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군갤에서도 활동하는 애신각라가 국정갤 활성화시킬때 쓴 글인데 지금 보니까 다 정리된거같아서 가져옴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milipoli&no=4558&search_pos=-13468&s_type=search_name&s_keyword=%EC%95%84%EC%9D%B4%EC%8B%A0&page=1' target="_blank">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milipoli&no=4558&search_pos=-13468&s_type=search_name&s_keyword=%EC%95%84%EC%9D%B4%EC%8B%A0&page=1
왜구. 라고 하면 뭐 일본 해적으로 간단히 퉁쳐서 설명할 수도 있지만, 그런데 좀 따지고 들면 존나 복잡함
일단 학계에서 왜구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뉘어서 연구되고 있음.
14세기 중엽 활동한 전기왜구와 16세기 중엽 활동한 후기왜구임.
왜구가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 정도는 왜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꽤 알려져있는 케이스지. 제목에서 명대왜구라고 한 것도 사실상 명의 건국과 몰락에 이 왜구의 활동시기가 겹쳐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명이라는 중화제국의 탄생이 큰 영향을 줬기 때문임.
서론이 길어졌으니 시기별 왜구의 배경, 활동의 주체, 종식 등에 대해 학계에서 수행한 연구들을 곁들여가며 한 번 알아보도록 하자.
1. 전기왜구
1) 배경
동아시아 전체가 헬게이트였다.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해 공중분해 되어가는 원, 이 틈을 타 원으로부터 벗어나려는데 홍건적과 왜구를 동시에 상대하던 고려, 그리고 남북조로 나뉘어 덴노가 둘이 된 일본.
문제는 이전 시대에 원이 세계제국을 만들면서 동아시아 해역에서 인도양까지 안정된 해상무역권을 형성했다는 거다. 근데 이제 관리주체가 없네? 자, 헬게이트죠. 그렇게 장강 이북과 한반도를 미친듯이 약탈하기 시작한게 전기왜구. 고려사에서 경인년(1350)부터 미친듯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해서, 경인왜구라고도 부름.
2) 활동의 주체
학계에서도 전기왜구 활동의 주체에 대해서 일본인이라는 것에는 크게 이의가 없다. 다만 가네요시 친왕의 정서부냐, 키쿠치씨냐, 쇼니씨냐 등등으로 갈리고 있을 뿐.
최근 일본학계에서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쇼니씨의 지령에 반드시 굴복하지만은 않는, 임기응변으로 그때그때의 지배적 세력에 가담하는 자연발생적 성격을 강하게 지닌 매우 광범위한 지역의 해상 무장집단'이라고 한다.
...쇼니씨라는 소리 같지만 일단 넘어가자.
또 가왜 논쟁 역시 이 전기왜구 시기임. 아무래도 전기왜구 시기에 상대적으로 그나마 자세한 자료를 남길 수 있었던게 고려였기 때문에 대부분 사료의 근거가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인데...
대충 고려시대 때는 백성들이 가짜로 왜인의 옷을 입고 도적질 했습니다~라는 발언이 세종실록(28년 10월 28일)에 실려있음. 이게 주요 근거 중 하나인데, 당연히 반박된 상태임. 일단 세종 28년이면 1446년으로, 왜구 종식에서 대충 50년 넘게 지난 시기임. 또 이 이순몽이라는 양반, 이 이야기를 호패법 시행 근거로 써먹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천인들이 왜복을 입고 속였다고 했을 뿐이지, 왜적과 결탁했다는 이야기가 없어서 일단 학계에서도 응 일본인~하고 넘어간 상황임.
3) 종식
사이좋게 헬게이트가 됐으니, 사이좋게 헬게이트가 끝났다. 원명교체, 조선건국, 남북조 종결...무엇보다 제일 문제되던 일본에서 무로마치 막부라는 (그나마)중앙정부가 들어서면서 전기왜구는 쫑남. 뭐 간간히 왜구 소식이 있긴한데, 그거야 뭐 어느 시기에나 있는거임. 전근대 일본의 통제력이라는게 그렇지 뭐.
명과 조선이 감합무역과 세견선무역이라는 무역권을 쓰시마와 규슈, 혼슈 서부 일대의 세력에게 물려준 시기이기도 함.
4) 번외: 아니 전근대인데 일본인라고 해야할까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바닷가 사람들은 다 서로 왕래하며 지냈는데 이걸 꼭 일본인이라고 불러야함? 한반도 남해안에서 쓰시마, 규슈 북부, 제주도까지 전부 사람들 왔다갔다하고 지냈는데 이 사람들을 근대적 국민 개념으로 일본인이라고 부르는 게 말이나 되냐! 이 사람들은 경계인이다!...라는게 일본학계의 주장임.
그런데 말이지, 왜 서로 왕래하며 지내는 바닷가 사람들은 메이지시대까지 일본에만 남아있었던 걸까요? 정말 궁금하다.
2. 후기왜구
1) 배경
무로마치 막부가 죽었다! 정확히는 1467년 오닌의 난으로 막부가 다이묘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헬게이트 닛폰이 다시 열림. 다이묘들은 먹고 먹히는 전국시대에서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했다.
전기왜구와 비슷하게 얘들도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고 있다. 바로 중국. 무로마치 막부는 일단 명목상 일본국왕으로 인정받고 황제가 바뀔 때마다 감합 무역권을 받아냈었음. 막부는 이걸 또 다이묘들에게 무역선 몇 척씩 나눠주는걸로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런데 1523년 오우치 가문과 호소카와 가문이 각자 정덕감합과 홍치감합을 가지고 영파에 도착해서 지들끼리 싸우다가 명 관리까지 죽여버림. 이게 영파의 난인데, 이거도 전후경위를 살펴보면 골때림...이 골때리는 사건엔 나중에 애꿎은 조선까지 휘말린다.
어쨌든 당연히 개빡친 명은 다 꺼지라고 하면서 쫓아냈다가 1536년에 다시 열어주는데, 1551년에는 감합을 가지고 있던 오우치가 망해버림. 일명무역의 관리주체가 사라진거임.
덤으로 당시 각국의 상황을 살펴보자면 은을 세제에 편입시키기 시작한 명과, 연은분리법이라는 은 제련기술을 유출(....)시킨 조선과, 이와미 은광이라는 치트키를 개발하기 시작한 일본으로 정리할 수 있다.
2) 활동의 주체
이 시기가 바로 '진짜 왜인은 대단히 적고, 모두 복건과 절강 사람으로 다른 나라 사람과 결탁했던 무리이다'는 시기임. 그런데 다들 머리도 밀고 왜어를 사용했다는데, 이걸로 일단 이런 스타일(...)이 동아시아에서 왜구의 아이콘이었다는 걸 알 수 있음. 디폴트 커마라고 생각하면 될듯. 어쨌든 일본학계에서는 후기왜구를 모국어와 민족, 출신지가 다른 중국, 일본, 조선, 포르투갈 등등 사람들이 연합한 해상집단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일본학계의 기본 인식은 이시하라 미치히로의 연구에 기반하고 있음. 어쨌든 이 사람이 정리한 대표적인 '일본인이 아닌, 허위나 과대선전된 왜구' 사례들이 있는데, 가독성을 위해 해당 사례와 학계의 반박을 같이 쓸게.
<ㅇㅈ하는 부분>
중국인이 왜구로 가장
평화적 조공 온걸 왜구라고 지랄
→ㅇㅈ. 특히 감합 잘못된거 가져오면 명은 너 이 새끼 해적이라고 했다.
관군이 토벌성과를 과장보고
→명 관리가 조선인 최부 표류선 1척을 왜선 14척으로 보고한거 보면 그럴 수 있음. 그런데 뒤에 나오는 ㅇㅈ안하는 부분과 연계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음.
관군이 지랄한걸 왜구가 했다고 보고
→그런 적 있긴함. 근데 몇 건이나 된다고 구차하게 이러냐...
<ㅇㅈ 안하는 부분>
중국 도적의 범행을 왜구와 공모했다고 하거나 왜구의 단독 소행이라고 보고
중국 나쁜놈들이 왜구를 사칭하면서 자기선전
→왜구가 연해 내륙에 들어와서 토착 도적과 연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얘들 은 왜구가 아니다!라고 하는건 무리수가 많음; 특히 중국 기록은 왜구와 중국출신 해적을 따로 병기한 기록도 많음. 그래서 전부 왜구에 책임전가했다는건 좀 에바임.
가짜 왜구의 머리로 공을 사칭
→명은 기본적으로 책임자들을 존나 갈군다. 관내에 왜구가 등장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까일만한 거리임. 왜구에 대한 방비소홀을 사죄로 다스린다고 하는데 굳이 중국인 해적을 왜구 출현이라고 보고할 이유가 없음. 왜구 잡았다고해서 일반 산적이나 해적 잡은거하고 포상이 다른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이 주장들을 모두 따르면 왜구 관련 사료를 전부 믿을 수가 없음. 결론을 만들기 위해 사료를 부정한다? 에바참치도 정도가 있음.
또 연안지방과 내륙에 침입한 왜구의 주요 타겟은 '사람'이었음. 포로를 노예로 팔아먹기도 했지만, 강제로 왜구에 편입시키는 경우가 많았음. 왜구가 토벌되면 항상 중국인 포로들이 우루루 나오는데, 이게 보통 죽이거나 포로로 잡은 왜구 수보다도 많았다고함. 무엇보다 이런 포로들 중에서도 왜구에 편입된 경우가 있었지만, 이들이 싹다 왜구로 보고된 점을 고려해야한다고 생각함.
요약하자면,
- 16세기 중반 중국 동남부 연해안 침입한 왜구 집단은 일본인과 중국인 등 다양한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 왜구의 활동은 종종 과장되기는 했지만, 거시적으로 영향을 줄만한 것은 아니었다.
- 왜구는 주로 연해 내륙 지역으로 침투하여, 현지인을 흡수하여 세력을 불렸지만, 그 규모는 예비왜구 혹은 상품으로서 끌려다니는 포로가 포함되어 있다.
정도가 되겠네.
개인적으로는 동아시아 일대에서 '해적'이라는 아이콘이 일본의 풍습으로 굳은 시점에서 짜잘하게 따질거 있냐...는 입장이지만, 대충 학계의 입장은 이럼.
근데 사실상 일본에서 중앙정부가 들어설 때에나 사라지는게 왜구인데 흠....
3) 종식
1567년 가정제가 45년이라는 트롤링의 세월을 끝내고 죽고 융경제가 등극, 해금령을 철폐함. 일본에서는 한창 오다 가문이 파죽지세로 기나이로 진격하기 시작할 무렵임. 앞서 잠시 나왔듯이, 1587년에는 도요토미가 처음으로 해적 금지령을 내리면서 해적을 통제하고 조선에서는 흡-족했다고도 함.
그리고 일으킨게 임진왜란. 븅신들도 아니고 진짜.
4) 번외: 해역 아시아사
일본 학계에서 내세우는 개념으로 뭐 대충 대항해시대가 어떻구, 동중국해 해역으로 이어진 동아시아 국가들이 어떻구...뭐 그런거임. 전기왜구 파트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경계인으로서 동아시아 전체를 누빈 근대적 국민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 뭐 그런 사람들...이라고는 하지만, 근대적 민족이나 국민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자타인식이 유독 뚜렷했던게 동아시아인데 과연 이렇게 설명해도 될까.
어쨌든 지금도 일본학계에서는 전국시대 통일과 대항해시대를 엮고, 해역 아시아사를 통해 동아시아 사회의 연결고리로서 때로는 평화로운 교역을 하고 때로는 칼을 들고 도적질을 한 왜구에 주목하고 있음. 이걸 또 미디어에서 빨아주면서 오옷 역시 갓본!! 오래 전부터 아시아의 선구자!라고 하고 있지만...그럴때만 후기왜구 구성원이 중국인이라는 건 빼놓고 얘기하더라. 하나만 해라 좀.
그래서 나름 참신한 관점의 연구들조차 사실 목적을 정해두고 연구하는게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기때문에 어느 한쪽이 딱 맞다 이런식으로 단정짓기 어려움
내아직까지 논쟁이 활발한 영역이다보니 다루지 못한 관점도 있고 언뜻보면 이상한 관점도 있음
이쪽 전공이 아닌지라.. 그걸 다 정리하라고 하면
왜구는 왜구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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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자살
??? 왜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