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해군이 자랑하는 신형 잠수함인 발라오급 잠수함 SS-310 뱃피쉬는 1942년 12월 27일 기공이 시작되었다.
본디, 뱃피쉬는 함명이 따로 있었으나 기공 전인 9월 24일, 함명은 뱃피쉬로 개명되었다.
뱃피쉬는 1943년 5월 5일에 포츠머스 해군 조선소에서 진수되어 1943년 8월 21일 완공되어 취역했다.
하지만 뱃피쉬에겐 한가지 사건이 있었다.
함장인 웨인 R. 메릴 중령과 부장인 피터 G. 모르티니 소령과의 의견차이가 발생했던 것이다.
1944년 1월 24일 23시 32분.
진방위 130도, 거리 25,850야드. 폭풍우 속을 항해하던 뱃피쉬는 레이더 접촉으로 3개의 접촉물을 포착했다.
이것은 일본해군이 자랑하는 초거대 전함인 야마토와, 호위로 따라붙은 구축함인 아사구모와 후지나미였다.
거센 폭풍으로 인해 뱃피쉬는 이들을 따라잡기 힘들었고, 애써 공격위치를 점하려 기동했고 앞지르는데에 성공했으나 야마토는 뱃피쉬의 접근을 눈치채고 포격준비를 하기 위해 기동하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메릴 중령은 겁을 냈다.
미리 해군 정보부를 통해 야마토의 접근을 감지하고 있었고 이를 공격할 기회가 주어졌으나, 메릴 중령은 겁을 내어 더 이상의 접근을 거부하고 잠항을 지시했다.
부장인 피터 G. 모르티니 소령을 포함한 휘하 장교들은 전함이 가진 약점들을 근거로 어차피 야마토는 우리를 정확히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 하여 접근해 공격하기를 바랬으나, 단단히 겁을 낸 메릴 중령의 귀에는 휘하 승조원들의 공격 건의 따위는 들어오질 않았다.
뱃피쉬와 야마토와의 거리는 16000야드. 결국 공격은 단념하고 말았고, 실망하는 승조원들이 늘어났다.
첫 번째 패트롤 간, 뱃피쉬는 2척의 일본 상선을 격침시켰으나 목표로 했던 야마토의 공격에 실패했다.
불행은 또다시 이어져, 뱃피쉬는 두번째 패트롤에서 아무런 전과를 세우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왔다.
두 번의 패트롤 수행 이후, 피터 모르티니 소령은 함장이 갑갑하고 짜증나서 잠수함 근무 못해먹겠다며 전출 신청을 내고 뱃피쉬를 떠났다.
1944년 5월 15일.
돌연 메릴 중령이 뱃피쉬의 함장직에서 해임되었다.
우유부단함과 소극적 성향을 근거로 모르티니 소령이 상부에 메릴 중령을 해임시킬 것을 요구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본디, 미국 잠수함대에서 잠수함장이 해임당하는 가장 많은 케이스는 두 가지다. 아무런 전과를 못세우거나, 고의적으로 교전을 회피하거나 겁쟁이일 경우.
메릴 중령은 두 가지 요건을 충족했고, 이에 뱃피쉬의 함장직에서 짤렸다.
이에 새로운 함장으로 존 K. 파이프 중령이 뱃피쉬의 2대 함장으로 취임했다.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성격을 가진 파이프 중령은 그동안의 실패에 실망했던 뱃피쉬의 승조원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고 전과를 차근 차근 세워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1945년 2월 11일.
파이프 중령과 그의 잠수함인 뱃피쉬는 미 해군 잠수함대 역사상, 두번다시 없을 희귀한 기록을 세우게 된다.
잠시 후에
본디, 뱃피쉬는 함명이 따로 있었으나 기공 전인 9월 24일, 함명은 뱃피쉬로 개명되었다.
뱃피쉬는 1943년 5월 5일에 포츠머스 해군 조선소에서 진수되어 1943년 8월 21일 완공되어 취역했다.
하지만 뱃피쉬에겐 한가지 사건이 있었다.
함장인 웨인 R. 메릴 중령과 부장인 피터 G. 모르티니 소령과의 의견차이가 발생했던 것이다.
1944년 1월 24일 23시 32분.
진방위 130도, 거리 25,850야드. 폭풍우 속을 항해하던 뱃피쉬는 레이더 접촉으로 3개의 접촉물을 포착했다.
이것은 일본해군이 자랑하는 초거대 전함인 야마토와, 호위로 따라붙은 구축함인 아사구모와 후지나미였다.
거센 폭풍으로 인해 뱃피쉬는 이들을 따라잡기 힘들었고, 애써 공격위치를 점하려 기동했고 앞지르는데에 성공했으나 야마토는 뱃피쉬의 접근을 눈치채고 포격준비를 하기 위해 기동하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메릴 중령은 겁을 냈다.
미리 해군 정보부를 통해 야마토의 접근을 감지하고 있었고 이를 공격할 기회가 주어졌으나, 메릴 중령은 겁을 내어 더 이상의 접근을 거부하고 잠항을 지시했다.
부장인 피터 G. 모르티니 소령을 포함한 휘하 장교들은 전함이 가진 약점들을 근거로 어차피 야마토는 우리를 정확히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 하여 접근해 공격하기를 바랬으나, 단단히 겁을 낸 메릴 중령의 귀에는 휘하 승조원들의 공격 건의 따위는 들어오질 않았다.
뱃피쉬와 야마토와의 거리는 16000야드. 결국 공격은 단념하고 말았고, 실망하는 승조원들이 늘어났다.
첫 번째 패트롤 간, 뱃피쉬는 2척의 일본 상선을 격침시켰으나 목표로 했던 야마토의 공격에 실패했다.
불행은 또다시 이어져, 뱃피쉬는 두번째 패트롤에서 아무런 전과를 세우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왔다.
두 번의 패트롤 수행 이후, 피터 모르티니 소령은 함장이 갑갑하고 짜증나서 잠수함 근무 못해먹겠다며 전출 신청을 내고 뱃피쉬를 떠났다.
1944년 5월 15일.
돌연 메릴 중령이 뱃피쉬의 함장직에서 해임되었다.
우유부단함과 소극적 성향을 근거로 모르티니 소령이 상부에 메릴 중령을 해임시킬 것을 요구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본디, 미국 잠수함대에서 잠수함장이 해임당하는 가장 많은 케이스는 두 가지다. 아무런 전과를 못세우거나, 고의적으로 교전을 회피하거나 겁쟁이일 경우.
메릴 중령은 두 가지 요건을 충족했고, 이에 뱃피쉬의 함장직에서 짤렸다.
이에 새로운 함장으로 존 K. 파이프 중령이 뱃피쉬의 2대 함장으로 취임했다.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성격을 가진 파이프 중령은 그동안의 실패에 실망했던 뱃피쉬의 승조원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고 전과를 차근 차근 세워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1945년 2월 11일.
파이프 중령과 그의 잠수함인 뱃피쉬는 미 해군 잠수함대 역사상, 두번다시 없을 희귀한 기록을 세우게 된다.
잠시 후에
- there is no room for mistakes in submarines, you are either alive or dead.
잠대잠은 어뢰선빵이면 끝이겠네
아아니...절단신공 보소
일단 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