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의 잠수함 프로젝트 외에도 리코버는 원자력항모 연구에 관계되어 있었다. 그와 그의 부하들은 1950년 초 큰 수상함을 위한

원자력추진 문제를 연구했었다.


그들은 우라늄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 목적을 위해 우라늄을 사용하는 것은 적당한 일이 아니라고 결론지었었다.

동시에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의 구상은 원자력 잠수함을 개발하는 주요업무에 부가된 양동작전의 개념으로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원자력 추진력이 가져올 이득은 논의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해군대장 셔먼은 초대형 항공모함 미합중국함의 건조계획이 취소되자 바로 해군참모총장이 되었고

이에 뒤따른 '제독들의 반란'은 계속 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었다. 해군항공기 조종사로서, 셔먼은 항공모함의

철저한 신봉자였고 한국전쟁후 그와 비슷한 시기에 트루먼 대통령이 노틸러스함의 건조를 승인하자


셔먼은 함정국으로 하여금 원자력을 이용한 커다란 항공모함 건조가 가능한지 검토보고를 요청하였다.

또한 시간요소, 비용요소와 특성을 결정하도록 하였다. 리코버는 아르곤, 오크리지, 그리고 놀스의 GE사에 가능성에

관한 신속한 연구를 준비하도록 요청했다.


이 요구들은 2주 안에 충족되어 그로부터 열흘 후에 리코버는 합동참모본부로 보내기 위해 서명을 받기 위한 메모를

셔먼에게 건넸다. 1953년에 토지원형을, 1955년에 잠수함 설비공장을 완성하겠다는 계획을 제안하였다

셔먼은 잠수함 설비공장 안을 지우고 서명하였다


(중략)1951년 7월 셔먼이 사망한 한 달 뒤 원자력에너지 위원회는 웨스팅하우스 사에 원자로개발부의 민간원자로 개발자 감독하에

기술연구를 부탁하였다. 이러한 이례적인 지시의 근본원인은 공장이 플루토늄과 전기를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인데

리코버가 그 일을 했다면 그는 아마 즉시 잠수함 원자로의 축적을 그려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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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ICKOVER EFFECT - Theodore Rockwell 저, 국내 번역명 리코버 제독


제목은 어그로임 ㅈㅅ

항모니 원잠이니 그런 ㅈㄴ 큰 사업부터 총이나 보병장구같이 상대적으로 소소한 일이라도

최종결정에는 결국 ㅈㄴ 높으신 분들의 의향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예시를 들고 싶었음

대통령의 명령도, ㅈㄴ 쩌는 전문가의 의견도 자신의 의지로 몽니놓는 대장의 위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