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축성술은 후진적인가? 4부 : 중세 힌두 요새 : 돌 깎던 인도 장인



아래 글을 보기 전에 1~4부를 보시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북인도와 무슬림 국가들의 대포 도입


 일반적으로 티무르의 후손인 무굴제국의 초대 황제인 바부르가 인도에서 대포를 도입한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1368년 Adoni에서의 전투에서 바흐마니 술탄국의 모하메드 샤에 의해 최초로 대포가 사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도에서 무굴 제국을 비롯해서 무슬림 술탄국들에 의해서 대포와 총기가 본격적으로 운용되고 위력을 발휘한 것은 16세기 초반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6세기에 운용된 인도의 대포는 동시기 명나라나 조선과 비교할 때 압도적인 크기의 거포를 운용했습니다. 


 오스만 투르크는 무굴제국과 인도 내의 무슬림 술탄국에 빠르게 대포의 운용을 전파했습니다. 16세기 주조된 중포의 유물들은 현재까지 남아서 그 사실을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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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8년 디우 공성전에서 노획된 구자라트 술탄국의 거포---


 구자라트 술탄국은 포르투갈인들이 건설한 디우 요새에 대해 오스만투르크와 합세하여 공세를 감행했습니다. 이 공성전은 실패로 끝났고, 포르투갈인들은 길이 5.8m, 무게 20톤에 달하는 중포를 노획하였습니다.


 현재 리스본에 보관중인 이 중포에는 그 소유자인 구자라트 술탄 바하두르 샤를 찬미하는 명문이 아랍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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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9년 아흐메드나가르 술탄국의 터키 기술자에 의해 주조된 55톤의 거포---


 데칸 고원의 무슬림 술탄국 중 하나인 아흐메드나가르 술탄국에서 1549년 오스만 투르크의 기술자인 무하마드 빈 후세인 루미에 의해 이 55톤의 거포가 주조되었습니다. 술탄 부르한 니잠 샤는 이 대포를 그의 사위인 비야푸르 술탄국의 술탄 알리 아딜 샤에게 선물로 제공되었고 이 대포는 1565년 탈리코타 전투에서 남인도의 힌두교 국가인 비자야나가라 제국을 패배시키는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인도에서 대포를 운용한 대표적인 인물은 무굴 제국의 초대 황제 바부르입니다. 그는 한 때 오스만 제국의 셀림 1세가 그의 라이벌이었던 우바이둘라칸을 지원한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1513년에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셀림 1세는 Ustad Ali Quli를 바부르에게 파견하였고, 그는 바부르의 군대의 포병을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북인도에서 진행되는 정복과정에서, 무굴 제국의 대포는 분명히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바부르는 야전에서 적 기병을 저지하고 격퇴하는데 대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였고, 정복의 장애물이 된 강력한 라지푸트인들의 요새를 공략하는데 대포를 투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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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부에서 소개한 바 있는 라지푸트인들의 Chittorgarh 요새는 사진에서 보이는 152m 높이의 험준한 언덕 위의 강력한 요새였습니다. 무굴제국의 3대 황제 악바르 대제는 1567년 이 요새를 포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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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7년 Chittorgarh 요새의 공성전의 기록화----


 위의 기록화 중 오른쪽의 것처럼 무굴 제국군은 대포를 배치하여 포격을 실시했습니다.

 3개의 포대가 포격을 계속하는 동안 공병들이 성에서의 원거리 화기나 습격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일종의 엄폐된 참호인 Sabat를 건설하면서 성벽에 접근했습니다. Sabat는 통나무로 된 지붕이나 벽으로 엄폐되어 있었습니다. 무굴제국의 Sabat는 공성포를 옮길 정도로 넓어서 일부는 10명이 나란히 서있을 정도의 너비에 코끼리와 기수를 숨길 정도로 깊이 파여졌습니다.


 58일만에 성벽 밑에 지뢰를 설치하여 폭파시켰습니다. 하지만 수비병들은 돌파구를 봉쇄하는데 성공했고, 악바르 대제는 Sabat를 점점 성벽 가까이 옮겨가며 벽에 접근했고, 마침내 여러 곳에서 성벽을 돌파하는데 성공하여 함락시키고야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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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 위 가파른 언덕 위에 건설된 라지푸트인들의 Ranthambore 요새---


 Ranthambore 요새 역시 라지푸트인들의 대표적인 언덕 요새 중 하나입니다. 이 요새는 언덕 아래와 언덕 위의 높이 차이가 80m 정도로 가파르고 그 위에 성벽을 쌓아올린 요새였습니다. 이 요새는 Chittorgarh 요새를 함락시킨 악바르가 바로 이어서 공략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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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8년 Ranthambore 요새의 공성전의 기록화---


 악바르 대제는 무굴제국에서 가장 큰 대포를 끌고 왔고 위의 왼쪽 기록화 처럼 공성용 중포를 3곳의 언덕 위까지 끌어올려서 포대를 배치하고 포격을 시작했습니다. 공성이 지속되면서 악바르는 더 거대한 공성포와 우측 기록화처럼 작지만 초속이 빠른 경포를 추가로 배치하고 포대의 위치를 성벽 가까이 옮기기 위해 공병들이 Sabat를 건설하도록 했습니다. 

 포격은 요새 내부를 불태우고 파괴시켰고 악바르는 성문근처에서 병력을 집결시켜 공격을 준비했습니다. 공성이 시작된지 2개월도 안되서 요새는 항복했습니다. 


 이처럼 북인도에서 무굴 제국의 중포들은 험준한 언덕 위에 설치된 강력한 라지푸트인들의 요새들을 점령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새로운 위협에 가장 먼저 대응한 것이 힌두 국가들보다 인도 내의 무슬림 국가들의 요새들인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사용자들이야 말로 그 위력을 절감했을 테니까요.


 뿐만 아니라 오스만 투르크를 비롯하여 이라크, 이란에서 많은 기술자들이 인도의 무슬림 국가로 유입되어 무슬림 국가의 기술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무슬림 요새들은 이를 통해서 중동 지역의 영향을 받으며 독특하게 발전해 나갔습니다.




무슬림 요새들의 화약시대에 대한 대응


 인도 내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화약시대의 무슬림 요새들의 성벽 길이는 다양합니다. 7~10km에 달하는 긴 성벽을 자랑하는 경우도 있고, 많은 경우는 3km 정도이며, 더 작은 경우도 있습니다. 모든 성벽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건축된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남아있지도 않습니다. 10km에 달하는 Bijapur 요새는 현재는 일부 성벽만이 남아있습니다. 


 강력한 요새이면서, 동시에 아름답기 그지 없는 무굴제국의 Agra요새는 무슬림 방식 요새건축을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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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제국의 Agra 요새 내부성벽의 대형 성돌. 성돌 사이의 얇은 것은 모르타르가 아니라 얇고 길게 가공한 석재이고, 그 사이에 모르타르를 사용했다.-----


 Agra 요새는 1565~1573년 동안 무굴제국의 악바르 대제 시절에 지어졌습니다. 이 요새의 거대한 성돌과 원형으로 지어진 탑은 무슬림식 요새 건축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바로 건너편에 전설적인 궁전 타지마할만 없었다면 이 요새는 훨씬 더 인기있는 관광지였을 겁니다.


 유럽의 Trace Italiane, 성형요새가 중세의 전통적인 높은 석조 성벽을 포기하고, 전체적으로 성벽의 높이를 줄이고, 돌보다 벽돌을 점차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면, 인도인들은 돌로 건축한 높은 성벽을 포기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유럽의 요새건축과 구분되는 15~18세기 인도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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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10km에 달했던 Bijapur 요새의 성벽, 우측 이미지를 보면 성벽의 전체 두께를 볼 수 있다. 내탁식으로 뒤를 흙으로만 쌓은 것처럼 보이지만 협축 형태로 뒤쪽이 석벽으로 마감되어 있다.----


 대신 그들은 보다 때로 크고, 매우 섬세하게 가공된 성돌로 성벽을 매우 두껍게 건축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Agra 요새는 아름다운 붉은 색의 커다란 사암으로 지어졌습니다. 모든 요새들이 이렇게까지 거대한 성돌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성돌들은 잘 가공되었습니다.  어떤 요새들은 단단한 화강암으로 지어지고 석회 모르타르로 접착되고 때로는 철제 죔쇠로 돌과 돌 사이를 보강했습니다. 


 두터운 성벽 내부는 흙으로 채워지며, Bijapur같이 단일 성벽으로 구축된 요새 외벽은 최대 9~10m의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높이는 10m에 달합니다. 




무슬림 요새의 이중성벽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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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ra 요새의 이중성벽 구조, 해자 바로 뒤에 보조성벽이 있고 그 뒤에 더 높고 두터운 주성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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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벽 위에서 바라본 Agra요새의 보조성벽과 해자, 해자에 약간 아래로 내려간 부분이 있는데 여기에 총병을 배치해 엄폐된 상태에서 접근하는 적에게 사격을 가했으리라 추정된다.----


 15~18세기 무슬림식 요새 중 일부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특징은 이중성벽구조입니다. 해자 바로 뒤에 낮은 높이의 보조성벽이 위치하고 그 뒤에 매우 높은 주 성벽이 존재합니다. 중세 후기 유럽의 성곽에서 나타나는 내성을 감싸는 외성벽과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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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Parenda 요새의 이중성벽과 단면도, 보조성벽은 옹벽 형태고 그 위에 협축으로 쌓인 주성벽이 있다.----


 15세기 데칸고원의 바하마니 술탄국의 재상이자 이슬람 학자, 수학자였던 마흐무드 가완에 의해 건설된 Parenda 요새는 전체 구조적으로는 사각형에 가까워서 근세 유럽의 성형요새와는 전혀 다르게 생겼지만 이중 성벽의 단면은 성형요새가 가지는 특징들을 부분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자로 인해 지표보다 그다지 높지 않은 보조성벽은 대포의 사격에서 피탄가능성이 낮아지고, 해자 너머에서 접근하는 적에게 비슷한 높이에서 직사사격을 퍼부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이 보조성벽이 점령되어도 공격자는 주성벽의 사격에 노출되며, 주성벽은 보조성벽에 가리지 않고 그 너머의 적에게 포격과 사격을 가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보조성벽의 외벽이 무너지더라도 옹벽 형태이기 때문에 주성벽의 엄호하에 보수할 수 있겠죠. 포격에 상대적으로 쉽게 노출되는 주성벽은 두꺼울 뿐만 아니라, 무너지더라도 보조성벽이 멀쩡하면 당장 돌파가 어렵습니다.


 이중성벽은 15세기 이후 인도요새건축에서 중요한 혁신이지만 모든 인도 요새가 이중성벽 구조를 갖추진 않습니다. 무슬림의 영향은 성벽의 치성구조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바로 원형 탑, 성벽에 돌출된 원형의 치성구조물입니다.



무슬림 요새의 원형 탑과 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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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술탄국에 11세기에 지어진 Lal Kot 요새 외성벽의 원형 탑, 가공되지 않은 잡석을 모르타르를 사용해서 쌓았다.----


 무슬림 요새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반원형 형태의 치성 구조물입니다. 다만 이것은 대포의 등장에 의한 결과는 아닙니다. 11~12세기에 지어진 델리 술탄국의 요새 Lal Kot의 외성벽에는 이미 반원형 치성 구조물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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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데칸 고원 하이데라바드에 위치한 골콘다 요새의 다각형 탑---


 모두 원형 탑을 사용한 것은 아니고, 6각이나 8각으로 다각형 구조로 건설된 경우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치성 구조물은 반원형으로 지어졌습니다. 원형 탑의 구조는 십자군 시대의 중동 이슬람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며, 북인도에서 시작되어 데칸 고원의 무슬림 술탄국들로 퍼져나갔을 것입니다. 


 기존 4각형 탑을 반원형이나 다각형으로 교체하는 것은 4부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공성무기의 공격에서 요새방어의 중점이 되는 탑에 가해지는 공성병기나 굴착을 통한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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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스탄의 Kumbalgarh 탑과 성벽의 Batter 또는 Talus라고 불리는 강화구조, 이 구조는 사다리같은 공성병기가 성벽에 붙는 것을 방해하고, 구조적 안정성을 증가시키며, 성벽 위에서 성벽 밑을 공격하기 쉽게 만든다.----


 북인도의 델리 술탄국, 무굴 제국이나 라지푸트인들의 요새 일부에서는 이러한 반원형 치성구조물에서 한발 더 나아가 성벽 하부를 보호하는 독특하고 이국적인 Talus 구조가 나타나지만, 이는 일반적인 건축방식은 아니었고, 데칸고원이나 남인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무슬림 요새들에서 4각형 탑은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기존 유적들에서 4각형 탑이 남아있는 경우가 존재하지만, 예전의 성벽을 재활용하는 경우이고, 새로 성곽을 쌓거나 개축하는 경우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반원형 탑 또는 치성이 대포에 대한 방어를 제공하고자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아닐지라도, 기존의 4각형 탑에 비해 대포의 사격에 보다 강화된 방어력을 제공했습니다.


 4각형 구조는 포탄이 수직으로 탄착하게 만들어 포탄의 위력을 증가시키고, 4각형 탑의 모서리 부분이 파괴되면 무너지기 쉽습니다.  반면 반원형 구조는 포탄이 명중했을 때 탄착 각도가 어긋나기 쉽고, 구조적으로 더 안정적이며, 모서리와 같은 취약부분이 없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 성곽의 치성과 유사한 구조물은 4각형 형태로 모서리를 가지는 방식으로 건설되었습니다. 이는 동북아 성곽들에 대해 굴착이나 발전된 공성무기의 위협이 제대로 가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무슬림 요새에서 화약시대에 들어오면서 원형 탑들은 보다 대형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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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dgal 요새의 원형탑, 이 흥미로운 요새는 건축형식은 무슬림 방식이면서도 성벽 자체는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고 메쌓기 방식으로 지어졌다. 대형 성돌을 치밀하게 가공하여 바른층쌓기로 쌓아 수직으로 쌓아올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포에 효과적으로 저항하기 위해 탑의 크기가 커지고, 그 벽의 두께도 두꺼워졌습니다. 이 시기 주성벽의 원형 탑의 직경은 약 11m에서 큰 경우 33m에 달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지점에 위치한 원형 탑들은 잘 가공된 거대한 성돌들로 면석을 쌓고 그 내부는 잡석과 흙으로 채워졌습니다.(가장 튼튼한 경우는 잡석과 모르타르를 섞어 경화시킵니다.)


 화약시대 이전의 원형 탑은 성벽과 동일한 높이인 경우가 많았으나 화약시대에는 성벽보다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대체로 성벽보다 3~4m 높이까지 높아지는데, 위에서 사진으로 소개한 Bijapur의 탑은 9m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주성벽의 거대한 탑들이 방어용이 아닌 공격용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유럽에서 성형요새가 본격화되기 전에 과도기적으로 기존 성곽을 개축하거나 새로 건설된 원형 포탑인 Gun Tower와 유사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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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기에 건설된 영국 Pendennis 성의 원형탑 단면도와 외부 사진, 원형탑의 석벽 두께는 3.36m에 달한다.----


 인도 무슬림 요새는 이러한 유럽의 과도기적인 두꺼운 포탑과 교묘한 건축에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대형 화포를 운용하기에 적합한 포대를 배치할 수 있도록 원형 탑들을 활용했습니다. 대부분의 탑 위에는 대포를 설치하여 측면 사격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포대와 무슬림식 여장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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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Basavakalyan 요새의 포대와 대포, 대포의 포가는 아래 돌에 박혀서 회전이 가능하다.----


 대체로 인도 무슬림 요새의 가장 대형 포대는 주성벽에 있는 탑에 설치됩니다. 때로 중앙에 대포의 포가를 박아넣을 수 있는 대형 원형 석재가 중앙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근세-근대 유럽 요새들의 포대에 비해서는 미흡하지만, 동시기 명나라, 청나라나 조선과 비교할 경우 압도적으로 대형의 화포를 성벽 위에서 운용가능하도록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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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Gulbarga 요새의 탑 위의 포대에 설치된 대구경 화포---- 


 이중성벽 구조의 무슬림 요새의 경우, 낮은 보조성벽에 설치되는 포대가 설치되는 경우도 있고, 일부 경우에는 성벽과 별도로 분리된 원형 탑을 세우고 그 위에 포대를 설치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무슬림 요새는 중포의 운용을 고려한 포대를 설치함으로서 접근하는 적을 원거리에서 저지하고, 적의 공성포를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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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요새의 이중성벽 구조와 반원형 치성구조물의 살상구역----


 기존의 4각형 치성구조물은 성벽 아래쪽에 인접해 사각 안으로 들어간 적을 투사무기로 공격하는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전통적인 방식에 적합합니다. 하지만 무슬림식 요새의 이중성벽 구조에서 반원형 성탑은 화기 운용을 상정하여 발전하였습니다. 성벽에 적이 접근하기 이전에 각 원형 탑 위에 배치된 중포가 최대한의 사격각도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구조적으로 반원형 치성 구조물은 성벽에 가깝게 붙은 적 보병에게 4각형 탑에 비해서 최적의 사격각도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이는 무슬림 요새가 고대로부터 이어진 전통적인 보병의 사다리 등을 이용한 직접적인 공격보다는 원거리에서 가해지는 공성포의 공격을 더 위협적으로 느꼈음을 이해하게 해줍니다.


 즉 무슬림 요새는 포탄에 피탄될 때 구조적으로 안정적이고 튼튼한 원형 구조를 통해 포탄의 위력을 감소시키고, 화약무기의 적극적 활용을 통해 보다 멀리서부터 적을 공격하는데 목표를 두고 설계되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도의 모든 무슬림 요새가 이중성벽을 갖춘 것은 아닙니다. 보다 광범위하게 전파된 것은  생각보다 방어력에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되는 것은 바로 여장(Merlon)입니다. 




무슬림식 여장과 Machico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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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술탄국이 1321년 건설한 Tughlaqabad 요새 유적의 무슬림식 여장, 이런 조잡한 형태에서 모르타르를 사용한 형식으로 발전한다.---


 여장은 성곽 위에 설치되어 수비병력이 몸을 보호하면서 적군을 공격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난간 구조물을 말합니다. 메쌓기식 성곽의 여장 구조물은 한국이던, 인도던 간에 거의 남아있는 경우가 드물어서 당시의 형태에 대해서는 추정만이 가능하지만, 무슬림식 여장은 모르타르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현재까지 흔적들이 잘 남아 있습니다.


 인도의 무슬림식 여장의 특징은 위와 같이 위로갈수록 뾰족한 형태의 디자인과 중간에 비어있는 영역이 허리 쯤까지만 내려오는 유럽식 여장과 달리 몸 전체가 드러날 만큼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장의 인도에서의 최초 등장은 델리 술탄국에 의해 1303년 건설된 Siri요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슬림식 여장은 기존 인도 성곽의 방어력을 대폭 강화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모르타르를 사용한 성벽과 함께, 수비병이 안전하게 공성측을 보다 다양한 각도로 공격할 수 있는 복잡한 방어구조의 건축이 용이해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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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무슬림식 여장의 다양한 구조와 Machicolation과 Loophole----


 Tughlaqabad 요새의 통짜 돌을 가공해서 쌓은 여장도 있지만, 모르타르의 사용은 잡석을 사용하더라도 충분히 크고 복잡하게 구멍을 만들 수 있어서 수비병의 몸을 노출하지 않고 적을 공격하기 용이한 시야와 총안을 만들기 용이하게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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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의 복원 전 여장, 자연석으로 총안을 만들었다.----


 메쌓기 방식으로 여장을 쌓는 것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무너지기가 쉬울 뿐더러 무슬림식 여장이나 중세 유럽 성곽의 Arrowslit과 같이 시야는 넓게 유지하면서도 수비병을 거의 노출하지 않는 공격용 구멍을 제작하는 것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조선의 경우는 후기에 가서야 벽돌과 석회를 사용한 여장이 남한산성이나 수원화성을 포함하는 일부 성곽에 사용되는데 그쳤습니다. 이는 고려시대나 조선의 성곽들의 방어력이 제한되도록 만들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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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 성곽의 Arrowslit의 내부구조, 모르타르를 사용한 성벽은 보다 복잡한 구조를 만드는데 용이하다.----


 무슬림 요새는 모르타르를 사용함으로서 여장 내부, 또는 성벽이나 탑의 안쪽에서 거의 노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를 공격할 수 있는 중세 유럽의 Arrowslit과 같은 구조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러한 구조는 주로 성벽에 보다 근접한 공격자의 화살이나 총탄으로부터 수비병력을 보호하고 사격을 가하는데는 적합하지만, 강력한 공성포의 공격을 받는 것을 상정할 경우에 적합한 것은 아닙니다. 무슬림 요새의 이러한 특징은 15~18세기까지 인도아대륙에서의 공성전이 상당부분 중세적 성격, 즉 근접해오는 적 보병의 위협을 여전히 상당부분 강하게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화약시대에 무슬림 여장은 단순히 근접한 적의 화살이나, 투석기에서 발사된 돌이 아니라 총기와 대포의 사격에 대처해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는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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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식 여장(Merlon)의 거대한 크기와 두께는 인상적이다.----


 4부에서 소개한 힌두 요새인 Warangal의 경우, 석조 여장의 높이는 1.7m, 너비 70cm, 두께 45cm에 불과했으나, 무슬림식 여장의 높이는 적어도 2m, 너비가 2m이며 두께는 1m에 달하며 잡석이나 가공된 석재로 만들어 집니다. 현재 남아있는 무슬림 여장들의 경우 가장 높은 경우는 2.75m, 가장 넓은 경우는 3.2m, 가장 두꺼운 경우는 1.95m에 달합니다.


 이러한 두껍고 거대한 여장의 대형화는 공성포의 위협에 대응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여장의 대형화가 유럽과는 조금 다르게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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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Pendennis 성의 중앙탑 상부의 여장두께와 구조----


 유럽에서도 적의 포격에 대응하기 위해 두터운 여장을 사용하는 것은 유사하지만, 본격적인 화약시대의 여장 구조는 오히려 중세 유럽에 비해서 단조로와졌습니다.


 과도기적인 성격의 영국의 Pendennis 성의 중앙 원형탑 옥상의 여장을 보면 총안이 없고 단조로운 요철식으로 되어있습니다. 본격적인 성형요새 시대로 가면 유럽에서는 요철형 여장이 아닌 평평하게 이어지는 흉벽(Breastwork)이 소총수들이 엄폐하는 여장 역할을 하게 되고, 총안(embrasure)은 대포를 배치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됩니다. 


 남인도의 일부 요새들에서는 18세기 중반의 마라타 연방의 시대에 유럽식으로 개조된 것으로 보이는 보다 넓은 시야를 제공하는 요철형 여장들이 등장하지만 일반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화약무기의 발전으로 총병의 사격에서 엄폐보다는 시야의 확보가 더 중요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무슬림 요새의 여장은 중세적 성격과 화약무기로 인한 변화를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15~18세기 무슬림 요새의 과도기적 특징을 보여줍니다. 좋게 이야기하면 독특하고, 부정적으로 보면 정체되어 있습니다. 


 이런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 무슬림 요새의 Machicolation 구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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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 성곽의 Machicolation 구조와 돌던지기 그림---


 Machicolation은 중국이나 한국 성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방어구조물입니다. 성벽의 여장부에서 돌출한 이 구조물은 중동에서 유래하여 십자군 전쟁을 통해서 유럽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체로 13세기 프랑스 성곽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구조는 성벽에 돌출한 석조 구조물로 적의 원거리공격에 노출되지 않고 성벽에 붙은 공격자에게 투석이나 화살로 공격을 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구조입니다. 이 구조가 나타나기 전에는 Hoarding이라는 목재구조물을 성벽 위에 올려 성벽 바깥쪽으로 돌출시켜서 유사한 역할을 수행했는데, 화재에 취약하고 목재가 비에 썩을 수 있어 임시구조물에 가까워서 점차 영구적인 석조 구조인 Machicolation으로 대체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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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성곽의 이시오토시, 돌로 쌓인 부분과 회칠한 부분 접점 바로 위에 있는 에어콘 처럼 생긴 구조물, 저 아래 구멍으로 조총을 쏜다.----


 목재로 만들지만 매우 유사한 일본 성곽의 구조물로 이시오토시(石落とし)가 존재합니다. 이런 구조물은 성벽 바로 아래까지 접근하는 적 보병을 여전히 위협적으로 느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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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15세기 Fortezza Firmafede의 원형 포탑과 그 위의 Machicolation----

 

 성형요새로 옮겨가기 전 과도기적인 성격의 초기 유럽 요새의 일부에서 유사한 사례가 존재하지만 점차 줄어들게 됩니다. Arrowslit과 마찬가지로, 유럽에서 화약무기가 발전하면서 이러한 성벽 바로 아래를 공격하는 용도의 구조물은 사라져갑니다. 성벽과 여장의 구조는 화기의 유효사거리를 최대한 활용하는 형태로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요새의 벽 바로 아래를 공격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졌습니다. 간혹 성형요새의 보루 모서리 위치의 성벽 상단에 Machicolation이 설치되는 경우가 존재하지만 일반적인 것은 아닙니다. 성형요새는 수비병이 돌을 던지거나 소총을 직접 사격하는 방법보다는 대포를 사용한 살상구역을 최적화 하기 위해 기하학적으로 건설된 측면에 위치한 보루(Bastion)에서 포격을 가해서 지원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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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dgal 요새 성문의 Machicolation----


 중동 이슬람국가들의 영향으로 인도의 무슬림 요새들에 도입된 것으로 보이는 이 구조는 무슬림식 여장과 마찬가지로 15~18세기 무슬림 요새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됩니다. 인도의 Machicolation은 위에서 소개한 유럽 성곽의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형태는 매우 드물게 존재하고 대부분은 성벽이나 탑, 성문에 돌출해있는 독립적인 작은 사각형 구조물들로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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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복원된 성곽의 현안의 외부와 내부에서의 모습----


 이 사각형 구조물은 여장의 일반적인 돌출부(Merlon)들 일부에 설치되는데, 명나라나 조선 후기 성곽에서 도입된 현안(懸眼)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다만 Machicolation이 비교적 더 넓은 시야와 공격각도를 제공합니다. 양자 모두 성벽에 인접한 적 보병을 공격하는데 초점을 두었다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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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Golconda 요새의 Machicolation---


 이후 소개할 힌두식 메쌓기 방식 요새들은 모르타르 없이도 정교하게 석재를 가공해서 Machicolation을 건축하였지만, 이런 비교적 복잡한 구조를 성벽 바깥으로 돌출시켜 시야를 확보하는데는 모르타르의 사용이 효율적입니다. 성벽에서 돌출된 구조가 충분히 튼튼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도 말입니다.


 인도 요새들에서 발견되는 Machicolation은 화약도입 이전에 도입되었겠지만, 데칸고원의 대부분의 요새에서 발견되어, 화약도입 이후에도 꾸준히 건설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북인도와 데칸 고원을 비롯한 15~18세기 무슬림식 요새들이 유럽식 근세 성형요새들처럼 성벽을 낮추기보다 여전히 높은 성벽을 유지한 원인을 유추하게 해줍니다. 


 대포와 총기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이전에 비해 인도 요새들의 살상구역은 성벽 가까이에서 좀 더 먼 지역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벽 바로 아래쪽에게 접근하는 보병의 위협을 완전히 부정할 정도는 아니었던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러한 복잡한 이중적 성격이 15~18세기 인도 요새들이 가지는 흥미로운 특징이 아닐까요?


 무슬림 요새의 발전과 전파는 기존의 메쌓기 방식의 힌두 요새들을 상당부분 대체했습니다. 하지만 남인도에서 힌두 요새의 전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유지됩니다. 이들은 어떻게, 그리고 왜 사라지지 않고 생존할 수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