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
창을 겨누며 돌격하는 기병들. 1335년 그림
크레마 전투. 1515년 제작
기병대의 진형은 크게 얇은 횡진과 두꺼운 종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어느쪽이든 회전에서 대열을 이루고 돌격하는 기병들은 무거운 장화나 다리 갑옷을 신지 않으면 짓눌려서 다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다리를 딱 붙인 채 느린 속도로 달렸다. 12-13세기 기사문학의 표현을 빌리면 '장갑이나 과일을 위에 던져도 바닥에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창대 사이로 바람이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있어야 했다.
기병 연구자인 프랑스 역사학자 프레드릭 쇼비레(Frederic Chauvire)에 의하면, 이렇게 무릎과 무릎을 맞댄 밀집대형을 유지하기 위해 기병의 돌격은 달리기 좋은 지형에서조차 충돌 직전 최고 속도가 빠른 캔터나 느린 갤럽(15km/h 전후) 정도로, 사람이 뛰어서 따라잡을 수 있을만큼 꽤 느린 편이었다고 한다. 지형이 좋지 않은 곳에서는 느린 캔터로 충돌한 경우도 흔했을 것이다. 때문에 많은 군사 저술가들이 오해의 여지가 있는 충돌(collision)이라는 용어 대신에 교전(engagement), 접촉(contact), 강습(onset), 침범(boarding)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기병 충격 전술은 속력이 느려지더라도 진형을 확고하게 유지하는 것이 유리했으므로 충동적이고 단순무식한 기사의 이미지와 달리 인내와 규율이 가장 중요했다. 1220년대에 편찬된 윌리엄 마셜의 전기에는 토너먼트 단체전에서 밀집대형으로 동료들과 열을 맞추어 일정한 속도로 진격한 기병대가 무질서하게 돌진한 상대편 기병들을 물리치는 장면들이 묘사된다.
His side drew up in good and serried order, but their opponents scorned to do so: oozing proud confidence because of their mighty numbers, they charged in disarray to meet them before their lists.
There were no preliminaries or warm-up jousts!
They went straight at it with all their might, storming in disorder at the Young King's battalion, who met them fiercely, fired to fight well.
You'd have seen maces smashing down on heads, swords cutting through heads and arms.
And the over-confident came off worse: charging as they were with no formation, not keeping together at all, they were quickly routed and sent reeling back, the first to arrive the first to leave.
The Marshal left the king and rode after a troop who were trundling off in retreat; he charged into their midst with such force that he brought a knight crashing down, but he didn't stop to take him captive: he was bent on giving such an account of himself that all who saw him would have to bear true witness!
He drove them back and sent them packing, showing them the way with fearsome blows.
Another troop now fell on him in numbers, forcing him back to the Young King's lines; but with that they left the combat, in which the Marshal's display had won him mighty esteem that day from all who'd witnessed it.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왕[청년왕 헨리]의 부대는 훌륭한 밀집대형으로 모여 섰지만, 상대편은 그렇게 하는 것을 멸시하며 거부했다: 수적인 우세를 믿고 거만한 자신감을 내보이면서, 그들은 어지럽게 뒤섞여 돌격했다.
예선전(preliminary)이나 준비운동용 창시합(warm-up joust)은 없었다!
그들은 온 힘을 다해서 진격해 젊은 왕의 부대로 무질서하게 뛰어들었고, 왕의 부대는 전의를 불태우며 사납게 맞서 싸웠다.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철퇴가 머리를 깨부수고 칼이 머리와 팔을 베어 가르는 광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나치게 자신감 넘치던 측이 더 못 싸웠다: 전혀 서로 뭉치지 못하고, 대형을 갖추지 않은 상태로 돌격했기 때문에, 그들은 빠르게 격퇴당했고 뒤로 휘청거리며 쫓겨났다.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이 가장 먼저 도망쳤다.
윌리엄 마셜은 왕의 곁을 떠나서, 비틀거리며 도망치는 적 부대 하나를 뒤쫓아 말을 달렸다. 그는 강한 기세로 적들 가운데 돌격해서 기사 한 명을 쓰러뜨렸지만 그를 포로로 잡기 위해 멈춰서지 않았다: 그는 누구라도 진실한 증언을 할 수밖에 없을 그런 (흠 없는) 공적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무시무시한 공격들로 도망칠 방향을 가르쳐주며 적들을 물리치고 쫓아냈다.
이후 다른 부대가 수적 우위를 앞세우며 윌리엄 마셜에게 덤벼들어서 그를 젊은 왕이 있는 대열로 몰아붙였지만, 그들은 윌리엄 마셜을 더 추격하지 않고 전장을 떠났고, 그 싸움에서 윌리엄 마셜이 보인 무용은 그것을 목격한 모든 사람들로부터 그에게 커다란 존경을 가져다주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Nigel Bryant, trans., The History of William Marshal, 2016.
영국 창기병 훈련. 1902년경.
1119년의 브레뮬 전투를 기록한 오더릭 바이탈리스의 묘사는 엉성한 기병 대열이 단단한 보병 방진에 정면으로 부딪혔을 때 일어나는 전형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Certainly the French launched the first fierce attack but, charging in disorder, they were beaten off and, quickly tiring, turned tail. Richard the king's son and a hundred knights were sitting on their horses ready for battle; the rest fought on foot in the field with the king. In the forefront William Crispin and eighty knights charged the Normans, but their horses were quickly killed, and they were all surrounded and cut off. Godfrey of Serrans and other knights of the Vexin then fought back valiantly, and made the whole line fall back somewhat. But the seasoned warriors re–covered their courage and strength and captured Burchard and Otmund and Aubrey of Mareil and many other French knights, who had been unhorsed.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프랑스군은 첫 번째 맹공격을 가했지만, 무질서하게 돌격해서 격퇴당했으며 빠르게 지쳐서 등을 돌려 도망쳤다. 왕[헨리 1세]의 아들인 리처드와 기사 100명은 말 위에 앉은 채 전투준비를 갖추었고, 나머지는 왕과 함께 전장에서 도보로 싸웠다. 선두에서 윌리엄 크리스핀과 (프랑스의) 기사 80명이 노르만인들을 향해 돌격했지만 그들의 말은 순식간에 살해당했고 기수들은 모두 포위당해 단절되었다. 세랑의 고드프루아와 벡생 출신의 다른 기사들은 이후 용감하게 저항했고, 적진 전체를 어느 정도 밀어붙였다. 하지만 노련한 전사들은 용기와 힘을 회복하여 Burchard, Otmund, Aubrey of Mareil, 그리고 다른 많은 낙마한 프랑스 기사들을 포로로 잡았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Orderic Vitalis, trans. Marjorie Chibnall, The Ecclesiastical History of Orderic Vitalis
기병 돌격은 전투에서 가장 두렵고 고통스러운 순간 중 하나이며, 이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따라서 대열을 횡으로 늘릴수록 이론상 충격력은 증가하지만, 용기와 능력이 부족한 기병들이 전방에 서는 비율도 높아지며, 조절을 잘못 할 경우 교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탈자가 발생하고 그것을 본 정예병들도 사기가 떨어져서 순식간에 대열이 와해될 수 있었다. 아니면 어떻게든 적 대열 앞에 도달은 했지만 일부는 '빠르게 지쳐서 등을 돌려 도망'치고 일부는 '포위당해 단절'되는 결말을 맞거나.
반대로 대열의 종심이 깊을수록 전방에 선 정예병의 밀도를 높일 수 있으며, 더 많은 기병들이 후열에서 돌격과 충돌의 스트레스로부터 보호받고, 용기를 얻은 후열의 지원을 통해 다시 전열의 사기가 오르는 상승효과가 발생해서 더 강하고 지속적인 힘으로 전선을 돌파할 수 있었다. 종종 보병대나 기병대가 밀집된 종진이나 쐐기진을 취해서 포위당하기 전에 상대 전열을 뚫어버리는 것은 이런 원리로 이루어졌다.
Now is it like that those whom wee set foremost are choice men, and the second doe wel second them in valour:
and it is a miserable companie that hath not at the least 25. good men in it.
As for the rest who I presuppose not to be so valiant, they be placed as it were in couert vnder the shadow of the former, which maketh them to followe the more cheerefullie to the charge, as knowing that the head must beare all the daunger and hurt, which if it breake the enimie, they shall be partakers of the same honour.
So that it is a notable signe of cowardlynesse, when a troupe so ordered dare not joyne. Considering that the valour of the first should vrgè them to the onset, and the assurance of the last to follow and thrust in.
But when a troupe is set in a wing, although the good, which ordinarily are the smallest number, do march cheerely to the onset, yet the rest that are not so willing to bite, (which faine to bleede at the nose, to haue a broken stiroppe, or to haue their horse vnshooed) doe staie behinde, so as within two hundred paces of waie, we shall see glasse windowes in that long file, & great breaches wil appeare therein, which greatly incourageth the enimie:
and many times among an hundred horse, scarce 25. doe enter in:
who afterwarde knowing themselues to haue no supporte, when they haue broken their staues and stroke one blowe with the sword, (if they be not ouerthrowen at their first comming,) do retire.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첫 번째 열에 최고의 기병들(choice men)을 세운 다음, 두 번째 열에는 두 번째로 용맹한 기병들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선두열에 세울 최소 25명의 정예병을 가지지 못한 기병중대는 불행한 부대(miserable companie)다
지휘관이 선두열에 세우기에 충분히 용맹하지 못하다고 평가한 나머지 기병들은 선두열에 세운 정예병들의, 말하자면 그림자 아래에 놓이도록 배치되는데, 그렇게 하면 이들은 선두열만이 모든 위험과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반면 그들에 의해 적진이 무너진다면 자신들도 그들과 함께 영광을 누릴 것을 알기 때문에 선두열을 따라서 돌격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첫 번째 열에 선 기병들의 용기가 그들을 적진에 충돌하게 만들고, 마지막 열에 선 기병들의 확신이 그들을 뒤따라 파고들게 만든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종진으로 배치된 기병대가 돌격에 실패하는 것은 상당한 겁쟁이들이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기병대가 선형진으로 배치된다면, 비록 소수의 정예 기병들이 적진에 충돌하기 위해 힘차게 진격하더라도, 의욕이 부족한 나머지 기병들은(이들은 코에서 피가 터지고, 등자가 망가지고, 말굽에서 편자가 벗겨진 것처럼 가장한다) 옆에서 따라가지 않고 멈춰서며, 그 결과 200보도 못 가서 우리의 긴 선형진 안에 연약한 유리창들(glasse windowes)이 만들어지고, 그곳에 커다란 구멍들이 생겨날 것이며, 그것을 본 적들의 사기가 크게 오를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기병 100명 중 고작 25명이 돌격에 끝까지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도 창으로 한 번 찌르고 검으로 한 번 공격을 가한 직후, 자신들을 지원할 병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 잠깐의 교전에서 적의 공격에 쓰러지지 않는다면) 퇴각할 것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La Noue, Francois de. 1587. The politicke and militarie discourses of the Lord de la Novve. Whereunto are adioyned certaine obseruations of the same author, of things happened during the three late ciuill warres of France.
그러므로 헐리우드 영화의 클리셰처럼 기병대가 무질서하게 흩어진 채 질주하며 횡대든 종대든 밀집대형을 이룬 적 진형에 달려드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상대방 역시 수준이 떨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양측 모두 똑같이 사기만 높고 기마술과 규율이 부족한 심해 대전에서는 두 진형의 밀집대형이 풀어지면서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 공격을 주고 받으며 지나쳐 부대 전체가 '깍지 낀 손가락처럼' 일제히 통과해 나가는 기이한 장면이 연출되는데, 이는 서유럽 기병대의 평균적인 수준이 하락한 17세기 중반에서 18세기 중반 사이 기병전에서 특히 자주 목격된 현상이었고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을 계기로 다시 근접 전투 훈련을 중시하게 된 18세기 후반과 나폴레옹 전쟁 시기쯤이 돼서야 감소한다.
When the armies united together, a certain byword which from of old used to be uttered by the French to the Germans was then openly applied, which verbally runs something like "Budge, German."
Whence such a thing takes its origin I will immediately reveal.
These nations' fashion of waging battle is not the same.
The French are particularly capable of riding horseback in good order and attacking with the spear, and their cavalry surpasses that of the Germans in speed.
The Germans, however, are able to fight on foot better than the French and excel in using the great sword.
So whenever the Germans campaign against the French, they feel doubtful of their cavalry and determine to wage war on foot.
Encountering their undisciplined cavalry, the French defeat it;
charging the more expert part of the Germans, they drive back those who go on foot, although they are greatly inferior to them in number;
they mock them with the said expression, because while it is possible to fight with horses, they choose warfare on foot.
As stated, this was then repeatedly applied by the French to the Germans and greatly vexed them.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군대들이 서로 합류한 뒤, 프랑스인들이 옛날부터 독일인들에게 말하곤 했던 특정한 상투어가 공공연히 사용되었는데, 이는 대략 "움직여라, 독일놈아." 라는 의미의 말이었다.
설명하자면 이런 모욕의 기원은 다음과 같다.
이 두 종족은 전투를 벌이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프랑스인들은 훌륭한 진형을 이룬채 말을 타고 달리거나 창으로 공격하는 데 능숙하며, 그들의 기병대는 속도에서 독일 기병대를 능가한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프랑스인들보다 도보전투에 더 능숙하며, 큰 검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다.
그래서 독일인들은 프랑스인들을 상대로 전쟁을 할 때마다, 자신들의 기병대의 능력에 의심을 가지고는 도보로 싸우기로 결정한다.
기병대의 교전이 벌어진다면, 프랑스 기병들이 규율 없는 독일 기병들을 물리친다.
독일인들이 더 자신있어하는 분야인 보병 진형에 돌격해도, 병력이 열세임에도 프랑스 기병들이 도보로 싸우는 독일 기병들을 물리친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위와 같은 표현으로 독일인들을 조롱한다. 그들이 말을 타고 싸울 수 있는데도 도보로 싸우기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프랑스인들은 이 말을 계속 반복해서 독일인들을 매우 화나게 만들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Joannes Kinnamos(1143-?), trans. Charles M. Brand, Deeds of John and Manuel Comnenus.
*백병전
로케런 전투. 1530년경 그림
기병대, 특히 중기병대의 랜스 돌격의 충격은 당대의 여러 군사서와 군인 회고록 저자들이 증언하듯이 두렵고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그 자체로 부대 간의 교전의 승패를 결정짓지는 못했다.
돌진하면서 들이받는 카우치드 랜스의 위력으로도 같은 중기병의 방패와 사슬갑옷, 또는 후대의 플레이트 아머를 뚫고 치명상을 입히기는 어려웠으며, 특히 제일 앞열에 서는 정예 기병이 입는 상등품 갑옷을 뚫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15세기의 콘도티에로 피에트로 몬테는 오직 어리석은 자들이나 말이 아닌 기수를 겨냥한다고 주장했으며 16세기의 군사저술가 프랑수아 드 라 누는 갑옷을 입은 기병이 창에 맞아 죽는 것은 기적이나 마찬가지라고 표현했다. 동시대 카스티야의 기사인 후안 퀴자다도 일단은 기수의 배를 찌르라고 조언하지만 기수가 아닌 말을 찌르는 사람도 많다고 덧붙인다.
돌격의 목적은 병사 개인을 살상하는 것이 아니라 적의 진형을 흔들고, 부대의 관절 마디에 해당하는 기수와 장교들을 위험에 노출시키고, 공포와 혼란을 일으킴으로써 응집력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16세기 네덜란드 독립 전쟁 참전자인 로저 윌리엄스(1540?-1595)는 제대로 장전해서 쏠 경우 무기 자체의 살상력은 권총이 랜스보다 더 강했지만 달리면서 들이받을 때의 물리적인 충격과 공격적인 기세에서 전해지는 심리적인 충격으로 대오를 갖춘 돌격전에서 창기병이 권총기병에 비해 이점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돌격에서 랜스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은 제일 앞열에 선 숙련된 창잡이 뿐이며, 나머지 인원이 든 랜스는 거의 장식에 가깝고 진형을 잘 유지하면서 따라가기만 해도 제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졌다. 기병의 절반 이상은 검이나 권총같은 근접무기를 바꿔 들기 편하게 왼손에 미리 들고 있으라고 지시받는다.
The captains or captaine that charges either with troups or troupe, cares not much whether the companies breake their launces or not, but desires them to enter resolutely, and to keep close together.
If they be wel conducted, their leaders command more than half of them to carie their swords or pistols in the bridle hand, rather than faile to vse the sword & pistoll, & quit their Lances;
but they wil be sure to place the best of the Lantiers in the forefront. Lightly of euery hundred, 15. or 20. know how to breake:
being wel broken, with care of the goodnesse of the staffe and head, the blowe of the Launce is little lesse in valor vnto the pistoll:
the charge of the Lantiers is terrible and resolute, being in carier to breake, the enemies perceiues their resolution is to enter, and not to wheele about like vnto the pistolers.
......
The most Chiefes or Souldiers of account are armed at the proofe of the Pistoll. If the Leaders commaund their troupes to spoyle horses, the Launces are more sure.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창기병대와 함께 돌격하는 부대장들은 부대원들이 적을 제대로 찌르든 안 찌르든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그저 단호하게 진격하고 서로 가까이 선 대형을 유지하기를 희망한다.
제대로 지휘된다면, 지휘관들은 창기병들 중 절반 이상이 고삐를 잡은 왼손에 검이나 권총을 쥐고 있으라고 지시하며, 그렇게 해서 (백병전에서) 랜스를 버린 뒤 검과 권총을 쓰지 못하게 되는 일을 방지한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창기병들 중 정예들, 즉 일반적으로 100명당 창을 잘 다루는 15-20명을 제일 앞열에 배치할 것이다:
좋은 품질의 창대와 창날로, 잘 겨냥된 랜스의 타격은 권총 사격에 비교할 때 기백이 뒤떨어지지 않는다.
창기병들의 돌격은 무섭고 단호하다, 그들이 창으로 찌르기 위해 진격하는 모습을 본 적들은 그들의 확고한 결심이 권총기병처럼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대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
지휘관들이나 중요한 기병들은 방탄인증된 갑옷으로 무장하며, 따라서 지휘관들이 부하들에게 (갑옷을 입은 기수 대신) 말을 공격하라고 명령한다면 권총보다는 창으로 이 명령을 수행하기가 더 쉽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Williams, Roger, Sir (1540?-1595), A briefe discourse of warre. written by Sir Roger williams Knight; with his opinion concerning some parts of the martiall discipline.
Whereupon I will say that although the squadrons of spears do give a gallant charge, yet it can work no great effect, for at the outset it killeth none, yea, it is a miracle if any be slain with the spear. Only it may wound some horses ......
Although the first rank may with their spears do some hurt, especially to the horses, yet the other ranks following cannot do so, at the least the second and third, but are driven to cast away their spears and to help themselves with their swords.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러므로 비록 창기병 부대가 용감하게 돌격하더라도, 그것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는 없다고 말할 것이다. 창기병의 돌격은 충돌 순간 아무도 죽이지 못하며, 누구라도 창에 맞아 죽는 것은 기적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단지 말 몇 마리에게나 부상을 입힐 수 있을 것이다. ……
비록 첫 번째 열의 창기병이 창으로 적에게, 특히 적이 탄 말에게, 약간의 피해를 입힐 수 있더라도 뒤따르는 다른 열들은, 최소 두 번째와 세 번째 열은, 그렇게 할 수 없으며 대신 창을 버리고 검을 들고 싸워야할 상황에 처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La Noue, Francois de. 1587. The politicke and militarie discourses of the Lord de la Novve. Whereunto are adioyned certaine obseruations of the same author, of things happened during the three late ciuill warres of France.
갑옷의 약점을 찌르기 좋게 개량된 형태의 검을 들고 싸우는 기병들. 13세기 그림
랜스로 앞열의 적을 찔러서 넘어뜨리거나 부상을 입힌 다음에는 검이나 워해머 등 짧은 무기를 들고 싸움을 계속했다. 백병전은 이렇게 교전을 시작한 두 부대 중 하나가 집단으로서 응집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응집력의 와해는 충돌 순간 대열을 더 잘 유지한 측이, 점차 우위를 점하면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아군의 진형을 유지한 채 상대의 대열 안으로 침투해 들어가면서 발생했다.
'Therefore let us hasten to attack them and, when our lances are broken, let us approach closer as quickly as possible brandishing our unsheathed swords around their heads, so that their pride may be brought low by our constant blows.'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러므로 서둘러 저들을 공격하여, 우리의 랜스가 부러졌을 때, 뽑아든 칼을 저들의 머리 주위로 휘두르며 가능한 한 빨리 가까이 접근하자. 그렇게 해서 우리의 끊임없는 타격으로 저들의 긍지가 꺾이도록.'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Walter the Chancellor, trans. Thomas S. Asbridge and Susan B. Edgington, Walter the Chancellor’s the Antiochene Wars.
In fighting on horseback with heavy armor, we must keep our horse's head toward the opponent, trying to get him by the side or back, and so that he cannot do the same to us. And furthermore, and most importantly, we must stand our ground or push toward the opponent, particularly when the opponent drives his horse over us, since if we do not then collect the reins, or do not press forward as much as possible, and our horse will easily fall backward or we will eventually be driven from the lists(Line of battle?), and various other disgraces will happen to us.
Therefore whenever the opponent drives his horse toward us, we should drive ours toward him, and if he throws a blow with a sword, estoc, warhammer, or similar weapon, we should receive it with our sword or with one arm. If the opponent pushes at us, we should push him back with speed and strength, so that he falls backward.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중무장 상태의 마상전투에서, 너는 항상 말머리를 상대가 있는 방향쪽으로 유지하고, 반대로 상대는 너를 정면에서 마주하지 못하도록 상대의 측면을 잡아야 한다. 그렇게 제자리에서 버티거나 상대를 강하게 밀어붙어야한다. 상대가 너를 밀어붙일 때 고삐를 잡아 버티거나 가능한 한 정면에서 맞받아치지 못한다면, 너의 말은 간단히 뒤로 밀려날 것이고, 너는 결국 시합장(또는 전열)에서 벗어나거나 그밖에 여러 치욕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대가 네 쪽으로 말을 몰아서 달려들면, 너도 반드시 정면에서 맞받아쳐야 한다. 그리고 상대가 검, 에스터크, 워해머 등의 무기로 공격을 가하면, 너도 오른손에 든 검이나 건틀릿을 낀 왼손으로 정면에서 받아쳐야 한다. 상대가 너를 밀어붙이면 너도 강하고 빠르게 정면에서 밀어붙여야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Pietro Monte, (1509), Pietro Monte's Collectanea: The Arms, Armour and Fighting Techniques of a Fifteenth-Century Soldier, trans. Jeffrey L. Forgeng.
야생 상태의 동물들이 보이는 모습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대등하거나 더 강해 보이는 경쟁자와의 근접 전투 상황에서 커다란 심리적 압박을 받으며 가능하면 그 장소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러한 본능을 억제하는 여러 요인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집단의 응집력이었다. 따라서 보병대든 기병대든 분열되고 고립되어가는 느낌에서 쌓이기 시작한 두려움이 병사들의 전투수행의지를 꺾는 임계점을 넘는 순간 더 이상 의미 있는 저항을 할 수 없게 되었다.
Q. If attacked by heavy cavalry?
A. As soon as you discover his design, ploy quickly into one or several close columns, according to the time at your disposal, and then charge the centre of the advancing line; turn back as soon as you have pierced it; then by deploying and making a half turn, you can take in rear these great heavy troopers, whom you will surround and overthrow, one by one, at very little cost to yourself.
......
Carbineers should, then, attack lancers as they would cuirassiers; that is to say, charge in column, and pierce their centre.
Once among them, the carbineers should close in on them, hand to hand, and try always to roll them up in mass, to drive them back huddled together and helpless, as far as possible.
The lancers, crowded together, can neither point nor parry, and one of two things must happen: either they will throw away their lances to draw their sabres, in which case you will fight them with equal chances, or they will decide to keep the lances, in which case you will get them very cheaply.
Our flank files in the lancers of the Imperial Guard did not carry lances.
I remember in two cases in 1814 (at Hoogstraaten, near Breda, and Pont-Atrecin, near Lille) coming in contact with a body of Russian and Prussian lancers who, like ourselves, were bent on holding a narrow road, bordered by deep ditches.
I placed at the head of my column our gallant carbineers, and ordered my lancers to follow them, after having put their lances in the boots and drawn sabres.
Having penetrated to the centre of the enemy's crowded masses, our success exceeded our highest expectations, as we sabred them without risk to ourselves.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Q. 중기병의 공격을 받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A. 적의 의도를 알아채는 즉시, 주어진 시간에 따라서 기병들을 하나 또는 여러개의 밀집된 종진으로 배치하고, 중기병 대열의 중앙으로 돌격해야 한다.
중앙을 뚫고 나간 다음 반바퀴 돌면 이 크고 무거운 기병들의 뒤를 잡을 수 있고, 매우 쉽게 하나씩 포위해서 각개격파할 수 있을 것이다.
......
창기병도 흉갑기병과 동일한 방식으로 상대해야 한다; 즉, 종진으로 돌격해서 중앙을 뚫고 나가는 것이다.
대열을 돌파해서 포위한 뒤, 백병전으로 최대한 강하게 압박해서 창기병들이 서로 무질서하게 뒤섞여 무력한 상태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창날로 찌를 수도 창대를 휘두를 수도 없게 된 창기병들은 반드시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창을 계속 들고 있거나, 창을 버리고 세이버를 뽑아들거나.
전자는 아주 쉽게 제압할 수 있고, 후자는 서로 동등한 조건에서의 싸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제국 근위 창기병 연대들은 양익의 기병들이 창으로 무장하지 않았다.
나는 1814년에 이와 관련된 두 가지 사례(하나는 브레다 근처의 호흐스트라텐에서, 다른 하나는 릴 근처의 퐁아트레셍에서)를 겪었다.
우리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양 옆에 깊은 도랑이 파인 좁은 도로를 차지하기로 결심한 러시아와 프로이센의 창기병대와 교전했다.
나는 종진의 전위에 용감한 용기병들을 배치하고, 후위에 창을 내려놓고 세이버로 무장한 창기병들을 배치했다.
우리가 적들의 밀집한 대열 가운데를 뚫고 나간 뒤, 이어진 성공은 예상을 뛰어넘어서 우리는 아무런 위험 없이 적들을 검으로 베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Antoine Fortune de Brack, (1831), Cavalry outpost duties
그러므로 단단하게 밀집한 채 자리를 지키며 움직이지 않는 보병 대형은 근접 전투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예하고 규율 잡힌 중기병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상대였다.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윌리엄 공작이 이끄는 노르만 기사들은 계속해서 궁수들과 보병들의 지원을 받고, 결국에는 거짓 후퇴 전술로 잉글랜드군의 진형을 흔드는 데 성공했음에도 전투 중에 윌리엄이 타고 있던 말이 두 마리 또는 세 마리나 죽고, 한번은 윌리엄이 전사했다는 소문에 전군이 붕괴할 위기까지 겪는 치열한 접전 끝에 어렵게 승리했다.
The English for their part resisted bravely each one by any means he could devise. They threw javelins and missiles of various kinds, murderous axes and stones tied to sticks.
......
Disdaining to fight from a distance, they attacked boldly with their swords.
The loud shouting, here Norman, there foreign, was drowned by the clash of weapons and the groans of the dying. So for a time both sides fought with all their might.
The English were greatly helped by the advantage of the higher ground, which they held in serried ranks without sallying forward, and also by their great numbers and densely-packed mass, and moreover by their weapons of war, which easily penetrated shields and other protections. So they strongly held or drove back those who dared to attack them with drawn swords. They even wounded those who flung javelins at them from a distance.
So, terrified by this ferocity, both the footsoldiers and the Breton knights and other auxiliaries on the left wing turned tail; almost the whole of the duke's battle line gave way, if such a thing may be said of the unconquered people of the Normans.
......
Three horses were killed under him and fell. Three times he sprang to the ground undaunted, and avenged without delay the loss of his steed.
Here his speed, here his physical strength and courage could be seen. With his angry blade he tirelessly pierced shields, helmets, and hauberks; with his buckler he threw back many. Marvelling at seeing him fight on foot his knights, many of them smitten with wounds, took heart again.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잉글랜드인들도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용감하게 저항했다. 그들은 투창을 비롯해 치명적인 도끼와 막대기에 묶은 돌 등 다양한 원거리 무기를 던졌다.
......
기사들은 원거리 전투를 멸시하고 거부하여 검을 들고 대담하게 공격을 가했다.
노르만인들과 외국인들이 곳곳에서 지르는 커다란 함성이 무기 부딪치는 소리와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에 찬 신음에 파묻혔다. 그렇게 한동안 양측 군대는 온 힘을 다해 싸웠다.
잉글랜드인들은 높은 지대에서 내려오지 않고 방어에만 전념하는 전술의 이점, 많은 병력과 밀집대형, 그리고 방패와 다른 방어 장비들을 쉽게 관통하는 그들의 전쟁 무기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그들은 감히 검을 뽑아 들며 공격해온 적들을 완강하게 막아서거나 쫓아냈다. 심지어 멀리서 투창을 던진 적들에게도 부상을 입혔다.
그래서 이 맹렬한 반격에 겁을 먹은 좌익의 보병들과 브르타뉴 기사들, 그밖의 보조병들이 등을 돌려 도망쳤고, 무적의 노르만인들에게 이런 표현을 써도 된다면, 공작의 전열의 대부분이 패주했다.
......
노르망디 공작의 말 세 마리가 전투 도중 죽어서 쓰러졌다. 그는 위기에 굴하지 않고 세 번 모두 땅으로 뛰어내렸고, 준마를 잃은 원한을 지체 없이 갚았다.
여기서 공작의 속도와 체력과 용기를 볼 수 있었다. 그는 분노를 실은 칼날로 끊임없이 방패와 투구와 사슬갑옷을 꿰뚫었고 방패로 많은 공격을 받아쳤다. 많은 기사들이 부상당하고 지쳤음에도 공작이 도보로 싸우는 것을 보고 경탄하여 다시 용기를 얻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William of Poitiers(c.1020–1090), trans. R.H.C Davis and Marjorie Chibnall, The Gesta Guillelmi of William of Poitiers
중무장 전사들을 앞세운 채 원거리에서 활로 교전하고 있는 보병 전열. 1220년경 그림
검을 들고 싸울 일이 없어진 현대에는 옛사람들이 검에 부여한(그리고 현대의 문학이나 매체가 재해석한) 수많은 상징적 의미들 때문에 오히려 단순한 병장기로서의 실용적인 의미를 간과하기 쉽다. 이를테면 왕이나 영웅이 사용하는 '귀중하고 특별한 무기'라는 이미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검 역시 창이나 다른 무기들처럼 일반 병사들 손에서 험하게 다루어지며 망가지고 소모되는 전쟁 도구라는 사실을 상상하지 못하고, 그에 따라 검 자체가 일부 귀족 장교들만 소지하는 예장용 무기였을 것이라고 짐작하거나 검술에 숙달하지 않으면 검을 전혀 다룰 수 없다는 식의 편견을 가지며, 사극 등에서 병사들이 검을 들고 대충 막싸움을 벌이는, 현실에 충분히 있을법한 장면들을 역으로 허구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검은 기병의 필수 무기 중 하나로 검에 대한 이해 없이는 기마전투의 과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예를 들어 1266년 베네벤토 전투를 다룬 여러 연대기들은 새로 개발된 칼끝이 뾰족한 짧은 검으로 독일 기사들의 갑옷의 겨드랑이 틈새를 노린 프랑스 기사들의 전술을 승리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지목한다.
Charles' men were very worn out, starving and well outnumbered, but in spite of Manfred's idiocy, they very nearly lost the battle after all - because those heavily armoured Germans, with their great swords, seemed to be impervious to the utmost that the French and Provencal knights could do to them.
They began to mow their opponents down, keeping knee to knee together and steadily forcing their way forward, hewing down all in front of them.
Then somebody noticed that when they lifted their arms to strike, a more or less unprotected place appeared under their arms.
All the chroniclers who wrote of this battle emphasise that the French were armed with swords quite different from those of the Germans, shorter and more accutely pointed.
The knight who noticed the weak, unarmoured place under the Germans' arms yelled out "a l'Estoc!, a l'Estoc!" "Use the point!"
And they did, thrusting their sharp little swords into the Germans' chests.
Very soon, their solid formation began to break up.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만프레드의 어리석은 행동에도 불구하고, 사를의 군사들은 지치고, 굶주리고, 수적으로도 상당히 열세였으며, 결국에는 전투에서 거의 질 뻔했다. 왜냐면 커다란 검을 들고 갑옷으로 중무장한 독일 기사들에게 프랑스와 프로방스 기사들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독일 기사들은 무릎과 무릎을 맞댄 밀집대형을 유지한 채 천천히 진격하면서 눈앞의 적들을 베어넘기기 시작했다.
그들이 검을 휘두르기 위해 팔을 들어올릴 때 팔 아래의 약점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아챘다.
이 전투를 다룬 연대기 작가들은 모두 프랑스 기사들이 독일 기사들의 검과는 확연히 다른 형태의, 길이가 더 짧고 칼끝이 매우 뾰족한 검으로 무장했음을 강조한다.
독일 기사들의 팔 아래의 취약한 갑옷 틈새를 알아챈 프랑스의 기사가 이렇게 외쳤다. "칼끝으로 찔러!"
그의 동료들은 그렇게 했고, 자신들의 작고 날카로운 검을 독일 기사들의 흉부에 찔러넣었다.
곧 독일 기사들의 굳건한 진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Ewart Oakeshott, Sword in Hand
이후 전신 갑옷으로 중무장한 군인이 전장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백병전에서 갑옷 입은 적을 공격할 때는 주로 얼굴과 골반과 겨드랑이의 갑옷 틈새를 노렸다. 그리고 충돌 상황과 마찬가지로 기수 대신 말을 먼저 공격하는 경우가 많았다.
And setting off at the gallop, placing your lance in the lance-rest, aim for the enemy's belly,
and once the lance is broken, you shall take hold of the estoc, which should be strapped onto the left-hand side of the front arcon, secured in place in such a way that you draw it the scabbard does not come with it. And when fighting with these weapons, strike at the visor and the voids, that is, the belly and the armpits.
After you have lost or broken the estoc, you shall take hold of the arming sword, which shall be girded on your left-hand side, and fighting until you have lost or broken it, you shall take hold of the hammer, which shall be attached to the right-hand side of the belt with its hook. Reaching down, you shall find it, and pulling upwards, the hook will release and, with hammer in hands, you shall do what you can with it until you lose it.
And after it is lost, you shall reach behind you and draw the dagger from behind your back.
And you shall grapple with your enemy with all these weapons that you have at your disposal, striking and aiming at the voids, that is, the belly and the armpits, and at the visor, with the estoc or sword and with the hammer in hand, for by wounding the head and the hands he will inevitably surrender.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갤럽으로 달리면서, 랜스를 겨드랑이 창받이에 끼우고, 적의 배를 겨눠라.
랜스가 부러지면, 뽑을 때 검집이 딸려오지 않도록 안장턱 왼쪽에 고정시켜 묶어둔 에스터크를 뽑아들고 면갑과 배와 겨드랑이의 갑옷 틈새를 찔러라.
에스터크를 부러트리거나 잃어버리면, 왼쪽 허리에 찬 아밍소드를 뽑아들고 싸워라.
아밍소드를 부러트리거나 잃어버리면, 오른쪽 허리에 걸어둔 워해머로 손을 뻗어서 잡고 위로 당겨서 고정을 푼 다음 들고 싸워라.
워해머를 잃어버리면 등허리에 찬 단검을 뽑아들어라.
에스터크 또는 아밍소드, 워해머를 손에 들고, 배와 겨드랑이와 면갑의 갑옷 틈새를 때리고 찌르면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가지고 적과 격투를 벌여야 한다. 머리와 손에 부상을 입히면 적은 어쩔 수 없이 항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Juan Quijada de Reayo, (1548), Doctrina del arte de la cavalleria.
르비딤 전투. 1370년경 그림
Paulus Hector Mair (1548), Opus Amplissimum de Arte Athletica
Wallhausen, (1614), Ritter kunst : Darinnen begriffen, I. Ein trewhertziges Warnung- schreiben wegen deß Betrübten Zustands jetziger Christenheit. II. Undersicht aller Handgriffen so ein jeder Cauallirer hochnötig zu wissen bedarff
17세기의 군사저술가 조르조 바스타는 패주하는 적을 추격할 때를 제외하면 수축구보(collected canter)가 가장 적절한 속도이며 그보다 빨리 달리면 검을 다루기 어렵다고 조언한다.
승마 수축구보
말을 잃거나 말에서 떨어진 기병들이 도보로 전투를 계속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때문에 후안 퀴자다는 전투 중 말을 잃었을 때 도보전투에서 방해가 되지 않도록 다리 전면만 판금이고 뒷부분과 발 부분은 사슬로 이루어진 경량화된 다리 갑옷을 입을 것을 추천한다.
카파르땁의 프랑크족 기병대가 적은 수로 우리를 공격했다. 우리는 적군 수가 적음을 알고 그들을 공격하러 갔다. 그들은 한 무리를 이루어 우리를 공격하려 매복하고 있었다. ...
우리는 적군 중 18명을 낙마시켰다. 그중에는 창에 찔려 죽은 자, 창에 찔려 말에서 떨어지고도 무사한 자, 그리고 타던 말이 창에 찔리는 바람에 걸어가야 하는 자가 있었다.
적군 중 무사하여 땅에 있던 자들은 자신들의 칼을 붙잡고 서 있다가 자신들의 옆을 지나가는 모든 병사를 칼로 쳤다. 줌아 알누마이리가 적군 중 한 명의 옆을 지나가자 그 적병은 줌아에게로 걸음을 내딛어 그의 머리를 칼로 쳤다. 줌아는 투구를 쓰고 있었다. 적병은 칼로 투구를 절단했고 그의 이마를 갈랐다.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피가 다 마를 정도로 나왔고 이미의 상처는 물고기 입처럼 열려 있었다. 우리가 프랑크인들과 싸우는 가운데 나는 줌아에게 가서 말했다. "아부 무함마드, 당신은 왜 상처에 붕대를 감지 않소?"
그는 "지금은 붕대로 상처를 처맬 시간이 아니오." 라고 말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우사마 이븐 문끼드(1095-1188) 저, 김능우 역, '성찰의 서'
창들은 깨지고 검과 단검이 맞부딪친다. 전사들은 도끼로 상대방의 머리를 부수려 하고 검으로 말의 배를 찌른다. 기수는 철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어서 칼날이 그것을 뚫고 지나가기 힘들다......
공격하는 자와 공격당하는 자가 지나치게 근접하여 뒤엉켜 있으며 보다 강력한 타격을 가하기 위해 팔을 뻗을 공간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각자가 자기편을 식별하도록 갑옷 윗부분에 부착된 명주천은 곤봉, 칼, 창에 의한 타격이 갑옷 위에 가해짐으로써 수많은 조각으로 갈라지고 찢어졌으며 그 결과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기가 극히 힘들었다......
말들이 전장의 곳곳에 나뒹굴고, 아랫배에 칼을 맞거나 무릎을 베인 채 마지막 숨결을 쉬기도 하고, 주인을 잃고 이리저리 날뛰다가 우연히 누군가가 올라타 달려나가기도 하였다. 시체가 나뒹굴지 않거나 죽어가는 말이 발견되지 않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백작이 적군의 대오 속에서 동분서주하고 있는 동안 투르넬 출신의 피에르라는 인물은 자신의 말을 잃고 걷고 있었다. 혈통이나 무예면에서 기사가 될 자격이 있는 이 전사는 왕의 진영에서 귀하고 훌륭한 자질의 사람이었다. 불로뉴 백작이 결코 물러서려는 마음 없이 전투를 개시하고 그를 에워싼 사람 모두를 상대로 불굴의 저항을 하는 것을 본 피에르는, 신속히 그를 향해 나아가 가죽과 쇠사슬로 만들어진 마갑을 왼손으로 들어올리고 오른손에 든 검을 말의 배에 찔러넣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기욤 르 브르통(1165-1225), Philippide
*연속돌격?
한국에서는 기사들이 일렬씩 순차적으로 돌격하여 랜스로 찌르고 난 뒤, 곧바로 방향을 돌려 빠져나와서 후방으로 가서 다시 랜스를 보급받으며, 후열이 먼저 돌진한 앞열을 엄호하면서 연쇄적으로 돌진했다는 설이 뜻밖의 논쟁으로 퍼져나간 적이 있었는데, 사실은 이것이 보편적인 랜스 전술이었다는 근거는 커녕 실존했다는 근거조차 없다.
창기병들을 얇은 대열을 이룬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눈 뒤 방진을 포위하고 사방에서 공격하는 전술은 실제로 사용되었지만, 이건 적을 포위해서 교란하고 노출된 약점을 찌르는 목적이지 랜스를 공급받으며 정면에서 연쇄 돌격으로 방진을 깎아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며 중세의 지배적인 전술이 아니라 고대부터 근대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된 기병 전술이었다.
클루시노 전투(1610). 파이크를 앞세운 보병 전열에 돌격하는 후사르. 1620년경 그림
However, they swiftly recovered their spirit and resumed their strength. Thirsty for revenge, like a lioness whose cubs have been stolen from her, they charged even more vigorously into the enemy and passed through them as if they were breaking through a net.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지만 그들은 빠르게 사기를 회복하고 다시 힘을 냈다. 그리고 마치 새끼들을 빼앗긴 암사자와 같이 복수심에 불타며, 더욱 힘차게 돌격해 그물을 찢듯이 적진을 뚫고 나갔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순례자들의 여정과 리처드 왕의 무훈 - 아르수프 전투(1191)
이 시대의 군사저술가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기병 돌격은 단번의 돌격으로 적의 대열 안으로 깊이 파고들어서 가능한 한 빨리 진형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일단 말과 기수의 체력과 정신력이 무한하지 않다. 이름만 가난한 전우들이지 부유한 기사들이었던 성전기사단조차도 기사 한 명당 전투마 '2마리', 서전트 기병 한 명당 한 마리씩만 지급되었으며, 보험 기록을 통해 추정할 수 있는 13-14세기의 평범한 기사들의 군마의 품질은 결코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연속된 돌격으로 말이 지쳐도 함부로 바꿔탈 수도 없었다. 더구나 십자군 국가들 같이 항시 전시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상황이 아니면 군대의 주력이자 직업군인이라고 할 수 있는 30%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귀족 중기병들은 전의가 낮은 편이고 심하면 거의 민간인이나 다름없는 경우도 있었다. 위의 충돌 장에 인용된, 얇은 선형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프랑수아 드 라 누의 말처럼 이런 훈련도 낮은 기병들은 단 한 번의 패주로도 전의를 잃고 전투력을 상실할 수 있었으며 보통 정예병력도 돌격 2-3번이 한계였다.
헤이스팅스 전투나 크레시 전투 같은 중세의 유명한 전투들의 기병 연속 돌격 사례가 근거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건 자세히 뜯어보면 전부 돌격이 실패하고 패주한 것이거나 유인후퇴전술이었다. 헤이스팅스 전투를 기록한 푸아티에의 윌리엄의 연대기에서는 그냥 대놓고 잉글랜드인들의 맹렬한 반격에 겁을 먹은 기사들이 등을 돌려 도망쳤고 윌리엄 공작의 전열의 대부분이 패주했다고 표현한다.
살라딘의 측근이었던 바하 앗딘은 아르수프 전투에서 십자군 기사들이 도망치는 무슬림 기병들을 추격하다가 매복을 경계하며 멈춰서서 재정비를 하고 다시 추격하는 식으로 총 3번의 돌격을 가했다고 표현한다.
이렇듯 인터넷 역사 관련 커뮤니티에서 오랫동안 반박의 여지 없는 정설로 인정되어온 이론들도 거슬러 올라가면 전제부터가 잘못된 경우가 많다.
------
글자수 제한으로 잘린 부분 추가해서 재업
와 왤케 유익함 개추
아니 여기다 왜 논문을 쓰고 있어
아니 기병 연속돌격도 잘못된 정보였어? ㅋㅋ
진짜 유익하고 몰랐던 내용들이 많네 개추개추
good
패독갤 토갤 군갤 다 올리네 ㄷㄷ
개추. 연속돌격은 이건 뭐 혼란의 연속이네 ㅋㅋㅋ 첨에는 반지의 제왕식으로 적 진형을 꿰뚫고 끝까지 돌격하는 장면이 비현실적이라는 컨셉으로 연속돌격 개념이 나왔는데 실제로는 또 아니었나보네
오홍홍 조아연 - dc App
중세추
랜스 공급받으며 로테 돌리는 거 그냥 낭설이었구나
연속돌격도 근거가 없는거였노 아 ㅋㅋ
개같이 추천
개추다 개추 -푸틴시진핑개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