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군에게 포위당한 1941년 레닌그라드의 지옥보다 끔찍했던 겨울,

시민들은 처음에는 까마귀와 비둘기를, 그 다음에는 개와 고양이를, 또 그 다음에는 쥐를, 결국 끝장에 가서는 시체를 먹기 시작했다.

굶주림만큼 빠르게 인간을 한낱 짐승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세상에 또 없었다.



정처 없이 음식을 찾아 헤메다 기력이 다해 쓰러진 이들에게 다가온 자들은

제일 먼저 배급수첩을 훔치기 위해 품 안을 뒤졌다.

가족 중 한 명이 죽으면 장례를 치르는 대신, 그 한 명분의 배급을 계속 받기 위해 차디찬 방구석에 시신을 쳐박아 놓았다.

야전병원에서 부상병에게서 절단한 팔다리들이 '왠지는 모르겠지만' 잠깐만 눈을 돌리면 감쪽같이 사라졌다.

부드러운 아이의 살결은 러시아식 고기만두의 재료로 가장 선호된다는 소문을 듣고 공포에 질린 부모들은

아이들을 집 밖으로 내보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기아가 차마 직시하고 싶지 않은 인간 내면의 가장 혐오스러운 본성까지 끌어냈음에도

레닌그라드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분명 아니었다.

배고파 우는 아이들을 위해 먹기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먹을 것을 또 찾아나설 힘을 유지하기 위해 다 먹어둘 것인가라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딜레마가 부모들에게 강요되었음에도

레닌그라드 포위 동안 의외로 아이들의 생존율은 성인들보다 더 높았다.

이것은 부모들이 자기 몫의 배급식량까지 자식들에게 주었다는 증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 앤터니 비버 저 "제 2차 세계대전"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