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초 현종이 따끈따끈하게 갓 즉위했던 시절.


요나라(거란) 성종은 "아! 고려 따먹고 싶다!" 를 외치며 친히 40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게 된다


흔히 여요전쟁이라 불리는 이 전쟁은 거란이 송나라 조지기 전에 미리 고려부터 조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작된 전쟁이었다.


그러나 요 성종게이가 싱글벙글 내려와서 싱글벙글 개선하여 돌아갈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한반도는 예로부터 침공군에겐 유서깊은 훌쩍훌쩍 지옥불반도였다.




서북면 도순검사 최전방사령관 양규: "ㅎㅇ"




흥화진 성: "ㅎㅇ"


압록강을 건너온 거란군이 처음으로 맞닥드린 흥화진이란 성은 양규 장군과 3000명에 달하는 고려군 병력들이 지키고 있었고, 처음에는 개 좆만한 성을 40만 대군이 못 깨겠냐고 자신만만한 성종이었지만 곧 좆망테크를 타게 된다.


좆같은 성 구조와 양규 장군의 우주방어를 맛보게 된 거란군은 미아핑을 찍으며 성종이 직접 지휘에 나섰으나, 공성하는 즉즉 실패하고 무려 일주일 동안이나 흥화진에서 발이 묶이게 된다.



"팀차이 ㅅㅌㅊ"


"니애미"


"ㅋㅋㅋㅋㅋㅋ"


난공불락의 흥화진에서 발이 묶인지 일주일


얼어붙은 압록강이 녹기 전에 빠르게 고려의 서렌을 받아내고 북상해야 했던 성종은 다급해졌고, 이에 병력을 반토막내서 20만은 예비대로 두고, 나머지 20만은 빠르게 남하시켜 현종의 항복을 받아내고자 했다.


그렇게 남하하던 거란군은 통주에서 회전을 벌여 고려군 실권자였던 강조와 30만 대군을 깨버렸으나 통주성은 끝내 함락시키지 못했다.


다만 인근에 있던 곽주성을 함락시키더니 6000의 병사를 배치하고 다시 개경으로 남하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양규 장군은 게릴라 각을 보며 깊숙히 남하한 거란군의 뒤통수를 거하게 후려까기 시작한다




"아직 게릴라 각은 살아있다"


이 때만을 노린 양규 장군은 700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흥화진을 나와 통주성으로 가더니 토탈 1000명의 군대를 수습했다.




그리고 이 1000명으로 하여금 거란군 6000명이 수성중인 곽주성을 공격해 모조리 몰살시켰으며, 이 말도 안되는 교전비로 말미삼아 아마 야밤에 몰래 기습했거나 성 안에 내통자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때 양규 장군은 7000명의 고려인 포로를 구출하여 피난시켰다.




어찌되었거나 싱글벙글하며 고려왕 잡을 궁리만 하던 요 성종은 곽주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에 뒤통수를 거하게 쳐맞곤 심히 빡치게 된다.


고려왕 현종은 저 멀리 남쪽 몇천리 너머로 런했다는 구라와 더불어 보급로와 퇴각로 역할을 하던 곽주성과의 컨택은 끊어지고

한민족 종특인 수성전과 수뇌부 빤스런, 게릴라 어택과 청야전술에 어질어질하던 요 성종은 결국 북상하여 본국으로 백하는 것을 택했다.



그러나 양규 장군은 그들을 곱게 보내줄 생각따윈 하지 않았다.


그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거란군 보급라인을 끊고 기동대처럼 활동하며 눈에 보이는 족족 거란군을 개패기 시작했다.




동시기 귀주의 김숙흥이라는 별장이 부관과 함께 1000명의 병사로 1만명의 적병의 수급을 취했으며,


동시기에 양규 장군은 대담하게도 예비대 20만이 주둔하던 무로대의 요군을 습격하여 2,000명의 모가지를 따버렸다


양규 장군은 곧 포로가 되었던 남녀 3,000여명을 해방시키고 다시 이수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석령까지 적군을 뒤질때까지 쫓아가 2,500명의 모가지를 따버리고 다시 포로가 되었던 1,000여명을 해방시켰다.


이 시기에 양규 장군은 김숙흥 장군과 합류했다




두 장군은 자연스럽게 합류하더니 힘을 합쳐 거란군 패기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3일 후 양규 장군은 다시 여리참에서 싸워 1,000여급을 베었고, 포로가 되었던 1,000여명을 해방. 다시 애전에서 적군 선봉과 싸워 1,000명의 모가지를 따버린다.


그러나 애전은 두 장군이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았다.




곧 요 성종이 이끄는 거란군 본대가 애전에 나타났다.


그가 이끄는 군대는 우피실군이라는 최정예 친위군이었고, 또한 그는 아직 병력들을 온존히 보존하고 있었기에 엄청나게 많은 병력이 양규와 김숙흥이 이끄는 결사대를 포위하게 된다.




해봐야 2000 언저리밖에 되지 않는 고려군 결사대는 두 영웅의 지휘 아래 구출했던 고려 군민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기 위해 성종의 친위군 우피실군에 맞서 싸웠다.




살이 떨어지고, 칼이 부러지고, 병사들이 모조리 쓰러질 때까지 말 그대로 처절하게 싸웠고, 마침내 힘이 다해 양규와 김숙흥 이하 고려군 결사대원 전원이 장렬하게 전사하게 된다.


고려사 열전에 따르자면 양규 장군은 온 몸에 화살을 맞아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약 2만이 넘는 거란군을 사살하고 곽주성을 탈환해 거란군이 퇴각하게 만들었으며, 또 3만여명의 고려 백성들을 구출한 양규 장군의 공은 그야말로 큰 것이었다.


그의 군공으로 살아돌아온 백성들은 다시금 노동력과 군사력에 보탬이 될수 있었으며


다시금 고려가 재기해 거란의 3차 침입에서 침입해온 거란 군대를 수성전이 아닌 대회전에서 개박살내고 전멸시킬수 있게끔 그 주춧돌이 되어 주었다.





3차 침입이 고려의 대승으로 끝난 뒤


현종은 양규의 아내가 죽을 때까지 그녀에게 곡식을 지급하라 명령했고, 양규의 아들에게는 벼슬을 내렸다


현종 10년, 현종은 양규 장군과 김숙흥 장군을 공신으로 삼았고, 현종 15년에 두 장군은 삼한후벽상공신에 봉해진다


이는 고려의 개국공신과도 같은 정도의 공신이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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