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에, 히스파노- 수이자 회사는 스위스제 Oerlikon FF S(기관포) 형식의 프로펠러 축 장착버전을 라이센스 생산하기로 함.  
당시 이 기관포는 breechblock 방식의 격발 방식을 사용하였고 이 방식이 제 구실을 하려면 평균 500RPM의 느린 사격속도를 가져야 했음. 두 회사는 각자의 의견에 강력하게 반대했고 사업관계는 끝남

1933년, 히스파노 수이자의 수석 엔지니어 Marc Birkigt는 스위스제 승냥이들을 걷어 차기위한 완전히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기로 함. 로킹 방식(locking mechanism) 은 미제 1919를 기반으로 했고, 스위스제 FF S와 같아 보이지만 가스 작동방식으로 700RPM을 달성, 특허제출 후 1938년 생산시작했음.  


1938년에, 프랑스의 요청으로 전투기용 히스파노가 탄생, 프로펠러 축 - 발사 방식으로 60의 적은 장탄수를 보였고,
히스파노는 1940년 탄띠급탄 방식을 꾀하고 있었음.
다른 더 무거운 구경의 23mm  파생형이 있었지만 다행히  자랑스러운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해서 도루묵먹음.^^


전쟁 발발후, 영국 정부는 전투기에 기관포를 장착하길 원해 히스파노의 라이센스 생산을 요구했고 그게 Hispano 맠원. 
시험 운용중 잼이 관찰되어 몇몇 의문을 품게 됬고 이는 짧은 기간동안 신형 전투기들에게 핍티켈의 장착을 초래함. 

이후 탄띠급탄식의 히스파노 맠투가 나오자 템페는 8개의 기총대신 네개의 기관포를 장착했고, 스핏은 과열후 냉각의 문제로 두정만 장착했었음
영궈는 미국의 라이센스 조건에 히스파노가 안맞을까봐 걱정했고 미국 병신들은 절대로 생산하지 않음. 결국 병신미국한테 생산하기를 포기함. 

히스파노 끝판왕은 맠삼이였고 더 높은 연사속도와 고고도에서의 얼음땡이 될 확룰을 줄여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