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갤럼들 영화 뽕 맞고 아직도 빌빌대고 있다가 정보글을 써 왔음. 지난번에는 자바에서의 단델스와 래플스 두 사람의 행적에 대해서 살펴 봤음.
갤럼들이 보았다시피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자바 섬은 여러 세력으로 쪼개졌음. 이 때문에 자바 곳곳에서는 온갖 혼란들이 일어났음.
1820년의 소요를 시작으로 해서 다음 해에는 흉년이 불어닥쳤고, 그 다음 해에는 하멩쿠부워노 4세가 3살 된 아들과 독살되었다는 소문을 남기고 급사해버렸음.
그리고 그 즉시 욕야카르타 왕국은 귀족들의 세력 싸움으로 뒤덮히게 되었음. 여기에 바로 그 해에 머라피 화산이 대분화를 일으켰음.
민중들은 부패한 세금 징수원들의 횡포에 신음하고 있었고, 곳곳에 도둑 떼가 나타났음. 그리고 이 때 나타난 사람이 디파느가라(Dipanagara)였음.
그는 하멩쿠부워노 3세의 장남으로, 성장기를 궁중 대신들의 암투로 혼란한 왕정과 떨어져서 이슬람 종교 학교에서 성장한 사람이었음.
그 때문에 그는 이슬람 신비주의 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사람이었고, 그와 맞물려서 궁중의 사치를 멀리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민중의 지지를 한몸에 받고 있었음.
그렇기에 네덜란드 식민지 정부도 그와 그의 추종자들을 계속해서 주시하였음. 그러던 중, 새로운 도로의 건설을 두고 디파느가라와의 충돌이 일어났음.
이를 빌미로 1825년 7월 20일, 네덜란드 식민지 정부는 디파느가라를 체포하기 위해서 욕야카르타에서 그가 있던 트갈라자로 군대를 보냈음.
그리고 이는 양측의 대규모 충돌을 일으키게 되었고, 반란으로 확전되기에 이르렀음. 욕야카르타 왕궁의 왕자 29명 중 15명이 디파느가라에게 가담했고,
수라카르타 또한 이를 지켜보면서 간을 보기 시작했음. 여기에 이슬람 세력들이 모여들었고, 이들 중 키야이 마자(Kiyai maja)라는 사람은 이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음.
네덜란드 또한 친 네덜란드 성향을 띠고 있던 욕야카르타의 술탄에세거 지원을 받았고, 망쿠너가라와 마두라의 군대도 네덜란드를 지원했음.
그리고 이로 인해 디파느가라는 궁정과도 적대 관계에 놓이게 되었음.
디파느가라의 체포, 초록 터번을 쓴 사람이 디파느가라. 라덴 살레 작
처음 전쟁이 시작될 때는 네덜란드 식민지 정부는 이를 그 해가 가기 전에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거라고 봤음.
하지만 현실은 그들에게 가혹했고 네덜란드 식민지 정부의 대군은 디파느가라의 게릴라 전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음.
그리고 이로 인해 1826년경, 네덜란드는 반란을 진압하기는커녕 중부 자바 내륙을 모두 내어주고 말았음.
이에 네덜란드는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본디 반 서구 성향을 지니고 있던 영국군이 폐위시킨 노쇠한 하멩쿠부워노 2세를 다시 데리고 왔지만,
반란은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번져나갔음. 결국 그 다음해, 네덜란드는 디파느가라의 반란군은 토벌하기 위한 전면전에 들어갔음.
이로 인해 디파느가라는 서서히 수세에 몰리게 되었고, 그 다음 해인 1828년에 이르러 전세는 네덜란드군에게 기울게 되었음.
결국 키야이 마자는 1829년 4월에 체포되었고, 협상에 나선 디파느가라는 1830년 3월에 체포되어 마두라를 거쳐서 보르네오 섬의 마카사르로 추방되었고, 1855년 사망하였음.
이 전쟁의 결과로, 네덜란드 측에서는 네덜란드인을 포함한 6000명의 유럽인이 죽었고, 7000명의 인도네시아 군인이 죽었음.
또한 20만명의 자바인이 디파느가라의 반란으로 목숨을 잃었고, 그 결과 욕야카르타 왕국의 인구는 반토막이 나버렸음.
그리고 욕야카르타의 지역 일부가 보상금 격으로 네덜란드 식민 정부의 직접 통치를 받게 되었으며, 네덜란드 정부의 평등 원칙(?)으로 인해 수라카르타도 외곽 지역들을 뺏기게 되었음.
여기에다가 반란을 두려워한 네덜란드 정부에 의해 수라카르타의 파쿠부워노 4세 또한 암본 섬으로 강제추방 당했고, 그는 1849년에 죽음을 맞음.
이로 인해 자바 내부의 저항 세력들은 중심을 잃고 뿔뿔히 흩어져 완전히 와해되어 버렸고, 자바 왕국들의 귀족과 왕들은 네덜란드의 유순한 양이 되었음.
요하네스 반 텐 보스
저항 세력이 완전히 소멸되어버린 이때를 기점으로 하여서 네덜란드는 자바 전역에 대한 완전한 통치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음.
하지만, 그 동안 인도네시아의 극심한 혼란으로 인해 네덜란드는 막대한 지출을 하고 있었고, 여기에 벨기에 통합 시도까지 무산되면서 네덜란드는 심각한 재정 적자를 보고 있었음.
그렇기에 1830년, 네덜란드 식민지 정부 최우선 과제는 어떻게 자바를 개발하여 빨아먹을 것인가 였음. 이 때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의 총독은 반 덴 보스(Van Den Bosch)였음.
그는 향후 네덜란드의 식민지 경영의 근본이 되는 쿨투르스텔셀(Cultuurstelsel), 단일 경작제도를 만들고 시행한 사람이었음.
이는 아주 단순한 구조로, 모든 자바인은 토지세 납부 의무를 가지며, 수확의 40퍼센트를 토지세로 내어야 한다는 것이었음.
보면 알겠지만 이건 래플스의 개혁에서 모티브를 가져 온 것이었음. 하지만 오랫동안의 혼돈으로 인해 행정 계통이 망가졌고 시중의 통화량도 부족한 상태에서,
이를 제대로 실행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었고, 실제 조세 수입도 이론치와 상당히 떨어져 있었음.
이에 그는 새로운 방안을 제시했는데, 바로 주곡 생산 토지를 강제로 줄이고, 그렇게 해서 생겨난 땅에 돈이 되는 수출용 작물들을 강제로 기르게 해, 이를 징수해 가는 것이었음.
여기에다가 의무 생산 목표를 부여하여 이를 달성하도록 강요했고, 이렇게 해서 불어난 수입을 근거로 하여서 토지세를 더더욱 인상하였음.
그리고 이를 보고 강제 재배 제도라고 부름.
이렇게 해서 발생한 막대한 수익들은 네덜란드의 국고를 불려나갔으며, 생산량 자체가 증산되면서 통화 유통량도 증가하게 되었음.
마을들은 서로간의 경쟁에 들어갔고, 자바의 인구는 한 세기동안 300만에서 2360만, 8배로 증가하게 되었음.
하지만 실제 자바 사람들의 생황은 달랐음. 우선 당시 동인도의 지배 체계가 어떻게 되어 있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그 첫 번째로는 델프트의 종합기술학교에서 식민지 관료가 되기 위해 교육받은 내무 행정관들이라는 사람들이 있었음.
이들은 순전히 식민지의 경영을 위해 교육 받은 사람들로, 동인도 각지의 풍습들을 모두 이해하고 각종 언어들을 구사할 수 있는 엘리트들이었음.
이들은 본국으로부터 특정 지역들을 위임받고, 명령을 받아 이행하는 역할을 했음. 두 번째로는 자바의 섭정들이었음.
이들은 농민들에 대한 직접적 권한을 가진 자들로서 과거에는 토착 군주의 대리인 역할을 했으나,
이 체계 속에서는 네덜란드 식민 정부가 만든 행정 조직에 붙어서 자바 사람들을 착취하는 역할을 했음.
그 때문에 네덜란드 식민 정부에게 있어서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그렇기에 네덜란드 식민 정부는 자바의 귀족들에게 지원과 감시 역으로 네덜란드 정부의 관리들을 그들 곁에 두었음.
세 번째로는 국가 검사관으로, 특정 구역의 마을들을 순회하면서 각 마을들의 운영 상태를 점검하고, 지역 우두머리들의 요청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 때문에 촌장들, 베도노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음. 또 원주민들에 대한 보고서도 함께 작성했는데, 이는 불만 사항들을 알아내 폭동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음.
이러한 하부 조직을 통솔하는 것이 부지사였고, 특정 행정구역을 넘어서서 한 개 섭정령을 관리하는 사람을 지사라고 불렀음.
이러한 체제를 통해서 네덜란드는 자바를 장악했고, 자바를 밖과 완전히 격리시켰음. 그리고 이 하부 조직에서 문제가 생겼음.
두 번째 말한 지역의 섭정들의 대다수는 자신의 소득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농민들에게 주어지는 할당량을 부풀렸고, 식민지 관료들은 이를 그대로 무시하였음.
그리고 식민지 착취 또한 그대로 이어졌는데, 본디 상업 작물 재배 면적인 5분의 1을 넘어서서 3분의 1, 절반을 넘어서 전체 경작지에서 상업 작물들을 기르기도 했으며,
1년 중 240일을 강제 노역에 징수해야 했었고, 임금은 들쑥날쑥했으며, 위에서 말했다시피 토지세는 끊임없이 증가했음.
이러한 환경에서 자바 사람들은 식량 작물 재배에 소홀해질 수 밖에 없었고, 여기에 설탕 가공으로 인한 물 부족은 미곡 부족을 일으켰으며,
1843년의 기근과 1846년부터 시작된 4년간의 전염병, 그리고 1850년경에 또다시 흉작이 불어닥치면서 사람들의 생활은 더욱 피폐해져 갔음.
추신: 여러분 댓글 달아주세요 그래야 속편이 빨리 나옵니다
네덜란드 참피새끼들 같으니
행님..문단 개행..자비좀..모바일을 살..
ㄴ 고려하도록 하겠습니다
문단 좀 나눠 쨘☆
핫산 빨리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