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집
0-1 식민지 시절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644904
0-2 아르반드 루드 강점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646051
0-3 이란 혁명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647293
(1) 전쟁개시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648857
(2) 카망거 99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651088
(3) 호람샤르 공방전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652471
(4) 아바단 공방전 + 나스르 작전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657349
(5) 사멘 올라메 작전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663638
(6) 타리크 알 쿠드스 작전 + 파티흐 알 모빈 작전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689564
(7) 베이트 알 모카다스 작전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689565
(8) 소강기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1293096
외전(1) 한국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654311
외전(2) 반군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666044
1.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사담 후세인이 비록 호메이니에게 평화협상을 제의하기는 했지만, 호메이니가 협상에 절대로 응하지 않으리라는 건 세상 모두가 다 아는 일이었다.
때문에 사담 후세인을 비롯한 이라크 수뇌부는 양군이 소강상태에 놓인 얼마 안 되는 시간을 정말로 알차게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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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란군이 이라크 남부 최대의 무역항이자 석유 수출의 목구멍인 바스라로 밀려 들어올 것임을 직감하였고,
때문에 이라크군은 바스라 외곽에 미증유의 방어선을 설치하였다.
먼저 거대한 토벽을 이중으로 설치하였고 토벽 사이에는 철책과 무수한 양의 지뢰를 매설하였다.
그렇게 뚫고 들어온 병력을 맞이하는 것은 대전차 보병, 중기관총이 설치되어 있는 참호였다.
무엇보다 후방에 대규모 포병대를 준비하고 이란군 예상 공격로의 좌표를 미리 설정하였다.
이라크는 이란군의 인해전술이 제대로만 먹히면 얼마나 위협적인 전술인지 지긋지긋하게 겪었고,
그 인해전술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갈아버릴 수 있는지 철저하게 연구하고 또한 준비하였다.
그리고 제대로 축성된 야전 방어선이 인해전술에 즉효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주었다.
그 중에서도 장관은 지도에서도 보이는 장대한 길이의 해자였다.
길이 30km, 폭 1km에 달하는 이 거대한 인공구조물은 이후로도 이란군을 제대로 엿 먹일 이라크군의 회심의 한 수였다.
참고로 이러한 방어선 설치를 도운 이들은 외국의 군사고문들, 특히 소련과 동독 군사고문의 역할이 지대하였다.
물론 이러한 방어선을 유지하려면 기존 20만으로는 택도 없었기에 그는 거국적 징병명령을 하달, 이라크군을 순식간에 50만까지 불려버린다.
그렇다면 이라크인들은 이러한 징병명령에 기꺼이 응했을까? 정답은 YES였다.
이제 이라크는 공격을 하는 쪽이 아닌 당하는 쪽이 되었고, 사담 후세인의 전쟁이 아닌 이라크 국민들의 전쟁이 되었기 때문이다.
후세인은 국민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온갖 민족주의적 요소들을 들이밀었다.

이란에 페르시아 뽕이 있다면, 이라크에게는 바빌로니아 뽕이 있다.
무엇보다 사담 후세인은 호메이니와 달리 아주 정상적인 인물이었다. 조금 난폭하고 좀 권력욕이 강하긴 하지만.
이란군을 기습했음에도 사트 알 아랍 주변 이란 영토를 단 하나도 손에 넣지 못하자, 그는 미련 없이 전략목표를 수정하였다.
그의 전략목표는 단 하나였다. 그리고 아주 현실적이었다.
'공격은 없다. 무조건 방어로 간다. 이란군이 때리다 때리다 지쳤을 때, 그 때 평화협정으로 전쟁을 마무리한다.'
호메이니는 달랐다. 그는 이슬람에 미쳐버린 광신도였고, 현실 정치에 우매한 노친네였고, 현장 지휘관들의 조언에 귀를 닫은 무능한 지도자였다.
앞서 설명했지만 이란 현장 지휘부는 이 이상의 공세는 위험하다고 몇 번이나 조언하였지만, 호메이니는 막무가내였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카르발라를 통과한다'라는 격언을 현실에서 이루고자 하였고, 이를 위해서 나라 전체를 들어다 바칠 인물이었다.
문제는 호메이니의 이러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 호메이니만의 것이 아니란 것이었다.
이 이상은 인명피해를 감당할 수 없으니 자중해야 한다는 신중론은 테헤란을 비롯한 이란 전토에서 우뢰와 같이 터져 나오는 찬전론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이란 국민들은 피값을 받아내겠다며 전쟁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호메이니는 바그다드 함락, 그리고 이라크의 혁명 전진기지화를 전략목표로 삼는다.
결국 휴전을 외치던 신중론자들마저 백기를 들었고, 이란군은 본격적으로 전략수립에 나섰다.
이 때 이란 정규군과 혁명수비대간의 논쟁이 다시 한 번 벌어졌다.
이란 정규군은 만약에 굳이 침공을 해야 되겠다면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바그다드에 올인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혁명수비대는 굳이 그렇게 귀찮은 수단을 쓸 필요는 없다면서 바스라를 함락하면 이라크 남부에서 대대적인 시아파 봉기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호메이니는 바로 후자에 필이 꽂혔다.
그리고 수많은 설레발들이 그러했듯이 1983년부터 전쟁이 끝나는 1988년까지 이라크 남부를 뒤흔드는 시아파 인민봉기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혹자는 이 때 호메이니의 선택 때문에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이 무너져 내렸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이란의 전력으로 바그다드 몰빵이 가능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좀 심하게 드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1983년 7월 11일부터 이틀 간의 사전포격이 개시되었고, 7월 13일 일출을 기해 이란군의 라디오에서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송출되었다.
"오 시대의 주인이시여! 오 시대의 주인이시여!"
12이맘파의 전승에 따르면 12대이자 마지막 이맘 무함마드 알 마흐디는 874년 하늘로 승천하였으며 심판의 날에 그가 내려온다고 한다.
하여 시아파에서 알 마흐디의 별칭 중 하나는 바로 '사히브 알 자만'. 시대의 주인이었다.
시아파의 성지 카르발라를 손에 넣겠다는 이란군의 묘비명으로는 완벽한 신호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신호가 송출되자 파스다란과 바시 4개 사단은 이라크의 철옹성에 맨몸으로 돌진하기 시작하였다. 라마단 작전의 시작이었다.
이란이라크가 진짜 스케일크게 잘싸웠는데 별로 인지도가 없어 - 시진핑김정은개새끼
이거 바로 다음이 걸프전쟁이라서 그런 듯
연재 멈춘 줄 알았는데 개추! 이란~이라크 전쟁 자료는 되게 귀한데 계속 써줘서 ㄱㅅㄱㅅ
이란이라크 연재 개꿀잼으로 봣엇는데 이걸 다시보네
안이 형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와요
정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