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대왕이라는 별명이 워낙 인상적이다 보니, 미식과는 별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이미지의 감자대왕님이지만
알고 보면 머왕님이 가장 좋아하는 신나는 현실토탈워를 하지 않을 때는, 먹는 낙이란 플루트, 독서, 댕댕이와 함께
핵인싸녀였던 숙적 마리아 테레지아와는 달리, 아싸찐따였던 머앟님에게 있어 몇 안 되는 인생의 즐거움이었다.





즉위한 직후부터 서거하기 바로 전 해인 1785년까지, 대왕은 7코스 메뉴가 나오는 점심 만찬을 전쟁중이 아닐 때는 거의 매일 즐겼다.
궁정요리사들은 점심 만찬 메뉴를 하루 전에 꼭 작성하여 대왕에게 직접 제출하여 허가를 받아야 했다.
1780년 10월 23일의 메뉴판을 살펴보면, 당시 감자머앟님은 68세의 노인이 된데다 통풍, 치질, 만성 소화불량 등에 시달리고 있었는데도
"어린 양 소시지", "구운 꿩고기", "산토끼꽃과 완두콩이 곁들여진 갈비구이", "파르마 치즈를 뿌린 종달새구이",
"농어구이 조각과 백포도주 위에 크림을 넣은 과자", "백포도주 무한리필" 등을 완전히 무지성으로 즐기고 있었다.
똑같이 지병에 시달리던 만년의 마리아 테레지아가, 어의의 권유로 고기를 끊고
과일과 채소만 먹는 강제비건 생활을 했던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그렇지만 머왕님의 점심 만찬은 요리가 아무리 존맛이어도, 초대되는 사람들 입장에선 썩 즐거운 자리는 아니었다.
종종 만찬 중에 머왕님의 혼잣말에 가까운 수다가 끝없이 계속되면서 식탁 분위기가 어색해지곤 했기 때문이다.
이것만이라면 그래도 어찌 참아볼 만할 텐데, 진짜 문제는 감자머왕은 게이똥꼬섹드립이나 무지성 여혐드립 같은 좆노잼 저질개그를
남들도 자기처럼 존나 재미있어하는 줄 아는지, 밥먹다가도 갑자기 치곤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프로이센의 남자 "왕비", 대왕의 동성애인 프란치스코 알가로티가 점심 만찬에 참석할 때는 그래도 어느 정도 컨트롤이 됐었는데
알가로티와 머왕님이 사별한 뒤에는 갈수록 답이 없어졌다.



물론 프리드리히 대왕이 백성들이야 굶던말던 자기만 잘 쳐먹고 지낸 거야 아니었다.
7년 전쟁이 끝난 뒤, 자기가 일으킨 전쟁 때문에 대가리가 호되게 깨져보고도 여전히 무지성에 가까운 지지를 보내는 백성들에게
그 싸이코인 머왕님도 나름 미안함을 느낀 것인지, 곡물 관세 폐지나 식량창고 규모 확대 등을 통해
백성들의 식탁 사정을 적극적으로 챙겼다.
가격이 저렴한 해외 곡물의 원활한 유통을 위해 곡물 관세를 과감히 폐지하고, 밀에 대해서만 관세를 다시 도입하여
흰 빵을 즐기는 상류층이 아닌, 가난한 백성들은 적어도 감자 외에 검은 잡곡빵은 부담없이 먹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뿐만 아니라 1771~1772년 유럽 대기근 때는, 무려 군량미 창고를 열어서 백성들에게 공급하는 것을 허용하는
예전의 그 전쟁광 머왕님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독일 통합의 비전, 프리드리히 2세",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
크리스토퍼 클라크 저 "강철왕국 프로이센" 에서







아 왜 다들 내가 백성들한테 감자만 존나 쳐먹인 줄 아냐고...억울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