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은 서구권의 생활방식과 생산된 모든것들을 공식적으론 부정하면서도 한편으론 또 협력하곤 했다 그리고 이런 비밀스러운 협력 중 하나가 아디다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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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에도 어떤식으로든 서구권의 문화가 유입되었고 불법적으로 복사된 TV쇼, 영화 및 스포츠 방송이 민간인들에게 흘러 들어갔고, 이 영향으로 리바이스 청바지와 아디다스 스니커즈 같은 서구권 소비재의 수요는 꾸준히 일어났다


그렇지만 미하일 고르바쵸프가 글라스노스트 개혁을 통해 소련의 경제를 개방하기 전까진 서구의 소비재를 일반인들이 구하기엔 불가능에 가까웠고, 한 번 발견되면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을 자랑했다 그리고 이를 구해입는 것 자체가 부의상징이자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기도했다(고프닉을 비롯한 러시아인들의 아디다스 사랑도 여기서 시작된다)


소련의 신문 Socialist Industry는 젊은이들의 이런 자본주의적인 패션추종을 부도덕하다고 비난하면서도 75년도엔 자체적으로 데님을 제작 공급하여 이런 현상을 통제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소련의 생산능력으로는 원본의 품질과 노하우를 따라갈 수 없었고 서방권의 협력이 필요했는데 때마침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비밀계약



2차 세계대전 이후 올림픽은 간접적이고 비공식적이더라도 스포츠 용품을 광고하는 주요 플랫폼 중 하나가 되었다 


어떤 회사든 자사의 제품이 최고의 운동선수들에게 제공되기를 꿈꿨으며 그런 점에서 연맹은 특히 매력적이었는데, 소련 선수들은 최강자에 속했고 많은 관심을 끌었다


아디다스와 소련의 관계는 모스크바 올림픽을 개최하던 1980년에 일어난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 모든것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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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장대높이뛰기 3회 챔피언 빅터 사니에프 (c) Jevi Kikvadze, Felix Krymsky/TASS



독일 "아디다스" 사와의 협력을 주제로하는 1979년 소련 체육 및 스포츠 위원회의 각서에는 "소련 스포츠 위원회는 20년동안 지속적으로 협력해왔다"는 언급이 있었고, 이미 1965년 뉴욕타임스는 AP통신을 인용하여 미국의 컨버스사가 소련으로부터 받은 농구선수용 신발 46켤레에 대한 주문을 보고하기도 했다


소련은 경쟁력있는 운동화를 만들만한 기술이나 재료가 부족했고 아디다스로 해결책을 찾았다







"세줄" 숨기기



70년대 후반부터 소련 지도부는 아디다스와의 관계를 공식화하기 시작했고 올림픽에서의 공급업체가 되었는데,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키자 독일을 포함한 65개국이 보이콧 했고 서방과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었다


하지만 공식후원자인 아디다스는 이미 많은 비용을 투자한 상태였기 때문에 소련으로부터 불공정한 요구를 받으면서도 작업을 계속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먼저 모든 엠블럼과 아디다스라는 이름을 제거하여 소련 선수진의 사진과 방송에 "자본주의"가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했고, 생산을 소련으로 모두 이관 후 장비를 남겨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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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와 협력하는 소련의 한 회사의 모습 (c) T. Kulbitskaya / TASS



이렇게 소련은 아디다스로부터 운동화 제조 라이센스 및 설비를 얻어내는데 성공했고 당시 아디다스 라이센스하에 신발을 생산한 20번째 국가가 되었다 


라이센스 외에도 독일은 화학원료와 기타재료를 공급해야 했는데, 검사 결과에 따르면 소련이 신발 생산에 적합하게 공급할 수 있는 물질은 3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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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예프 여자 핸드볼팀 "Spartak" (c) F. Sedachev / Sputnik



가젤모델을 바탕으로한 신발은 여러가지 색상으로 만들어 일부는 바로 수출되었고 일부는 소련 국가대표팀에 공급되었는데 선수진들은 파란색 모델만을 받을 수 있었다 


특유의 세줄 무늬는 남았지만 회사로고와 Adidas 글자는 사라졌고, 대신 그 자리에 Moscow 글자가 자리잡았으며 현지에서는 이 운동화를 모스크바라고도 불렀다


올림픽 이전까진 소련인들은 스니커즈를 추종하진 않았으나 이 운동화를 신고 걸어보기를 원했으며 청바지와 운동화 패션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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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의 GAT(German Army Trainer)



모스크바 신발의 이야기는 독일군의 GAT와 흡사한 부분이 있는데, 둘 다 정부에서 생산한 운동화로 원래는 군사 훈련을 목적으로 했으며 잉여품들은 민간 시장에 풀렸다는 것이다 차이점이라면 GAT는 패션계에 큰 영감을 주었고 모스크바는 전쟁에 나섰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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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의 전투화는 험준하고 산악지형이 많은 아프가니스탄에 적합하지 않았고 걸을 때 소리가 많이 났다 


이에 일부 공수부대와 특수부대는 가볍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모스크바 운동화를 신기 시작했으며, "지휘관들은 가능하면 테니스화를 신는다." 라고 1995년 미군의 보고서에 언급되기도 했다


소련 지도부는 이런 상황이 언론에 개제되는 것을 반대했으나 이미 모스크바 운동화는 광범위하게 보급된 후였고 오늘날 미국 특수부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덥수룩한 수염, 야구모, 오클리 선글라스)와 같은 상징으로 자리잡아 각종 영화나 게임에서도 존재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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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9중대에서 등장한 모스크바



이 모스크바는 2011년이 되서야 생산을 종료했으며 군에서도 새로운 신발로 대체되었다






참조글


www.highsnobiety.com/p/mockba-russian-adidas-sneakers/' target="_blank">https://www.highsnobiety.com/p/mockba-russian-adidas-sneakers/

https://apaclive.com/blog/why-did-the-soviet-special-forces-wear-adidas-sneakers/


번역기로 작성하였으며 생략과 오역이 있을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