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엔 1만의 당나라군한테 3~4만의 왜군이 전사자만 1만넘게 내고 탈털털린 백강전투.
9세기에는 신라난민 700명이 일으킨 반란을 2개 쿠니의 군대로 진압하려다 역으로 탈탈 털리고
인근 9개쿠니 군대 다 동원해서야 간신히 항복만 받아낸적 있었고
(당시 일본 지방행정구역이 60개 정도 쿠니로 구성됨)
11세기에는 50척 규모의 여진족 해적이 대마도, 이키섬 초토화시키고 큐슈여기저기 털고다니면서
그 과정에서 현지사급 관료가 여진족한테 참수당한적도 있음.
사실 여몽연합군 1차원정때 모습도 싸움 잘하는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지
근데 그 이후 180도 달라지는 모습들 생각하면 뭔가 몽골 때문에 각성한 느낌이 ㅋㅋㅋ
9세기에는 신라난민 700명이 일으킨 반란을 2개 쿠니의 군대로 진압하려다 역으로 탈탈 털리고
인근 9개쿠니 군대 다 동원해서야 간신히 항복만 받아낸적 있었고
(당시 일본 지방행정구역이 60개 정도 쿠니로 구성됨)
11세기에는 50척 규모의 여진족 해적이 대마도, 이키섬 초토화시키고 큐슈여기저기 털고다니면서
그 과정에서 현지사급 관료가 여진족한테 참수당한적도 있음.
사실 여몽연합군 1차원정때 모습도 싸움 잘하는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지
근데 그 이후 180도 달라지는 모습들 생각하면 뭔가 몽골 때문에 각성한 느낌이 ㅋㅋㅋ
???첨듣는데
여진해적이 미친수준이였음. 우산도도 그것때문에 망하고
여진 해적때문에 경주도 한번 뒤집어진적 있긴 함
근거는??
도이의 입구 검색
니가 찾아보셈.
그냥 일본 열도 인구수가 많아지기 시작하고 전국시대가 도래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거라고 봄. 신라구도 그렇고 일단 인구가 많아져야 범법자도 많아져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