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후에 호텔 라비에 앉아서 신문을 읽오 있노라니까 마래(말레이시아)에서 온 대표자가 먼저 인사를 한다.

여러 가지 대회의 유쾌한 경험을 다 이야기한 후 전쟁 중에 일병이 마래에 왔을 때에 얼마나 조선 사람이 일병의 부하가 되어서 잔혹한 행동을 많이 했다는 것과 자기는 마래에서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까닭에 많은 주목과 시달림을 받는 중에도 전 가족이 붙들려 조선 사람에게 무지한 고문을 당하였다는 말을 한다.

조선 사람의 칭찬이나 나오면 흥치가 날지 그만한 불평이 나오니까 입맛이 써서 말이 안나왔다. 온 세상이 조선을 몰라주는데 혹시 조선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그런 악인상을 통하여만 알려졌으니 참으로 불행이라는 감이 전기와 같이 머리 속을 찌르르하게 하였다.


우선 "같은 조선 사람이라는 연대책임을 느끼고 사죄를 하고 싶다"라고 대답한 뒤 이어지는 그녀의 응답은 조선을 대표하는 공식 문화 사절답게 외교적이고 '세련된'것이었다.

그녀는 말레이시아대표에게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첫째, "일본 군대에게 강제로 붙들려 간 것 만큼, 일본 사람이 신용할 만큼 하려면 일본 부하의 맻백 배를 해야만"되는 사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 "적국에 대한 잔학한 행동은 일부러 조선 사람들을 이용한 일이 많았으므로 그 고충이 있었을 것이요, 또 한가지는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일을 어떤 압박과 강제에 못 이겨서 할 때에는 반동적으로 더 전학하게 나가는 것이 이던 심리적 자연 발로인 듯" 싶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변명을 듣고 난 다음 말레이시아 대표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하기만 한 것이었다.

"우리도 그런 점을 다 생각하고 나서도 비난할 여지가 있다"라는 싸늘한 응답이 그쪽으로부터 돌아왔다.

결국 이러한 에피소드는 해방 직후 조선인들이가지고 있던 '피해자'로서 자기 정체성을 근저에서부터 뒤흔드는, 일종의 전율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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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서적에 기술된 1947년 4월 뉴델리 범아세아대회에 참여한 조선대표중 한명이었던 고황경의 일화



우리가 조선인 포로수용소 군속들을 비호할 여지가 어느면에서 존재하는건 맞으나 그렇다고 피해자로 중점을 두고 그들을 파악하고자 한다면


직접적인 피해자들의 싸늘한 시선밖에 남는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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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전에 조선인 군속자체를 피해자로만 포장해서 전시를 한걸 보고나서 그 생각이 더 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