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순항 전투 - 칭타오 전투 - 독일의 탄넨부르크 전투를 보고 감명받은 일제는 뭐 의식의 흐름이 너무나 명확했음.


1. 여전히 가내수공업에 치우쳐있는 일제의 공업력은 현대(당시)의 물량 소요를 감당할 수가 없다.

2. 그러나 그런걸 충족시킬 상황까지 기다리며 힘을 키우면 주변의 국가는 모두 서구 열강이 해먹을 것이다.

3. 러일 전쟁, 탄넨부르크 전투와 같이 초반에 기습적인 기동을 통해 적을 포위 섬멸한다면 유리한 입장에서 강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4. 민주주의 국가는 썩어빠진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다. 모두들 전쟁이 나길 두려워하며 많은 피해가 발생하면 전쟁에 소극적이 된다.

5. 그러므로 기습적인 단기 결전에서 빠른 기동을 통해 우회 포위하여 적을 일거에 섬멸한 뒤에 유리한 입장에서 강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6. 이를 위하여 보급을 포기하며, 기습을 달성해야 하므로 외교적 협상을 하기도 전에 타격을 하여 적에게 전술적인 기습을 넘어 전략적 기습을 가해야 한다.


5~6번에서 발전되서 결국 반자이 돌격이 튀어나옴. 반자이 돌격이 그냥 칼 들고 돌진하는게 아니라, 포병의 엄호 없이 보병 돌진을 하는게 주요 특징인데 엄호 사격을 하게되면 적에게 경각심을 주게되어 기습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임. 그래서 가급적 야습을 선호했고, 조명탄 사용도 자제할 정도였음. (조명탄이 일본에 없었던게 아닌데 야간 보병전에 사용하는게 아니라 해군이 사용했음.)



중일 전쟁? 그냥 초반에 적당히 조지면 강화하겠지? 하면서 시작함.


미일 전쟁? 그냥 초반에 적 항모 부대를 조지면 강화하겠지? 하면서 시작함. 그래서 유류 저장고 같은 시설물들은 작전 지도에 표기조차 되어있지 않았음. 다른 시설물들도 비슷. 첩보원의 첩보는 배가 있나 없나만 따지는 수준들이었고.



미일 전쟁 이전에 일본에서 국가 총력 연구소(맞나?)에서 분석해보니 장기전으로 돌입하면 ㅈ된다 싶었지만 상큼하게 무시했었고, 당시 명분으로 내세웠던 석유 확보도 이미 미국이 다른 곳으로부터 상당부분 충족시켜 가는 실정이었지만 뭐... 거기다 6번을 중시하다 보니 일본 잠수함들은 통상 파괴를 전혀 수행하지 않았고. 모든게 다 5~6번으로 설명이 될 정도였음.


흔히들 육군과 해군간의 불화 때문에 불시에 중일 전쟁이나 미일 전쟁을 불시에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게 다 5~6번 때문임. 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아군에게도 들키지 않는다!


정말 창의적인 군대였음. 전략자체가 이미 카미가제 그 자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