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ce88971b48b60f73de798bf06d604032242005896419905aa

다음은 해방 직후 소련 제25군의 통역가로 일했던 고려인 박일의 회고입니다.


1947년 여름 어느 날 레베데프 소장은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부위원장 김두봉을 불렀고 오래지 않아 북조선에서도 국가를 세워야 할 테니 국기도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김두봉에게 태극기의 내력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고, 조선이 새 국기가 필요한지 김두봉의 의견을 물어봤다.


전통적인 교육을 받은 김두봉은 구체적으로 음양의 상징인 태극 그리고 사괘의 의미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며 공산주의 조선의 국기로 태극기를 그대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런데 소련 장군 입장에서 '태극' '음양' '사괘' 등의 개념은 '동아시아 봉건주의 사상'에 불과하였다.


레베데프는 '그만'이라고 했고, 옆에 있던 소련군 대령은 '이건 전설과 같은 이야기'라고 하고 코웃음을 쳤다.


바로 이날에 태극기가 폐지될 운명이 결정된 것 같다."


(중략)


태극기가 폐지된 후 열흘이 지나 김두봉은 '신국기의 제정과 태극기의 폐지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담화를 발표하고 같은 해 8월에는 같은 제목으로 책을 발표하며 크게 다음과 같은 태극기 폐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첫째, 태극기는 미 군정청이 권유하고 있으므로 새 민주주의 국가에는 맞지 않는다.

(이는 실상과 괴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둘째, 태극기의 근거인 주역은 비과학적이다.


셋째, 태극기는 표준성이 없다.

(중략)



니콜라이 게오르기예비치 레베데프는 소련군 장성이다. 1945년 해방 당시 북한에 진주한 소련 제25군 군사위원회 위원으로 평양의 소련군정에서 김일성 정'권 수립에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평양 소련군정의 명목상 최고 책임자는 25군 사령관 이반 치스차코프 대장이었으나 그는 정치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았고, 소련군정을 실제로 총지휘한 사람은 보로실로프(지금의 우수리스크)의 연해주 군관구 군사위원 테렌티 스티코프였다. 레베데프 소장은 25군의 군사위원으로 평양 현지에서 스티코프 등 상부의 지시를 받아 이행하는 실질적 책임자였다.


그는 김일성을 북한 지도자로 만드는 여러 정치 공작을 지휘했다. 당시 김일성대 부총장으로 김일성에게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을 교습한 박일(朴一)은 레베데프 소장이 최초로 김일성 우상화 공작을 시작한 사람이라고 증언했다.



하다못해 소련 수괴 스탈린이 지시한 것도 아니고, 그냥 북한 주둔 소련군 장군이 맘에 안든다고 바꾸라고 해서 갈아치움ㅋㅋㅋ


그것도 누구인지 기록도 안남은 소련 디자이너가 적당히 만든 뜻도 없고 근본도 없는 인공기로 갈아치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