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아침 06시 20분
논두렁 한가운데를 터벅터벅 걸어가는 팔각모를 쓴 다부진 체격의 중년 군인 한사람.

팔각모 끝에 달린 중령 계급장.
찬바람이 불지만 쉬지않고 터벅터벅 걷고 있다.
터벅터벅 걷는 그의 앞에 보이는 해병 6974부대 현판.
위병소다.
위병소 앞에 도착한 곽말풍 중령.

피일승! 근무중 이상 무!

경례를 하는 위병조장과 장난반 진심반으로 말을 거는 곽말풍 중령


잤지 너

아닙니다!

잤자나 새꺄 눈밑에 봐 눈꼽 허얘가지고

아닙니다

잘해

예 알겠습니다!

믿고 간다잉

네 알겠습니다!!

...자다걸리면 하루종일 생활관 하나에 재워갖고 문에다 못나오게 못질 해가지고 씨씨티비 달아놓고 안자고 뒤치락거리면 하루종일 뺑뺑이돌릴줄알어


킥킥거리며 사라지는 곽말풍 중령
그걸 보며 슬쩍 폰을 꺼내 액정을 거울삼아 들여다보며 눈을 비비는 위병조장



장면 2

아침 상황보고가 한창인 브리핑룸


대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필승!

그래 필승
간밤에 별일 없었지?


브리핑하는 당직사령


어제 새벽 공삼시경 뒷산에서 폭음이 청취되어 확인해보니 인근 폐야적장에서 가스통이 폭발하며 나는 소리로 확인되었습니다


종이컵에 시선을 대고 커피를 호로록 마시며 눈을 치뜨는 곽말풍 중령


가스통?

뒤에 공터가 있지 않습니까? 거기다 앨피지 폐 가스통을 야적해놓은 모양입니다. 거기에 스파크가 튀어 발생한 모양입니다...

인원피해는 없고?

부대에서 좀 떨어진 곳이어서 부대원 피해는 없습니다. 소방서에서 진압중이긴 한데, 해당 위치가 관리인이 없는 창고같은 곳이어서 민간인 피해도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고있던 종이컵을 손에들고 지시하는 곽말풍 중령


군수과장, 주임원사님이랑 같이 우리 부대 가스통도 한번 확인해서 11시까지 얘기해줘. 작전과장은 사고난 데에는 우리가 지원해줄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주임원사님도 부대 내 가스통이랑 주계쪽 까스라인 확인 한번만 좀 해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흡족한듯 바라보는 곽말풍 중령
한숨 돌렸다 생각하는 작전과장 흠딸춘 소령


카톡 카톡
뭐야?


다들 주위를 둘러보는 간부들
곽말풍 중령이 폰을 꺼낸다


아 나네 쏘리..


부인에게서 온 카톡 메시지
저장명은 김련희 딱 세글자


오늘 무슨 날인지 알죠?
ㅋㅋㅋ

니미럴... 걸 어케알어


폰을 주머니에 집어넣는 곽말풍 중령


특이사항 없으면 각자 업무 하러 가자고
예 알겠습니다!




장면 3

대대장실
CP병 무득찬 해병이 대기중이다


필승

야임마 귀청 떨어지것다 평소에 잘해임마


곽말풍 중령에게 커피 한잔을 바치는 무득찬 해병


대대장님 차 여기 있습니다

오 땡큐


두잔째 마시는 커피를 호호 불던 곽말풍 중령


아 모칠아

상병 무득찬

냉장고에 떡 있으니까 먹어라

옐겠슴다


방금전 메시지가 마음에 걸리는 곽말풍 중령


아이 씨발 암것도 아닌것 같은데...


서랍을 열고 닫는다


에이 씨발 이것도 언제 한번 정리 해야하는데


어수선한 서랍 안

너덜너덜한 노란 서류봉투 안에 오래된 영수증 개인인감이니 주민등록등본 같은 그의 쓰잘데 없는 개인정보가 가득하다

그사이에 삐죽 나와있는 항로표지관리원 채용공고

대충 추린 것들을 들고 세단기로 향하는 곽말풍 중령
봉투째 갈아버리려는 생각이다


뭐야 이거는


다 지워져가는 주얼리샵 영수증의 날짜가 10년 전 오늘이다



장면3


10년 전
국도를 달리는 군토나 한대


야 철곤아 어차피 늦은 거니까 천천히 가라

네 알겠습니다


전방 신호등에 초록색이 깜빡인다
그러나 앞에 느리게 가는 아반떼 한대


작전과장님! 잠시 차선 갈아 타겠습니다!

그러세요~

눈길도 주지 않고 브리핑 자료를 검토하는 곽말풍 대위
악셀을 밟는데 놀란 곽말풍 소령이 비로소 정면을 바라본다


야! 앞에 차! 민간인 차!


군토나는 차선을 갈아타 아반떼를 추월한다

야이새끼야! 미쳤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빨리 도착하려면 어쩔수 없었습..

확 씨 그걸 말이라고... 너 그렇게 운전하지 마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그사이 신호가 빨간불로 바뀐다

야 철곤아! 신호! 신호! 브레이크 밟아!

끼이이익!


백미러를 보니 뒷차도 급정거한 모습이다


야이 새끼야!(대가리를 한 대 때린다) 이거 대민마찰이야 임마! 너 차에 있어! 내가 확인해보고 올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차에서 내려 슬쩍 둘러보는 곽말풍 소령
다행히 사고까지는 나지 않은 모양이다
운전자에게 다가가는 곽말풍 소령


괜찮으세요? 다치신데 없으신가요?


젊은 여자가 그를 바라본다


아휴 아저씨! 무슨 운전을 그렇게 하세요!

죄송합니다. 사과 드리겠습니다. 다치신덴 없으신가요?


짜증내는 말투로 대시보드를 가리키는 여자


저기 부딪힌 거 말곤 없어요 아니 깜빡이도 안켜고 끼어들기를 하시면...

죄송합니다. 이건 제 명함이고요 병원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안절부절못하는 곽말풍 소령을 보고 피식 웃는 여자


언제 편하실때 저녁이나 한끼 사주세요.

네? 네!

비싼거 먹어도 되죠?

그럼요...!



(장면 4)

긴장해 알리오올리오 파스타를 뒤적이는 곽말풍 소령
그걸 바라보는 김련희(27)


무슨 일을 하세요?

네? 보시다시피 군인..


눈꼬리가 올라가는걸 보고 허겁지겁 말을 고치는 곽말풍 소령

군부대가 하나 있지요? 거기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계획을 짜고 거기에맞춰 이루어지는지 확인하는 그런 일을 합니다. 련희 씨는요...?

저는 번역 일을 해요. 곽 소령 님? 뭐 하나 궁금한게 있는데요.

네 말씀 하세요.

군인이시면 혹시 사람 죽여 보셨어요?


당혹스러워 하는 곽말풍 대위
천천히 입을 연다


말장난같지만... 군인의 업무는 죽이는것보다는 지키는게 우선이라고 생각 합니다... 말씀 하신대로 남을 죽이는건 거기에 따르는 부수적인 행동이라고 보고요... 제 생각은 그래요.

그러시군요

네. 남을 죽이는게 좋아서 군인이 되는게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서 군인이 되었거든요. 대부분의 군인들이 다 그럴겁니다.


정적
입을 여는 김련희


저희 아빠도 직업군인이셨어요. 지금은 전역한지 꽤 되셨지만...

그러셨군요

아빠도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주말에 나가시면 저한테 그러셨어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주말에도 나가야한다고...

아버님도 어쩔수 없으셨을겁니다

.....

......

소중한 사람들을 지킨다는건 참 멋있는것같아요

그렇게 멋있을건 없어요.. 어쩌면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니까요
그걸 사람들에게 환기시켜 주기 위해서 일부러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는거죠.. 군복도 그렇고, 국군의날 행진도 그렇고... 다 잊지 말라고 보여주는 거에요.



(장면 5)

레스토랑을 나와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주는 곽말풍 대위

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김련희의 귓가에 목소리가 들린다

명심할게요... 무슨 일이 있어도.. 한 사람만은 제가 지켜줄게요......



(장면 6)

몇달 후

대구광역시 중구 김련희가 사는 아파트 단지로 걸어가는 곽말풍 소령

아파트 2층 베란다 너머로 아버지의 고성소리가 들린다


내가 그 개병대놈 만나지 말라고 몇번 이야기했어, 왜 아빠말을 안들어

아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내가 어린에도 아니고 왜 그러는건데!

야이 지지배야 너 해병대 놈들 못겪어봤지 그런 놈들에게 시집가면 너 진짜 고생만 한다는데 왜 자꾸 말을 안들어


조용히 벤치 밑에서 담배만 이어 피우는 곽말풍 소령


자네 나좀 보세


그를 부르는 김상수(56, 해군 중령, 현 도선 군무원)


우리 딸이 자네를 영 맘에 들어하지 않더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위해서라면...

....네 알겠습니다...

...미안하게 됐네

...아닙니다...


단지를 빠져나오는 곽말풍 소령



(장면 7)
몰래몰래 한자한자 전역 지원서를 쓰는 곽말풍 소령

그의 앞에는 항로표지관리원 채용공고가 놓여있다

마지막으로 문자를 보내는 곽말풍 소령


저는 이제 떠납니다
해병대도, 련희씨 곁도요
먼 바다로 갈 거에요
그곳에서 다 잊고 살겠습니다


작전과장님 이건 아닌것 같습니다


이를 만류하는 작전보좌관 흠딸춘 중위


뒤진다

...죄송합니다

작전과장님 하지만...

뒤질래?

...죄송합니다


곽말풍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온다

일부러 꺼놓는 곽말풍


30분쯤 후, 지통실에 쳐들어오는 대대장 강권두 중령

야! 곽말풍이!

소령! 곽말풍!

전화 받아! 가서... 새끼...

다시한번 여쭤보는것을 허락받아도 되겠습니까!

아가씨가 부대로 전화 하더라! 쌔끼... 흘려가지고...

네! 알겠습니다!

일요일에 집앞으로 오세요. 하신 말씀대로 해드릴테니까.

...그럽시다.


(장면 8)

아파트 앞 공터


.....전역지원서를 냈어요

왜요?

글쎄요... 이제는 다른 일을 해도 되지 않을까해서.....

무슨 일이요?

이제 천천히 쉬면서 생각해 봐야겠죠? 마음이나 좀 달래다가...


코트 주머니에서 손을 빼는 김련희
곽말풍 소령을 쏘아보며


왜 자꾸 저를 속이세요?

속이다니요?

저를 지켜준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군인이라면서요.

이제 그럴일 없게 됐으니까 그만두는거 아니에요. 나는 이제 영영 돌아올수 없는곳으로 가요. 이제 됐잖아요.

이기주의자.... 자기밖에 모르고.............


즙을 짜는 김련희


이미 다 끝난 일입니다. 대대장에게 전역지원서를 냈어요. 두 장을 썼습니다. 한부는 아버지께도 드리려고...


건빵주머니에서 편지봉투를 꺼내는 곽말풍 소령

그런 그를 바라보며 코웃음 치는 김련희


대대장에게 냈다는게 이거 말씀하시는건가요?


종이 한장을 꺼낸다
곽말풍이 쓴 나머지 전역지원서다


어디서 난거죠?

중위 한분이 가져다주던데요.


당혹하는 곽말풍



(장면 9)

벤치에 앉은 두사람

서로 스무고개 하듯 이어간다


평생 바닷가만 떠돌며 살텐데...

저는 바다를 좋아해요

집에 잘 못들어올지도 몰라요

괜찮아요

전쟁이 나면........

그때까지 서로에게 충실하게 살면 되잖아요?

......생각할 시간을 줘요. 다음주에 다시 올게요...


곽말풍 소령의 목에 감기는 팔

그의 얼굴에 입술이 다가온다

각개빤스 색깔처럼 빨개진 곽말풍 소령의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


.........Je t'aime, Mon marine


다시 들려오는 한국어


가지 마세요

저를 지켜줘요

평생 제 곁에 있어주세요...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등을 돌리는 곽말풍 소령

팔각모를 푹 눌러쓰고 입수를 하고서 걸어가는 곽말풍 소령

눈가에 뭔가 흐르는 얼굴



(장면 10)
다시 대대장실

서랍을 닫는 곽말풍 중령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수송반으로 향하고
마갈곤 준위랑 경례를 주거니받거니 한다

한손에 커피를 들고 수송반 한쪽에 세워진 자신의 제네시스 루프를 쓰다듬는 곽말풍 중령



(장면 11)
지통실에 들어온 곽말풍 중령

모니터만 바라보는 흠딸춘 소령 머리통을 툭 건드린다

흠칫 놀라는 흠딸춘에게 커피 한캔을 건네는 곽말풍 중령


대대장님!

주말동안 부대 잘 지켜라. 올때 맛있는거 사올게.

네 알겠습니다.


(장면 12)
장면이 바뀌고

쇼파에 앉아있는 30대 후반 여자

켜놓은 텔레비전에서는 케이블에 포함된 프랑스어 뉴스가 나오고

거실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그림을 그리는 어린 여자아이

도어락 해제되는 소리가 들린다


아빠다!


통닭과 케이크를 사들고 현관에 들어서는 곽말풍 중령

그제서야 희미하게 보이던 여자의 표정이 보인다

밝게 웃는 해병 6974부대장 곽말풍 중령 부인 김련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