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시베리아 항공 노선을 통해 페어뱅크스에서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까지 총 7,926대의 항공기가 미국에서 소련으로 인도됨
미국에서 소련군 일선 비행장까지 총 14,000킬로미터(8,700마일)라는 기나긴 여정을 통해 소련공군에게 미제 항공기들이 투입
알래스카-시베리아 항공 노선에서만 1942년 9월부터 1945년 9월까지 133대의 비행기가 기상 조건이나 조종사의 실수로 손실되었고
이는 전체 인도댓수의 1.6%
미국 조종사 80명, 소련 조종사 109명이 비행 사고로 사망함
“기상은 정말 위험했습니다,” 당시 제7항공수송(ferry)사령부의 일원이었던 스티브 앨리슨이 말한다. 그는 현재 오레곤에 살고 있는데, 그는 대폭포에서 페어뱅크스까지 30회의 비행기 여정을 경험했었다.
“한번 전달하려면 2일이 걸렸고, 겨울에는 아마도 한 10일이 되어야 돌아왔던 듯해요.”
끔찍한 날씨 속에서 ferry pilot들은 주기적으로 일주일에 약 1,200마일을 날아야 했다. 앨리슨은 캐나다 서북부 유콘의 화이트호스란 마을에서 정지했던 경험을 떠올 렸다. 기온이 영하 54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기온이 더 낮아지면 오일이 딱딱해져 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엔진을 틀어 달구어야 했고 당시 기상예보는 신뢰하기 힘들었다.
“산악으로 가다보면 갑자기 눈폭풍이 불어 닥칩니다.”
소수의 조종사들은 계기비행을 훈련받기는 했으나, 대부분은 가장 중요한 항법 참고점으로 알칸 고속도로를 이용했다. 그 도로는 비행장에서 알래스카로 가는 유일한 도로였다. 광대한 유콘지역에서는 방향을 잃기 쉬웠다.
눈날리는 광야에 비상착륙해도 살아남기 힘들었고, 어쩌다 가끔 제 시간에 구조대가 도착해서 살 수 있었다. 모두 눈 날리는 날씨에 시도했기에 그렇다.
아무 흔적 없이 영원히 사라진 비행기와 조종사도 있다. 왈터 켄트 소위는 1943년 10월 27일, 코브라를 몰고 눈폭풍이 몰아치는 유콘산맥을 통해 마지막 비행을 했다. 결국 지각장애를 겪어 비행기가 지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전후 왕립 캐나다 공군 헬기가 1965년에 민간인 비행기를 수색하다 켄트의 P-39를 발견했다. 동판의 넘버를 확인했고 켄트의 이름이 새겨진 고등학교 졸업반지도 발견했다.
스미스 같은 항공지도 조종사(maps pilot)도 가끔 이 항공기 전달비행에 참가했다.
“우리 조종사들은 그냥 경험을 믿고 했다. 거긴 주목할 만한 지상 참고점이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지역 조종사들은 느린 비행기를 탔었는데, 전투기를 몰다보니 속도가 매우 빨랐기에 판단도 빨리 해야 했다. 그 일은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조종사가 항공모함을 찾는 것과 정말 비슷할 거다. 전쟁이 끝나기까지 1년 반 동안 정말로 힘들었다. 반세기 동안 최고로 추운 날씨였다. 모든 최악의 상황을 전부 대비해야 했다.”
이 시기에 지상요원들이 건물 밖에서 일할 때나 텐트에서 잠을 잘 때도 영하용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비행기조차 빡세네 저기뚫을실력이면 걍 미국본토가도될듯ㅋㅋ - 시진핑견공자제
자연은 호락호락 하지 아니하셨네
어지간한 전투미션 뺨치는 손상률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