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당시 안케 패스 전투에서의 국군. 6중대 아님)
1972년 4월 11일 월맹군이 안케 패스 기습적으로 점령하자
수도사단 기갑연대의 정태경 대위는 본인의 6중대 대원들을 이끌고
13일 아침, 헬리본을 통해 안케 패스 350고지에 긴급 전개됨.
1개 중대 병력이 헬리본을 시도했으나 적 AA에 당해 전개된 대원은 56명에 그치고
이들은 가까스로 개인호를 구축하고 하룻밤을 무사히 넘긴다. (D+1)
다음날 날이 밝고 6중대 3소대 손창윤 중위의 특공조가 반격을 시작.
포위를 형성하는 2개의 고지 중 더 위협적인 북쪽 고지에 대한 공세를 진행하나
4시간에 걸친 격전 끝에 공세는 돈좌되고 포위 상황은 타개되지 않음. (D+2)
15일 아침. 특공조를 재편성해 공격을 시도하나
이번에는 남쪽 고지에 대한 기만 작전을 수행한 후 기습적으로 북쪽 고지를 공격함.
총검과 총검, 뼈와 뼈가 맞붙는 백병전 끝에 북쪽 고지를 점령한 6중대는
AA에의해 재보급 및 MEDEVAC이 계속 차단되자 드디어 식수가 '완전히' 떨어짐.
15일부터는 6중대를 구원하기 위해 5중대의 연결 공격이 시도되었으나 돈좌됨. (D+3)
이러한 식수 부족은 18일 (D+6)일까지 지속 되었으며
일반 전투원보다 식수가 더 급했던 부상자들은 "차라리 총을 쏴서 죽여달라" 고 말함.
마침내 18일에는 105mm 포탄통에 담긴 10통의 식수를 헬기를 통해 전달하는데 성공 했으나
물에 눈이 뒤집혀 참호를 박차고 나온 대원들을 향해 월맹군의 포격이 떨어짐.
여기서 수치 불명의 인원들과 대원들을 통제하던 정태경 대위까지 큰 부상을 입음.
정신을 잃었다가 되찾은 정대위는 6중대 구원에 실패한 5중대장에게
"대한민국 육군 대위 정태경이는,
세계 평화와 자유의 십자군으로써
대한의 남아답게 용감히 싸우다 안케 계곡에서 장렬히 전사했노라" 는 유언을
결혼 100일밖에 지나지 않은 자신의 아내에게 전해달라 무전함.
대공포화를 뚫던 투입 당시부터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음에도
기적적으로 북쪽 고지까지 탈환한 6중대 대원들과 정태경 대위가 군가 '진짜 사나이' 를 부르자
5중대, TAC-CP를 포함해 P-25 무전기 통신망에 연결된 모두가 결사의 의지를 다졌다고 함.
18일 (D+6) 저녁,
포위망을 형성한 월맹군을 필사의 각오로 난타한 5중대가
마침내 정태경 대위의 6중대와 연결되는데 성공하고
정태경 대위는 살아서 을지무공훈장을 수여 받을 수 있게 되었음.
그리고 41년간 PTSD에 시달리며
공적을 자랑하긴 커녕 가족들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못하던,
어느새 노인이 되어버린 정태경 대위는
이제는 작은 오솔길마저 사라진 안케의 이름 없는 정글을
다큐멘터리 제작자들과 함께 익숙한듯 걸어
6중대가 포위 되었던 고지에 당도해 무릎을 꿇고 앉아 이렇게 말함.
안케 패스 전투
1972년 4월 11일 ~ 1972년 4월 26일.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쉬십시요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 dc App
자유대한의 진정한 영웅이란 바로 이분들을 말하는것 ///TWNO1
ㅜㅜ
이거 실베가자
호국의 신들이시여! 편히 잠드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6ZElUR9Xop8&t=677s
편히 쉬십시오. - dc App
아 울었다.......
정보글 개추 애국 개추
나도 늙었나.... 눈물이 다 나누
얼마나 목이 타들어갔을지 안타깝다
살아남은 우리들은 자라며 늙겠지만, 그대들은 늙지 않고 자라갈지니 나이가 그대들을 늙게 못하고 세월도 그대들을 비난하지 못할지어다. 태양이 질때와 아침이 다시 뜰 때 우리는 그대들을 기억하리라....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