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코르도바에 있는 루카누스의 흉상. [이미지 출처]
로마의 시인 루카누스 (Marcus Annaeus Lucanus, 39 ~ 65) 는 많은 작품을 남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작품이 유실되어 현재까지 온전히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딱 하나 뿐이다.
이 하나의 작품이 바로 불후의 명작인 <내란기 (De Bello Civili, 또는 Pharsalia)> 이다.
총 10권이라는 방대한 규모의 이 서사시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사이의 내전을 그리고 있는데,
1권에서는 유명한 역사적 순간인, 반란을 결단하고 무장한 채 루비콘 강을 건너는 카이사르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로마를 의인화한 여신이 머리에는 망루를 왕관처럼 쓰고, 귀신같은 꼴로 나타나 카이사르를 다그치는데,
카이사르는 이에 유피테르, 퀴리누스 등 로마 신화 속 신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들의 호의와 지지를 구하고는
루비콘 강을 건너 야음을 틈타 재빠르게 진군, 아리미눔 (Ariminum, 지금의 리미니) 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서구 문학에서 그 유려한 묘사로 극찬을 받고, 또 잘 알려진 이 장면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 등장하는데,
바로 아리미눔을 공격하는 카이사르군의 신속함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두 개의 비유이다.
원문에는:
"(...) sic fatus, noctis tenebris rapit agmina ductor Impiger, et torto Balearis verbere fundae Ocior,
et missa Parthi post terga sagitta; vicinumque minax invadit Ariminum."
번역하면:
"(...) 그 (= 카이사르) 는 그렇게 말하고, 그의 병사들을 재촉해 발레아레스 투석병이 던지는 돌덩이보다,
파르티아 기병이 몸을 꺾어 뒤로 쏘는 화살보다 신속하게 아리미눔 근교에 도달해 공포를 불러왔다."
이렇듯 루카누스는 카이사르군의 속도를 "발레아레스 투석병의 돌덩이" 와 "파르티아 기병의 화살" 에 비유했는데,
여기서 발레아레스 투석병이란 이름 그대로 이베리아 반도의 부속 도서인 발레아레스 제도 출신의 용병들을 일컫는다.
파르티아 기병은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알아보고, 오늘은 이 발레아레스 투석병에 대해 짤막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스페인령 발레아레스 제도 (Islas Baleares) 의 위치 (붉게 표시된 부분). [이미지 출처]
발레아레스 제도는 중앙의 마요르카 (Mallorca) 섬을 중심으로, 북쪽의 미노르카 (Minorca), 남쪽의 이비자 (Ibiza),
그리고 이비자 남쪽의 포르멘테라 (Formentera)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제도로, 현재는 모두 유명한 관광 명소이다.
발레아레스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 되었는데, 유물을 통해 파악한 결과 기원전 10세기부터 나름의 문명이 존재했다고 한다.
이 당시의 문명과 그 문화를 "탈라요틱 문화 (Talayotic Culture)" 라고 부르는데, 지금도 1,500개가 넘는 유적이 남아있을 정도로
밀집되어있고 번성했던 문화로 여겨진다. 대표적인 유적지로는 "토레 덴 갈메스 (Torre d'en Galmés)"가 있다.
카를로스 카스티요 (Carlos Fernández del Castillo), 발레아레스 원주민 가족의 상상화 (n.d.) [이미지 출처]
본래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섬을 "헐벗은 섬" 이라는 뜻의 "김네시아이 (Γυμνησίαι)" 라고 불렀는데,
칼키스의 리코프론 (Lycophron, 330~325 BC) 이 쓴 시 <카산드라 (Cassandra, 또는 Alexandra)> 에 따르자면,
이 이름은 섬의 원주민들이 헐벗고 (cloakless and unshod) 살아가기 때문에 붙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 작품 <카산드라> 에서는 발레아레스 원주민들과 투석구 사이의 각별한 관계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는데,
발레아레스 원주민들이 무려 세 개나 되는 투석구로 무장 (...armed with three two-membered slings) 했다고 등장하며,
또 그들의 부모들이 그 아이들로 하여금 투석구에 숙달되도록 만들기 위해 실시했던 특별한 전통에 대한 소개도 등장한다.
묘사에 따르면, 부모는 그 날 아이들의 식사가 될 빵을 긴 장대 등에 고정시켜 높은 곳에 올려두는데,
이 장대 위의 빵을 아이가 먹기 위해서는 빵을 투석구로 정확히 맞춰 떨어뜨려야만 했다고 한다.
즉 투석구로 빵을 맞추지 못하면 아무리 자기 아이라고 해도 가차없이 굶겼다는 뜻이다.
이후 로마와 카르타고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며 이 섬은 "발레아레이스 (βαλεαρεῖς)" 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데, 이 이름은
그리스어의 "쏘다 (βάλλω)" 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쏘는 자들의 섬" 이라는 뜻으로, 투석병의 명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스의 지리학자인 스트라본 (Strabo, 64 BC ~ 21 AD) 이 저술한 <지리학 (Geographica)> 에서도 원주민들에 대한 기술이 있는데,
여기서는 섬의 원주민들이 비옥한 토지를 탐낸 외적에 항상 시달려왔다는 사실을 소개하며, 그들의 싸움 방식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섬의 원주민들은 이미 당대 최고의 투석병 용병 (...being most excellent slingers,) 으로 높은 명성을 날렸으며,
항상 헐벗은 (naked) 상태로 전투에 나섰고, 한 손에는 염소 가죽으로 덮여있는 작은 방패를, 다른 손에는 투창을 들었는데,
투창은 날카롭게 간 끝 부분을 불에 달궈 경화시킨 것을 사용했고, 별도의 금속제 촉을 단 투창도 매우 드물게 사용했으며,
검은 골풀, 머리카락, 동물의 힘줄 등으로 만든, 서로 다른 길이의 투석구 세 개를 머리에 둘러메고 있었다고 한다.
이 서로 다른 길이의 세 투석구는 각각 매우 긴 것, 중간 길의 것, 그리고 짧은 것이 있었는데,
긴 것은 멀리 있는 적에게, 짧은 것은 가까운 적에게 쓰는 식으로, 각기 다른 거리의 목표를 맞추기 위함이었다.
<지리학> 에서도 <카산드라> 에서 묘사된, 매달아둔 빵을 쏘아 맞추는 전통에 관해 거의 완전히 동일하게 서술하고 있다.
발레아레스 제도는 본래 페니키아인, 즉 카르타고의 영향력 하에 있었고, 자연히 이 원주민들도 그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원주민 특유의, 품이 널널한 튜닉을 입는 관습은 페니키아인들의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부분이라 설명된다.
이 당시 악명 높은 해적때가 발레아레스 제도를 기점으로 지중해 일대의 무역로를 약탈하는 등 활개치고 있었는데,
로마의 군인이자 훗날 집정관이 되는 메텔루스 (Quintus Caecilius Metellus) 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원전 123년에
함대를 이끌고 쳐들어가 정복한 뒤로 로마의 영향권에 들어오게 된다.
역시 스트라본의 <지리학> 에 따르면, 이미 발레아레스 투석병의 명성에 대해 잘 알고 있던 메텔루스는
현명하게도 함선 위에 두꺼운 가죽을 씌워 먼 거리에서 날아오는 돌덩이에 병사가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였으며,
그 덕택에 섬을 큰 무리 없이 제압할 수 있었고, 이후 3,000 명에 달하는 이베리아의 로마인을 이주시켰다고 한다.
이 군공으로 메텔루스는 "발레아리쿠스 (Balearicus)" 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조니 슈마테 (Johnny Shumate), <발레아레스 투석병의 상상화 (Drawing of a Balearic slinger, 2005)> [이미지 출처]
발레아레스의 투석병은 용병으로 지중해 일대에서 대단한 명성을 떨쳤다.
본래 카르타고의 영향권 하에 있었다는 이야기대로, 투석병들은 처음에는 카르타고의 페니키아인들을 위해 싸웠다.
카르타고는 부족한 시민 병사의 수로 인한 전력 공백을 북아프리카와 스페인 일대의 다양한 부족 출신 용병으로 채웠는데,
발레아레스 투석병 역시 이런 용병의 한 예로, 당시 카르타고 군대의 핵심 전력 중 하나로 인정받은 모양이다.
그리스의 역사가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Diodorus Siculus, 1C BC) 의 <역사총서 (Bibliotheca Historica)> 에 소개된 활약상으로
기원전 311년, 대 한노 1세 (Hanno the Great) 의 손자인 하밀카르 (Hamilcar) 가 시라쿠사를 공격할 때 벌어진
히메라 강 전투 (Battle of the Himera River) 당시, 그는 1,000명의 발레아레스 투석병을 비롯한 많은 용병을 거느렸는데,
이 투석병들은 하밀카르의 명령을 받자, 아군을 압도하고 전진하는 시라쿠사 병사들을 향해 무수히 많은 돌덩이를 날렸고,
날아간 돌덩이는 적들의 방어구를 깨뜨리고, 전열을 와해시켜 결과적으로 승리에 큰 공헌을 하였다고 한다.
이 때 투석병들은 대략 1미나 (מנה) 무게의 돌덩이를 던졌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대략 400~600g 정도 되는 무게이다.
또 여기에서도 어김없이 이 투석병들이 어렸을 때부터 철저한 훈련을 받았다는 묘사가 등장하고 있다.
이후 이어진 다른 전쟁에서도 이 발레아레스 투석병들은 계속해서 카르타고군의 핵심 용병으로 그 모습을 보인다.
발레아레스 제도가 로마 제국의 영향권에 든 이후로도 투석병은 용병으로서의 명성을 계속 이어나간다.
다수의 보조병을 운용하던 로마군에게 있어서도 확실한 화력을 제공하는 발레아레스의 투석병은 매력적인 용병이었는데,
이 덕분에 지중해의 다양한 분쟁, 심지어는 골족과 같은 내륙의 야만인들을 상대할 때에도 투석병이 동원된 기록이 보여진다.
카이사르가 갈리아 원정에 나섰을 때에도 발레아레스 용병을 거느렸고, 훗날 마살리아 (Massalia, 지금의 마르세이유) 에서
카이사르에 맞선 로마군에도 이들이 있었다고 하니, 투석병의 명성과 활용도가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그로를 위해 제목에선 짱돌이라고 했지만, 사실 발레아레스 투석병이 아무 돌맹이나 주워서 쓴 것은 아니다.
표면이 매끈하지 못한 돌맹이는 투석구의 수명을 크게 줄이고, 또 궤적도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투석병들은 표면이 균일하고 동글동글한 자갈을 미리 골라 옷 속에, 또는 별도의 주머니에 담고 다녔다.
나중에는 돌탄의 위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재질로 제작된 탄환을 쓰기도 하였는데,
대표적으로는 흙을 구워 만든 토탄, 그리고 납이나 철을 녹여 주조해 만든 금속탄 유물이 존재한다.
앤서니 에버렛 (Anthony Everitt), <Augustus: The Life of Rome's First Emperor> (2006), 조윤정 한역본 (2008) 中
이런 탄환 유물 중 일부에는 적을 모욕하는 구절이 적혀있기도 한데, 그 욕설 수준이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여기 직접 쓰기는 좀 그러니 그냥 위의 짤을 참고하도록 하자. 이미 인터넷 상에서 꽤 유명한 이야기인 듯?
참고로 새총은 오역이다. 영어로는 투석구나 새총이나 둘 다 "Sling" 이라 생긴 오해 같다.
발레아레스 제도의 투석병은 로마 제국이 몰락하는 순간까지도 뛰어난 용병으로 그 명맥과 명성을 유지했으며,
심지어는 중세 시대에도 활약했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이 부분은 확인 불가) 긴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내란기> 등 로마 문학에서도 "재빠른 것" 을 묘사하기 위한 비유로 종종 사용되었을 정도라는 부분에서
당대에도 그 명성이 대단했다는 사실을 이미 문서 초입에서 다들 눈치챘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투석구로 골리앗을 제압하는 다윗을 그린 그림 [이미지 출처]
투석구는 비단 발레아레스 제도에서만 사용된 무기는 아니다.
발레아레스 이전에는 로도스 섬의 투석병들이 유명했으며, 이들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용병으로 종군하기도 했고,
그 외에도 세계의 다양한 문명권, 다양한 지역, 다양한 시대의 투석병, 돌팔매꾼들이 곳곳에서 활약한 바 있다.
그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돌팔매꾼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성경에 나온 다윗이 아닐까?
구약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인 다윗과 골리앗 설화에서는, 필리스팀의 거한 골리앗이 이스라엘군을 박살내고 있자,
계시를 받은 양치기 다윗이 갑옷 하나 입지 않은 채 투석구로 골리앗의 이마를 정확히 때려 그를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설화를 통해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뚜렷한 편이다.
자신의 힘이 세다는 사실만으로 자만하지 말 것, 또 상대를 무시하지도 말 것,
힘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좌절하지 말 것, 가능한 수단과 방법으로 해법을 강구할 것.
제아무리 구원이나 기적이 있다 해도, 그것이 빛을 보려면 결국 스스로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자신의 힘에 대한 자만에 빠져, "힘의 논리" 운운하며 우크라이나로 쳐들어간 러시아군의 꼴과,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해 지킬 것을 지키고, 국제 사회의 연대를 호소하는 우크라이나의 모습을 보면,
그 상황이 "다윗과 골리앗" 의 설화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드라마처럼 극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설화는 설화일 뿐이지만, 그 설화를 보며 우리 모두 같은 메시지와 느낌을 받았다면,
결국 이 전쟁을 지켜보며 기원하는 것 역시 모두 같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성경 다 불태워버린 러시아군은 이제 그런 거 알 수도 없워오
아무튼 오늘도 이렇게 군-바 글을 마친다.
낼 월욜이라 오늘은 좀 일찍 자로감!
곡틴쉨은 "힘의 논리" 잇찌랄 그만두고 오늘도 벙커에서 자기 전에 반성할 것.
주요 참고자료:
The Ministry of Education, Culture and Sport (Spain, 2013), <Talayotic Culture of Minorca>,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W. E. Heitland, C. E. Haskins (1875), <M Annaei Lucani Pharsaliae: Liber Primus>, Cambridge University Press
H.C. Hamilton, W. Falconer (1903), <The Geography of Strabo. Literally translated, with notes. vol. 1>, George Bell & Sons
A. W. Mair, G. R. Mair (1921), <Callimachus, Hymns and Epigrams. Lycophron. Aratus.>, Harvard University Press
Russel M. Geer (1954), <Diodorus Siculus. The Library of History. vol. X>, Harvard University Press
Leonard A. Curchin (1991), <Roman Spain: Conquest and Assimilation.>, Routledge
하루마다 이렇게 양질의 글을 어떻게 써내릴수있지...이사람의 직업은 대체 무엇인가...
지금도 개인이 살상용으로 슬링 다루면 무서울 듯. 군용으로는 아니겠지만
ㄹㅇ 유튭에 보면 슬링 취미로 배우는 사람들 영상 올라와있던데, 표적에 맞을때 소리 장난아님 ㄷㄷ
카이사르 용비어천가에서 곡틴 까기로 연결되는 드리프트가 전문가 수준입니다
아, 이게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4차세계대전 제식무기구마잉
개추
항상 양질의 정보글 재미나게 잘 보고 있어요! 근데 판관기 투석병들은 그냥 벤야민 자손들로 생각했는데 발레아레스 제도 사람들하곤 관련이 있나요?
헉, 말씀 듣고 읽었던 자료를 다시 살펴보니까, "판관기에서 나타난 투석병의 실력에 대한 묘사는 일반적으로 역사가들 사이에서 발레아레스 투석병의 실력을 묘사할 때 쓰이는 표현으로 이루어졌다" 같은 서술을 제가 착각해서 쓴 거였네여. 더 오해를 안 불러일으키기 위해 일단 해당 부분은 제거했어여! 지적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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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우스 쥬지는 물렁쥬지 ㅋㅋㅋㅋㅋㅋ
곡틴이랑 젤렌스키 보면서 다윗과 골리앗 생각났었는데 이걸 이렇게 수준높은 글로 풀다니.. 대단히 감사
얼마전에 여행프로인가??에서 저 섬에 갔는데 아직도 투석하더라 던지는거 봤는데 확실히 머리 맞으면 죽겠더라 - dc App