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키예프 공국과 몽골 제국의 침략
키예프 공국의 영역
서기 882년부터 1240년까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서로의 구분이 없이 같은 키예프 공국으로써 하나의 민족이자 같은 나라였는데,
1237년에 몽골군이 키예프 공국을 침공했고, 1240년에 키예프 공국이 멸망하면서 현재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지역은 전부 몽골 제국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되었음.
몽골제국의 분할
그러다가 몽골제국의 마지막 대칸이었던 쿠빌라이 칸이 129,4년에 사망하게 되면서 몽골제국은 공식적으로 원나라와 4개의 칸국으로 분할되었고, 각 칸국들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를 관통하는 드네프르강
몽골제국으로부터 독립한 킵차크 칸국(짙은 녹색)과 러시아 속령(연두색)
킵차크 칸국은 몽골제국으로부터 떨어져 나오자 마자 드네프르강 중류를 기점으로 해서 그 남쪽 지역(현재의 우크라이나)만 자신들이 직접 통치하는 것으로 정했고,
그 북쪽(현재의 러시아) 지역에는 킵차크 칸국에게 충성하는 수 많은 공국들을 둬서 그들을 간접통치 하기로 했었는데, 이러한 결정이 지역적으로 현재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가르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음.
2. 이후의 러시아 역사
아무튼, 킵차크 칸국의 이러한 결정으로 현재의 러시아 지역에는 수 많은 공국들이 세워졌었는데, 킵차크 칸국은 이들을 직접통치 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 지역의 각 공국들에는 킵차크 칸국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정간섭을 하면서 간접적으로 통치하는 것이 가능했으며, 각 공국을 통치하는 대공들은 킵차크 칸국의 칸에게 충성하면서 세금을 바쳐야 했었음.
물론, 1380년에 러시아 지역에 위치한 모스크바 공국이 반기를 들어서 킵차크 칸국의 군대를 몰아내기도 했지만, 1년도 못가서 다시 정복당해 킵차크 칸국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가기도 했음.
이반 3세, 모스크바 공국을 킵차크 칸국으로부터 독립시켜 러시아의 초석을 다지다.
그러다가 1462년에 모스크바 공국에서 이반 3세라는 인물이 등장해 주변의 러시아 공국들을 차례로 흡수하기 시작했고, 드네프르강 중류를 기점으로 북동 지역을 모두 정복해버려 국력이 강성해지자 1480년에 이르러서야 공식적으로 킵차크 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하게 될 수 있었던 거임.
킵차크 칸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할 당시의 모스크바 공국 영토
그렇게 지금의 러시아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아무튼, 몽골제국의 지배까지 더 하면 약 250년간 외세의 지배를 받았던 러시아가 독립을 선포하게 된 1480년부터 모스크바 공국을 중심으로 해서 역사가 흘러가게 되었고,
그 이후의 역사는 모두들 알겠지만, 모스크바 공국이 1550년에 루스 차르국이 되었고, 루스 차르국이 시베리아를 개척하면서 동진하다가 1700년에 러시아 제국이 되었으며, 그 러시아 제국이 1800년대부터 대영제국과 그레이트 게임을 했던 역사임
3. 러시아와 500년간 별개의 나라였던 우크라이나의 역사
지금까지 러시아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했다면,
이제 킵차크 칸국이 직접 통치했다는 드네프르강 중류의 이남지역, 즉 현재의 우크라이나 지역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하겠음.
일단 우크라이나 지역의 대부분은 러시아 지역과는 다르게, 킵차크 칸국으로부터 직접 통치를 받다가, 좀 더 이른 시기에 킵차크 칸국의 지배로부터 벋어날 수 있었는데,
우크라이나를 정복한 리투아니아의 알기르다스
1360년대에 리투아니아의 알기르다스 대공이 키예프 지역을 점령한 것을 시작으로 해서 킵차크 칸국의 군대를 격파하고 1390년대에 현재의 우크라이나 지역을 대부분 정복하게 된 것이었음.
우크라이나 지역을 정복한 14세기 말엽의 리투아니아의 영토
16세기 중순에 형성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영토
그 이후 우크라이나는 200년간 리투아니아의 통치를 받았었는데, 1569년에 리투아니아와 폴란드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통치를 받게 되었고, 179,4년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삼국(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에게 분할되어 사라지기 전까지 우크라이나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통치하에 있었음.
즉, 우크라이나 지역은 아주 오래전인 킵차크 칸국이 형성될 때부터 러시아와는 완전한 별개의 지역으로 갈라졌으며, 그 이후 1360년대부터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의 지배를 받아 약 500년간 러시아와 떨어져 지냈었기 때문에 러시아 민족과는 별개인 우크라이나 민족이라는 하나의 민족 의식이 형성될 수 있었음.
스탈린의 봉쇄정책으로 우크라이나인 350만명이 아사하다
아무튼, 러시아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영토 중에 일부였던 우크라이나 지역을 차지하고부터 1991년에 소련 연방이 해체되기 전까지 우크라이나는 약 200년간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왔었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지역을 점령지 정도로 여겼으며, 같은 슬라브 계통인데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민족을 피지배민으로 여겼었음.
안그래도 500년간 떨어져 지내서 러시아와는 별개라고 생각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스탈린 치하에서 막대한 차별을 받았었기 때문에 더더욱 러시아와는 별개의 민족이라는 의식이 강해졌던 것임.
그러니까 우크라이나는 폴란드라는거지? - dc App
폴란드가 위대한게 아니라 리투아니아가 위대한거지
우크라이나내 러시아계 주민들은 어케 오게된거임
우크라이나 동부에 철광석,석탄,티타늄 등등 광산지대가 풍부해서 소련 치하때 러시아인들이 광부로 일하러 우크라이나 동부에 많이 넘어옴.
예카테리나 대제 때 오스만과 전쟁해서 크림반도, 오데사, 오늘날 드네프르 동부 일대를 획득하고 거기에 러시아인들을 이주시켰음.
그때 예카테리나 대제가 오늘날 기준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에 부여한 지명이 '노보러시아(새로운 러시아)'임. 약간 뉴 암스테르담, 뉴 욕 같이 당시 식민열강들이 획득한 땅에 의미를 부여하던 맥락과 비슷하게 생각하면 됨.
그런 역사적 배경에서 착안해서 오늘날에 그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노보러시아 노보러시아 그러는 거
저기 딱 보면 오늘날 우크라이나 영토 기준으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점유하고 있던 땅과 아닌 땅 보면 위에 대댓으로 말한 게 딱 보임. 저 지도에서 폴리투가 먹지 못 한 오늘날 기준 우크라이나의 강역은 대부분 러시아에 붙은 정교회 믿는 코사크족ㆍ슬라브 유민들이나 오스만의 괴뢰국인 크림칸국, 혹은 오스만이 점유하고 있던 땅이었다는 것. 이게 오늘날의 러시아 색이 상대적 짙은 우크라이나 지방과 옅은 지방이 나뉘는 개괄적인 역사적 단층선이 됨을 알 수 있음. ㅇㅇ.
물론 저기 나온 짤도 17세기에 드네프르 강 유역이 폴리투로부터 떨어져나가게 되는 계기인 흐멜니츠키 봉기가 발생하기 훨씬 이전 기준의 16세기 강역 지도이기 때문에, 반영하지 못하는 누락된 경과들이 좀 있음. 18세기의 러-프-오의 삼분할이든 러시아의 오스만 격파 등의 사건이 있기 이전에도, 폴리투는 이미 17세기부터 우크라이나에서의 자포로제 코사크 족들이 반폴리투 봉기를 일으키고 러시아 제국에 자발적으로 붙어먹게(제국령 휘하 자치권 보장 조건 하에) 되면서 우크라이나 지방에 대한 역내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있었음.
다시 러시아에 복속된 루스짜르국, 러시아제국 역사는 왜 빼놓노 원래 같은 민족이었던 터라 타민족보다 동화속도도 빨랐고 드네프르강 동쪽은 사실상 러시아라고 봐도 무관함 친러시아가 높게 나오는게 단순이 소련시절 이주한 러시아계 노동자들 때문만은 아님
서슬라브 영향을 많이 받았냐 동슬라브 영향을 많이 받았냐 구분할때 제일 한눈에 보기 쉬운게 종교임 카톨릭 믿는 지역은 폴란드, 리투아니아 영향을 많이 받은 러시아에서 분화된 민족, 정교회 믿는 지역은 사실상 러시아임 벨라루스도 원래 백루테니아라고 카톨릭 믿는 착한 루스들이라고 붙여준 이름이지 지금은 전쟁 등으로 벨라루스인들이 많이 죽고 러시아계 유입이지만
이에 덧붙이자면 폴리투 삼분할이 있기 이전 세기에, 이미 17세기에 '흐멜니츠키 봉기'의 예와 같이, 정교회를 믿는 현지 우크라이나인 코사크(자포로제 코사크)들이 우크라이나 중서부를 일종의 식민지배 하고 있던 당시 폴리투에게 흑토지대에 대한 코사크족의 이익보장이 점차 약화되는 데에 관한 불만을 품고 지배에 저항하는 반란을 거행해서 러시아 제국 측에 자치권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합류한 사건(이를 모티브로 창작한 문학과 영화가 '대장 불리바')도 설명이 누락된 것으로 보임.. 러프오의 삼분할이 있기 이전에 이미 폴리투가 우크라이나 지역 전반의 영향력을 상실하고 드네프르 강이 관통하는 스텝 일대가 러시아 제국령으로 편입되었다는, 나름 이 토픽에 있어서 중차대한 사건인데.. ㅋㅋ
생각해보면 우크라이나의 에스닉-민족 문제는 생각이상으로 복잡한듯
한국에서 이 자료 말고 제대로 된 우크라이나인을 다룬 게 없다고 생각한다. 한번 판단하고 싶다면 이 링크 한번 읽는 걸 추천한다.
역사서술로 우크라이나 민족을 만들어내다 :
https://s-space.snu.ac.kr/bitstream/10371/93785/1/13_%ED%95%9C%EC%A0%95%EC%88%99.pdf
짧은글에 모든 역사를 서술할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려서 누락한것 같은데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지배기간에는 가톨릭 폴란드 지배계급이 정교회 루테니아인을 직접 악랄하게 착취하거나 독일인, 유대인들을 앞잡이로 삼아 간접적으로 압제를 가하거나 했기 때문에 루테니아인들이 지배계층과 동화되지 않고 루스계 민족 정체성을 유지했었음. 이후 러시아 제국이 폴란드 분할로 해당 지역을 통치하게 되자 루테니아인들은 처음에는 그들을 동포로 여겨 환영했지만 곧 러시아에 의해 이전과 다를 바 없거나 오히려 더한 혹독한 징세나 가혹한 강제노역을 겪게 된 것이야말로 우크라이나/벨라루스라는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사건이라고 본다.
오늘날 우크라이나 드네프르 동안에 러시아 제국 휘하에 흡수되어 자리잡은 우크라이나 농민들은 비교적 사정이 나았지만, 자치권을 보장받고 자기네 양식을 고수하려 했던 카자크들은 러시아한테 통수를 씨게 맞게 되었제. 그래서 사실 19세기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는 기반이 자신들을 이 '러시아에 붙었으나 통수 맞고 흡수당한 자포로제 코사크'에 정서적 기원을 두고 시작함. 당연히 지역적 기반은 오늘날 기준 중서부고. 즉 중서부는 러시아 제국에 강하게 동화되었던 동남부와는 다른 역사적 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19세기에 붐을 일으킨 민족주의의 방향도 다소 다르게 나타남.
폴란드-리투아니아 시절도 중요하지만 오스트리아제국령 갈리치아 시절도 중요한게 독일제국이나 러시아 제국과 달리 자유로운 다민족 국가 분위속에서 민족의식 각성됨 원래 교육받기 전엔 시작도 못한다고
현대사에서 홀로도모르도 타격주긴 했을듯
그러니까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의 정당한 영토다 이거지?
서부는 폴란드가 동부는 러시아가 각각 고토수복하면 될듯
오...정보글 개추야 키예프 공국 까진 알고있었는데 루스차르랑 별개였구나 지식이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