대가 심했다는 조선에서도 친조는 단 한건도 없음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조공과 책봉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칭신은 보편적인 질서로써 중국과 교류하

고자 하는 나라에서는 예외없이 모두 따라야 하는 철칙이었음


이걸 하기 싫으면 중국과 전쟁을 벌이거나 아니면 모든 왕래를 끊고 고립되는 방법외엔 없었음

그러나 한정된 백성과 조세로 거대한 중국과 쓸데없는 전쟁을 벌이는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고 지금

도 하기 어려운 중국과의 모든 교류중단 역시 옳바른 선택지라고 할 수 없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